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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Oct 28. 2024

참 복도 많죠.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돈을 법니다.

학부모님께 편지

2024/10/14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은 아이들과 인물, 사건, 배경을 하나씩 정해서 적은 종이를 무작위로 뽑아 이야기 만드는 수업을 했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국어 시간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거짓말 글쓰기 수업은 학급 회의 시간에 거짓말 글쓰기를 하게 해달라고 건의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참 귀엽죠.


 저도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주워와 시시콜콜한 거짓말을 지었어요. 귀나 다리부터 찢기며 잡아 먹히던 곰모양 젤리가 인간에게 반격하기 위해 군대를 꾸립니다. 몸의 일부를 떼어 활과 총을 만들고 격렬한 훈련을 거쳐 최정예 부대가 꾸려집니다. 그때, 사물함 문이 열립니다. 지호가 젤리를 집어듭니다. 곰모양 젤리들이 지호의 얼굴을 향해 일제히 활과 총을 쏩니다. 지호는 왜 이렇게 얼굴이 간지럽지 하곤 곰모양 젤리를 아흠 먹습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동안 아이들도 저도 킬킬킬 웃거나 푸합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참 복도 많죠. 제가 이렇게 웃으면서 돈을 법니다.


 학교 도서관에 신간이 잔뜩 들어왔습니다. 아이들과 신간도서 정리를 돕고 15분 정도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1학기에는 그림책만 잡고 있던 아이들이 드디어 긴 소설책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언제쯤 긴 책의 재미를 느끼게 될까.' 기다리던 장면입니다. 아이들끼리 '이 책 진짜 재밌다.' '나도 읽어볼래.' '우리 책 빌려서 동락분교 가서 읽자.' 책 대화를 나누는 걸 볼 때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오늘은 말이 길지요. 제가 지난 주말에 교사 공부모임을 갔습니다. 주말을 반납하고 모여 공부를 하는 교사들이라니, 참 멋지지요. 거기 갔다 나오는 길엔 항상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데요. 이번 모임에선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학부모님들께 편지를 쓴 선생님의 학급 편지 모음집을 봤습니다. 마음을 먹는 건 쉽지만, 지속하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장애 때문에 세 살 어린 학생들과 학교를 다니게 된 아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시작한 학급 편지를 1000번이나 쓰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참 훌륭한 선생님이지요.


 요즘 하이클래스 공유가 뜸했기에 더 아차 싶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조금 있으면 지역청 장학사님이 장학을 오시고, 또 조금 있으면 인근학교로 출장을 가야 해서 마음이 급합니다. 화장실도 가고 싶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소식부터 전해드리려고 키보드를 서둘러 두드립니다.


 10월 14일, 시작보다 끝이 가까운 날. 저는 잘 키워주신 어머님, 아버님의 보석들 덕분에 킬킬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또 소담한 소식 전해드릴게요.

(혹, 답장을 써주시고 싶으시다면 하이톡으로 보내주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2024/10/17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은 국어 교과서에 나온 지문을 함께 읽었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수업 태도가 좋다는 말을 여러 선생님들께 지겹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듣는데요. 오늘 국어 지문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연기하듯이 몰입감 있게 읽기도 하고, 지문 속 인물의 대사가 너무 웃겨서 다 같이 낄낄거리고 웃고, 그 웃긴 대사를 따라 해보며 깔깔 웃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의 정체가 뭐야.'

했습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맑음, 별 거 아닌 일에 웃고 울고 빠져들고 좌절하는. 그 빛나는 순수함이 공기 대신 우리 반을 가득 채운 느낌이었습니다.


 지난주에 무용선생님께서 무용 수업에 꼭 보러 오라고 하셨거든요. 4학년애들이 너무 잘한다고. 담임선생님이 꼭 봐야 한다고요. 그래서 오늘은 무용 수업하는 걸 구경 갔습니다. 4박자 노래에 맞춰 서로 다른 높이의 정지동작을 하는 수업이었는데요. 그걸 또 너무 재밌게 웃으면서, 또 몰입해서 진지하게 하는 겁니다. '진짜 얘네 뭐야.' 했습니다.


 무용선생님 표정이 뿌듯함, 성취감, 교사로서의 만족감을 다 머금은 얼굴이었습니다. 무용선생님이 워낙 열정적으로 잘 가르치시기도 하시지만, 무용선생님이 콕 집어 4학년 너무 잘한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정말 우리 반 아이들에겐 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미술 전담시간에 붓글씨 쓰기를 했는데 미술 선생님이 또 "4학년은 정말 잘해요. 아주 집중해서 진지하게, 뭘 시켜도 끝까지 해내요."라고 하셨거든요. 저희 반은 언제 어디서나 칭찬만 받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의 선생님들을 흐뭇하게 해 주면서요.


 오늘 댄스선생님 수정이의 댄스수업도 있었습니다. 학생자치 같은 거죠. 아이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영상을 찍어서 완성해 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일부러 저는 쑥 빠져있습니다. 서로 좀 투닥투닥해도, 또 그 안에서 길을 찾으며 결국엔 해냅니다. 어쩌고 저쩌고 불평은 해도 결국엔 또 웃으면서 즐겨요. 1교시에 싸워도 3교시 쉬는 시간엔 다시 어울려 놀 수 있는 그게 어린아이의 탄력이겠죠.


 사담도 붙여봅니다. 최근에 최지은 작가의 '우리의 여름에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매우 큰 출판회사인 창비에서 낸 아주 얇은 에세이라서 의아한 마음으로 골랐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잘 썼길래 창비에서 이렇게 얇은 에세이를 내주나 싶어서요.


 글에서 제가 깊이 품어두고 싶은 마음을 읽었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했던 기여프로젝트도 이런 마음에 닿아있던 게 아닐까 했습니다. 옮겨두고 저는 이만 물을 마시러 교무실에 가보겠습니다. 청청한 하루 보내세요


 5천 원이든 5만 원이든 돈을 보내고 싶은 곳이 보이면 보냈다. 그건 선물 같은 것이었다.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주는 사람은 즐거워진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불우한 이웃이라는 말에 담긴 서글프고 어두운 표정도 싫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너의 괴로움을 더 드러내라고 말하는 시선도 불편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배고픈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기보다 어느 저녁상 앞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아이를 상상했다. 가난과 기후위기, 조혼의 상황에 처한 먼 나라의 여자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을 그려보았다. 입양처를 기다리는 강아지의 따뜻한 잠을 떠올리는 것도 좋았다. 선물이 선물일 수 있도록, 타자의 슬픔보다 기쁨을 상상하는 것이 내가 아는 존중과 배려였다.(중략)


선물을 전할 때, 그의 슬픔과 고통을 함부로 예단하고 싶지 않다. 되갚아야 하는 의무를 안겨주고 싶지도 않다. 선물을 받은 그가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내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면 좋겠다. 길을 걷다 우연히 옷깃 속으로 떨어지는 조그만 낙엽 같은 기쁨 정도면 좋겠다. 가끔은 특별한 용기가 되고 힘이 되기 때문이다. 사소한 기쁨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체득한 삶의 방식이다. -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창비


2024/10/28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오늘은 아이들 사진은 못 찍었고, 학습공동체 예산으로 구입한 책 사진만 있네요. 매년, 훌륭한 교육서적과 새로운 수업 방식이 쏟아지는데 내가 잘 따라잡고 있나 생각해 보면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잘 배우면, 내가 잘 알면 더 나은 수업을 할 수 있었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모두가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수많은 나는 다 어떻게 되는 거죠?' 문장이 떠오르네요.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아침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가 저를 보고 "안녕하세요!!!" 하면서 고래고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팔을 휘휘 돌리면서 뛰어오고요. 반갑고 고마운데 쑥스럽기도 해서 괜히 겨드랑이 찌르기 공격을 했습니다(여학생이었습니다...).


 아니 벌써! 11월입니다. 이제 겨우! 요 아이들과 두 달 남짓 남았네요. 행복한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나 모르겠습니다. 참는 게 없어서일까요? 올해, 놀랍게도 한 번도 소리 지르지 않고, 화낸 기억도 잘 안 떠오르고, 미간도 거의 안 찌푸리고 보냈습니다. 참 두고두고 좋았다고 추억할 한 해였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어머님, 아버님들을 뵈었지요. 편지를 고작 두 번 쓰고도 어머님 아버님을 보니까 무언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글을 보내던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건 제게 참 수줍은 일입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은 저 혼자 많이 느꼈습니다. 3도로 틀어놓은 전기장판처럼, 어머님 아버님들은 제게 뭉근한 따스함을 주시는 것 같아요.


 남은 11월, 12월도 아껴 아껴서 보내려 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웃기도 많이 웃고, 땀나게 뛰기도 많이 뛰고. 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유익하고 좋았어.' 할 수 있게요.


 어머님, 아버님의 11월, 12월도 돌아보면 유익하고 좋았길 응원하며 마칩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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