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둔 간식들이 교무실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상자를 교실로 옮기는 건 힘드니 교무실에서 포장 작업을 해봅니다. 교무실이 마치 제 2의 교실처럼 편안한, 이것이 분교의 매력인가 봅니다.
교무실 책상 위에 배송온 간식들을 모두 꺼내놓고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자랑스런 학생자치 4인방이 초집중하여 포장을 했습니다. 저는 사진 촬영과 응원 역할을 맡았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정말 잘한다!"
공부가 싫은 건지, 포장이 재밌는 건지 이렇게까지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모습은 또 간만이었습니다.
학내수공업 현장
초집중한 4인방 덕분에 뚝딱뚝딱 15개의 동시락이 완성되었습니다. 포장을 끝내고 뒷정리를 하는데 교육청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저희가 교무실에서 작업하고 있었기에 동시락을 보게 되셨는데, 사진도 찍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셔서 뿌듯했습니다. 팔불출처럼 "우리 애들 잘했죠?"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배달,
다음 날 배달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이 무려 2L 토레타까지 주문하여 저희끼리 드는 건 무리라 5학년 담임선생님께 S.O.S를 쳤습니다. 학생자치회 4명과 경기도로 전학갔는데 놀러온 남매 2명까지 총 6명이 3명, 3명 조를 이뤘습니다. 5학년 선생님 조는 학교 앞 쪽, 저희 조는 학교 뒷 쪽을 맡기로 했습니다.
동시락을 7개, 8개로 나눠들고 배달을 나섰는데 토레타 2, 3개 드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다음 번엔 꼭 500ml로 바꿔서 주문해야지.'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아이들과 사전답사 때 봐뒀던 집과 경로당으로 배달을 갔습니다. 결혼 준비 중이었어서 피부 안 탈려고 벙거지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계세요." 부르면 경계의 눈초리로 보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뭐가 문제인가 싶어 거울을 보니 개그우먼 강유미 씨의 유튜브 콘텐츠 '도믿걸'이 느껴지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선생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려나?"
"그럴 것 같아요."
"선생님이 미안해."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모자를 벗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낯선 사람을, 게다가 벙거지를 눌러쓰고 계시냐고 묻는 여자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일테니까요. 두려움을 이기고 저희와 대화를 나눠주신 주민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구세요?"
"저희 동락초등학교에서 나왔습니다. 마을 주민분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려고요."
말씀드리면 경계 반, 반가움 반으로 대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한 두 집 전해드리는 걸 보고 있으니 용기가 생겼는지 5학년 현주가 다음 집은 자기가 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 그렇게 크는거지! 기특한 자식!
현주는 붙임성도 좋고, 낯가림도 없어요
5학년 언니가 씩씩하게 "계세요. 동락초등학교에서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인사 드리고 선물을 전하며 칭찬과 예쁨을 듬뿍 받는 걸 보니 동생들도 자기가 들고 있는 건 자기가 배달해보겠다고 나섭니다. 이렇게 금방 금방 변하는 걸 보여주면 교사로서 뿌듯해서 감동의 눈물 흘립니다(속으로).
한 번만 용기내보면 알게 될 거야. 별 거 아니란 걸.
후기,
주민분들은 "어머나, 너희가 동락 애들이구나." 라는 반응을 주로 보이셨습니다. 시내학교에 있을 땐 주민분들이 동네 학교 아이들이라고 반겨주시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반응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학교인데도 학생들을 만나볼 기회가 통 없으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저희 학교 아이들 중 걸어서 등하교 하는 아이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택시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마을과 학교가 괴리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더 자주 마을을 거닐고, 마을 주민분들과 인사 나눌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주어야겠습니다.
반가움 받고, 예쁨 받고, 뿌듯함 느끼고, 상대방이 웃으니 배시시 따라 웃게 되고, 근사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이 모든 게 건네주는 사람이 가져가는 행복이라는 걸 아이들도 느꼈을까요? 전 그랬다고 봅니다. 그 후에 저희 아이들에게 사소하지만 꽤 대단한 변화들이 있었거든요. 제안하는 글쓰기 수업 시간에 진이가 마을 골목 쓰레기 줍기를 하자는 글을 써서 저를 감동시켰고, "이번 달 학생자치는 뭐할까?" 물으면 금방 "마을 주민분들 선물 드려요." 얘기가 나왔습니다.
타인에게 별 이유없이 무언가를 건네 본 기억, 그게 참 좋았던 기억을 선물할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