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Genie Jan 27. 2024

새해목표, 개처럼 사랑받기

 나는 개들이 왜 이렇게까지 이쁨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우리 집 큰 개가 하는 거라곤 배변패드에 오줌 싸기, 풀밭에 똥 싸기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가서 돈을 벌어오길 하나, 주인 나갔을 때 집청소를 해놓나, 하물며 자기가 싼 오줌 패드 하나 못 갈아놓는 생명체들이 어떻게 지 밖에 모르는 인간 옆에서 2만 년을 버텼나.


 큰 개를 키우다 뿅 가서 코를 골아도 사랑스럽고, 방귀를 뀌어도 귀여운 지경에 이르면서 알 것 같다. 개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사람 말을 안(못) 한다.'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우리 집 큰 개가 사람 말을 했다면 나는 이 큰 개를 이렇게까지 예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주인, 왜 늦게 와? 일찍 좀 들어와."

 "주인, 산책 좀 더 해야지."

 "주인, 사료 좀 비싼 걸로 바꾸지 그래?"


 큰 개가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다면 하고 싶은 말을 했겠지. 요구했을 테고, 서운해했을 테고, 때로는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했을 거다.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가는 와중에 지치거나 지겨운 순간이 분명 있었을 거다. 


 "네가 돈을 벌어와, 집안일을 해. 근데 왜 이렇게 나한테 요구를 해? 나도 힘들어!" 했겠지.


그러나 우리 집 큰 개는 사람 말을 안(못)한다. 약간의 몸짓과 눈빛으로 추측하게 할 뿐 언어로 요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큰 개에 대한 해석권은 모조리 나에게 있다. 나는 알아듣고 싶은 만큼, 유리한대로, 원하는 대로 큰 개의 몸짓을 해석한다. 응어리가 남지 않을 선에서. 


 사람 말을 하지 않는 큰 개와 함께 있을 땐 존재하고 싶은 대로 존재한다. 나에 대해 어떠한 평가나 판단의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편안하게, 내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된다. 하고 싶었던 말들도 한다. 돌아오는 답이 없어도 상관없이, 아니 아무런 평가나 판단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자유롭게. 


 언어를 통한 요구나 요청은 못하는 큰 개인데, 나에 대한 애정만큼은 온몸으로 쏟아낸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입 한가득 물고 달려와 목 긁는 소리를 내며 운다. 우는 소리를 한참 내도 진정이 안 되는지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만져달라 한다. 치부라는 배까지 까며 자기가 주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최선을 다해 상영한다.     


 큰 개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현관에만 들어서면 간절히 기다려지던 주인공이 된다. 사람들 속에 섞여 비루한 1인으로 살아가던 내가 아닌, 최선을 다해 기다려준 큰 개에게 원하는 만큼 미안해하는 주인공.


 성실히 실외배변하는 큰 개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며 새해 목표를 세웠다. 

 

 '말을 줄이고, 애정을 늘려서 사랑받아야지.'


 누가 말할 때 자꾸 껴들지 말고, 판단하거나 평가하려 들지도 말고,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 있어주고, 지지하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과 손짓을 보낸다. 우리 집 큰 개처럼. 


 그럼 어떻게 안 예뻐. 어떻게 안 고마워.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의 영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