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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Mar 17. 2024

아침엔 쌍욕라떼 한 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항상 긴장하며 큰개 목줄을 빠짝 잡아 무릎으로 끌어당긴다. '이 문만 열리면 드디어 산책이다.' 생각이 가득 차 큰개는 목이 살짝 꺾인 채로 방방 들뜬다.


 동이 트기 전, 큰개와의 산책을 나섰다. 너무 많이 춥지 않은 데다 미세먼지 농도까지 보통인지라 내 마음도 큰개 따라 들뜨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고, 1층을 눌렀다. 금세 도착하니 큰개의 목줄을 짧게 잡아 무릎뒤로 끌어당기고 문 앞에 섰다. 큰개는 내 뒤에 앉아 문 밖을 빼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아주머니는 나를 봤고, 무릎 뒤로 얼굴을 빼꼼 내민 큰개를 봤다. '아고 깜짝이야.' 놀라셨다. 나는 큰개 목줄을 당겨서 엉금엉금 엘리베이터를 벗어났다. 아주머니랑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노력하며 밝은 표정을 지어 우리는 위해를 가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어필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우리가 현관으로 나가는 동안 시원하게 쌍욕 퍼레이드를 선보이셨다.


"씨발, 뭐 저딴 걸 데리고 다녀. 씨팔 깜짝 놀랐네. 미친년 아니야, 저거. 시부랄 것들."


 아주머니가 씨발을 세게 발음했더니 흡사 '씹빨'같은 소리가 났다. 내 마음속에 아주머니 닉네임을 '씹빨 아줌마'로 저장했다. 굽신굽신 황급히 현관을 나서며 살짝 뒤돌아봤더니 아주머니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시며 쌍욕 퍼레이드를 이어가셨다.


 쌍욕라떼 거하게 말아먹으며 시작한 저딴 거와 미친년의 아침 산책은 평소와 같이 무난했다. 우리는 이 길과 저 길을 걸었고, 한참 걷다 보니 하늘색이 되감기 하듯 밝아졌다. 잠들었던 새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하늘에 태양 빛이 촥 펴지다가 큰개랑 몇 번 웃고 나니 온전한 아침이었다.


 오후에, 큰개랑 강아지 간식 가게에 갔다. 하교 시간 즈음이어서 여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8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우와, 개다." 하며 뛰어왔다. 나는 살짝 긴장해서 큰개를 앉혔다. 아이는 개랑 인사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지, "엄청 커." 하며 큰개의 머리와 등과 꼬리를 만졌다. 큰개는 긴장해서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이렇게 손등을 코에 대면서 냄새를 맡게 해 줘. '안녕, 만나서 반가워.' 그런 뜻이야."


 아이는 금세 인사하는 법을 배웠고, 큰개는 반가움의 표시로 아이의 손등을 핥았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고, 나랑 큰개도 따라 웃었다.


 간식을 사서 나오는 길엔 12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다가왔다.

 

"인사해도 되나요?"

"강아지랑 인사하는 법 알아요?"

"네, 손을 코에 대는 거요."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큰개와 인사했고, 큰개가 아이들의 손을 핥았다. 아이들이 꺄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큰개도 씩 웃었다. 아이들은 큰개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우리를 따라왔다. 내가 뒤돌아서 물었다.


"안 무서워요?"

"네, 이 개가 제일 착한 개잖아요. 너무 귀여워요."


 큰개가 칭찬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에게 반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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