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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Sep 10. 2024

너 스스로 함박 웃으면 돼. 그럼 돼.

이제부터 노범생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를 의심한다. 근사한 문장을 쓴 작가가 근사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속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선별된 단어와 문장에 감명받을락 하다가도, 작가가 문장만큼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감흥과 교훈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를 모른 채 행해지는 독서에 대해서는 70%만 읽는다. 내 마음이 그만큼만 미지근히 열린다.


 충청도 산신령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게 부른다. 이 책의 저자는 나와 엉성히 연결된 채 5-6년을 지냈다. '에듀콜라'라는 교사 글쓰기 사이트 집필진이 되어 같이 글을 썼고, 서로의 글을 말없이 읽었고, 쇠퇴해 가는 글쓰기 모임을 부흥시켜 보자며 이를 악 물었다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한 회피로 카톡이 올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왜 충청도 산신령이라 부르느냐 하면, 저자가 몇 살인지는 까먹었지만 50은 안되었던 것 같은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산신령 같기 때문이다. 일종의 깨달음 같은 걸 얻고, 물은 물이며 산은 산이라 읊조리며 큰 소리 내지 않고 바람 따라 사는 사람 같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 충청도 계곡에서 얻어져서 다분히 마인드가 충청도스럽다.


'좋은 게 좋은 겁니다.'

'복을 지으면 언젠가는 돌아옵니다.'

'누군가를 웃게 했으면 되었죠, 뭐 더 필요합니까?'


 충청도산신령이 동화책을 썼다. 나는 아주 기쁜 마음과, 왜 나는 책을 못 쓰지 슬픈 마음을 섞어 책을 주문했다. 제목은 '이제부터 노범생'이다. 작가를 아는 채로 글을 읽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작가의 삶에서 보이는 태도보다 훨씬 산뜻하고 과장하지 않은 문장들이 좋았다.


 책 내용은 이러하다. 어른들이 하라고 하면 하는 아이, 하지 말라고 하면 누가 안 봐도 안 하는 아이. 공공연한 모범생, 13살 다빈이가 있다. 그리고 모범생 다빈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썽꾸러기 도진상이 있다. 선생님이 하라 하면 안 하고, 하지 말라하면 한다. 어제도 혼났기 때문에 오늘 또 혼나도 괜찮은 아이이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춤을 추던 다빈이가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화분 '아이유'를 깨뜨리고 같이 있던 도진상이 선생님께 불려 나가 대판 혼나게 된다. 다빈이는 어른들이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거짓말을 한 상태로 며칠을 살게 되고, 점점 더 하지 말라고 한 짓들을 하게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읽어보시라!


 언제나 훌륭한 행동만 하고 싶었던 책 속 주인공 다빈이가 조금씩 유연해지는 과정, 삶을 즐기게 되는 과정, 그런 자신을 인정해 가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모범생 다빈이가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니게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삶에 대한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단계나 방향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를 하는 사람들은 다들 모범생이다가 노범생이 되어가나 싶기도 했다. 하여튼, 고리타분한 직업이여.


 서평단이 되었다. 충청도산신령을 지지하고 싶었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움이 되리라 결심하고 신청하였다. 그러나 내 글이 책 판매에 한 권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서평을 쓰지 않고 차일피일 미뤘다. 마감기한은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내가 안 쓰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다. 이번에도 또 회피를 한 것이고, 충청도산신령님의 거의 마지막 독촉 문자를 받고 나서야 키보드 앞에 앉았다. 어릴 땐, 수행평가도 제때제때하고,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 보고 싶은 행동을 제깍제깍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감히 여자 아이로 태어나 막내아들을 제치고 안동김 씨 집안의 희망이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33살이 되고 보니 온통 제멋대로 인간이 되었다. 이제부터 노범생도 아니고 강산이 변하도록 노범생이다.


 19살까지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했다. 명절 때 밥 먹다가 혼자 벌떡 일어나 "저는 이만 공부하러 가볼게요."라고 말해 어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고, 친척동생은 '조상님들은 저 년 좀 안 데려가나?'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언젠가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거는 다 하게 되었다. 물 대신 술 먹고, 배꼽과 허벅지를 시원하게 내밀고 다니고, 배낭 메고 인도 간 뒤에 "나 인도야."라고 생존신고를 해드려 부모님의 한숨을 깊게 해 드렸다. "저는 커서 훌륭한 교수가 되어 돈 많이 벌어서 동생도 가르쳐주고, 고모부 양복도 사드릴게요."라고 쓴 편지를 친척들 앞에서 읽고 박수갈채를 받았던 모범생 은진이는 죽고 없다. 언제 죽었지?


 선생님 하면서, 모범생 다빈이 같은 아이들을 만난다. 온통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는 아이, 담임선생님을 너무 편하게 해주는 보석 같은 아이, 그러나 정말 괜찮은지 묻고 싶은 아이. 왜 아무도 실망시키려고 하지 않는지 궁금한 아이. 언젠가는 시원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기를 응원하게 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이 책이 나를 대신해 말한다.


 모범생이 아니어도 괜찮아, 선생님을 실망시켜도 괜찮아, 다른 13살 아이들처럼 실수하고 싸우고 울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크렴. 모두를 웃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 스스로 함박 웃으면 돼. 그럼 돼.


 추신, 너한테 한 말 아니야. 넌 이미 막살고 있단다.      




 오늘은 '이제부터 노범생' 가져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입니다. 그러나 가벼운 소설로 힐링하고 싶은 어른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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