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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Feb 21. 2024

졸업하는 아이에게

 오래전,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던 아이가 졸업했다. 우리의 마지막 날에 그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선생님 같지가 않아요."


 말보다는 주먹이 앞설 것 같은 아이였다. 학기 중에 한 말이었다면 '이게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나?' 싶었겠지만, 이제 한동안 볼 일이 없는 사이에서 선생님 같지 않다고 말하니 좋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내내 동네 이모 정도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한다.


"이거 해. 저거 하지 마. 이거 바꿔, 저것도 바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못하고, 네모난 교실 24명 안에 욱여넣으려고 애쓰는 내가 피곤하고 싫었다. 왜 하필 나는 직업이 선생인지, 학교는 피곤하게 40분 공부하고 꼴랑 10분 쉬는지, 에너지가 끓어 넘치기 일보직전인 애들이 왜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별 것도 아닌 학습목표를 6개씩이나 달성해야 하는지. 그런 공교육의 모든 게 피곤할 즈음이었다.


 학교 수업 마치고는 나도 좀 숨통이 트였고, 걔한테 이런저런 드립을 쳤다.


"야, 너 롤 티어 뭐야?"

"선생님, 롤 잘해요?"

"나 브론즈야."

"람 맞아요?"

"반인반수."


 편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무 때나 좀 찾고 싶게. 걔랑 한창 떠들 때는 재밌었는데, 돌아서면 '쟤가 내일 교실에서 나 만만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싶어 잠자리가 흉흉했다. 걔가 내 코 앞에 주먹을 갖다 대는 순간 눈을 뜨면 새벽 4시였다.


 몇 년이 흘렀다. 그간 듬성듬성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디서 배운 상큼한 짓인지 명절에 맛있는 거 시켜 먹으라며 기프티콘을 보내질 않나, 스승의 날엔 선생님 같지 않다던 나에게 선생님 덕에 사람답게 산다는 톡을 보내 반나절 울렸다.


 그리고, 그 아이는 또 다른 졸업을 했다.


 '선생님, 저 고등학교도 졸업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찌릿했다. 내 소중한 아이가 금세 커서 사회로 나간다.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그리고 10년 즈음 어른으로 살아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었다. 어디 가나 나 정도 하는 사람은 깔렸고, 결과는 빨라야 하고, 과정은 생략되어야 하며 사람보다 중요한 건 도처에 널렸다.


 얼마 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를 봤다. 소희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죽었는데, 세상은 잠깐 슬퍼하고 바뀌진 않았다. 그간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내겐 유일했던 그 얼굴들이 다음 소희이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속이 울렁였다.  


 어릴 적, "너는 특별해. 너는 잘 될 거야." 했던 말들은 여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이물감을 일으킨다. 나는 정말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고, 세상이라도 바꿀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 턱 밑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모든 걸 관조한다. 이 사람이 다치고, 저 사람이 죽고, 이런저런 슬픔이 범람해도 그저 내 앞이 중요하다.


 '세상은 원래 이래.' 그러고 산다.


 나의 특별한 아이가 세상으로 나간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물을 자격이 있나 싶었다. 나는 그저 꽃 피는 5월 즈음에 우리 같이 모이고 싶다고 했다. 벚꽃이 흩날리는 무심천 변 벤치에 앉아 요즘은 어떤 사람과 함께인지, 마음은 다치지 않았는지, 내일은 어디에 갈 건지 그런 걸 듣고 싶다.


 대화의 말미에는 꼭 전하고 싶다.


 세상으로 나아가면 네가 얼마나 평범한 보통의 사람인지 느끼겠지만, 가끔은 너를 보통도 아닌 것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만큼은 네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했는지. 네가 나를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줬는지에 대하여.  


  




배경화면 사진 출처

부천꽃집 ‘코지피다’ 졸업식 꽃다발 후기~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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