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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Jan 26. 2024

아침의 영광

 아침, 큰 개와 눈을 맞춘다. 내가 잠에서 깨기만 기다리던 큰 개는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것처럼 서러워하며 환대의 몸짓을 시작한다. 꼬리를 뱅뱅 돌리고, 앞 발을 도닥도닥 번갈아 짚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대접만 한 엉덩이가 왔다 갔다 흔들린다. 큰 개는 얼굴을 내 손 가득 파묻고 낑낑 거린다.


"잘 잤어?"


 나는 잠에서 덜 깨 눈을 뜰락 말락 한 채로 큰 개의 귀를 만진다. 유독 부드럽고 말랑하며 자유자재로 접히는 큰 개의 귀. 손 끝이 미끄러지듯 어루만지며 큰 개의 서러움을 달랜다. 큰 개는 조금이라도 내 곁에 더 가까이 있고 싶다는 듯이 자기 귀로 내 손을 민다. 나는 촉촉하고 차가운 큰 개의 코를 만진다. 손 끝이 시원해지면 깊은 잠에서 한 걸음 더 빠져나온다.


 부은 얼굴과 채 떼지 못한 눈곱과 산발의 머리를 하고도 큰 개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삶을 시작하는 갓난아이에게 주어지는 환영 같다. 매일 아침, 그러한 영광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다. 큰 개에게 간식 하나를 던져주고 양치질을 한다. 거울 속 날 것의 나를 보면, 이렇게까지 환영받을 일인가 싶기도 하다. 미온수 한 컵을 마시며 남은 잠을 깨운다.


 겨울의 7시, 여전히 어둡고 추운 세상으로 꼬리를 추켜세운 개와 짧은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은 천변을 걸었다. 큰 개가 눈이 쌓인 곳에서 뒹굴고, 사람이 가지 못할 길을 파고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어제도 그제도 했던 공놀이를 오늘도 신나게 즐기는 큰 개를 본다.


 '넌 나와 공만 있으면, 불행하지 않겠구나.'


 이제 나만 반복되는 너와의 일상을 매일 처음인 듯 누리면 될 일이었다.


 시간과 함께 하늘이 투명해진다. 진한 남색에서 자줏빛, 보랏빛, 분홍빛, 노란빛을 지나 금빛으로 빛난다. 어젯밤 저물던 하늘의 순서가 되감아지며, 새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몇 개의 구름과 흔들리는 갈대와 물과 새의 소리와 함께. 찬란하게.


 어쩌면 간밤에 모두가 죽었던걸까. 잔다는 건 죽는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아침에 일어난다는 게, 우리가 다시 만난다는 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란 걸 나는 모르고 우리 집 큰 개는 아는 걸지도.


'주인!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워. 나와 하루를 시작해 줘서 고마워.'


 큰 개는 온몸으로 나와의 하루를 반기고, 나는 큰 개와 함께 작은 여행을 떠나며 시작의 순간을 누린다.


 아침의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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