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성 Nov 29. 2023

엄마를 단단히 오해했습니다.

엄마를 오랫동안 원망했다. 딸인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보통의 1학년 엄마들은 입학식 때 학교까지 데려다준다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 다녀와서도 잘 다녀왔는지, 별일은 없었는지 묻지 않았다. 숙제가 무엇이 있는지, 오늘은 무엇을 배웠는지, 준비물은 잘 챙겼는지 묻지 않았다. 어떤 친구와 지내는지, 무엇을 할 때 재미있는지 묻지 않았다. 물론 공부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등교할 때는 멀쩡했던 하늘이 하교할 때 어두컴컴해지며 비를 쏟아냈다. 집에 가려고 학교를 나섰는데, 엄마들이 우산을 하나씩 옆에 끼고선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나도 내심 기대했다. ‘저 무리에 우리 엄마가 있을까?’


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살짝 얘기해 봤다. 갑자기 비가 와서 친구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교문 밖에 서 계셨다고. 엄마는 이렇게 얘기했다.


"비 좀 맞고 오면 되지~"


난 이 한마디가 매우 서운했다. '우리 엄마가 맞긴 한 거야? 나한테 정말 관심이 있긴 한 거야? 딸이 비를 맞고 집에 왔는데 수건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춥지는 않았는지 묻지도 않고, 흥칫뿡!'


어릴 적 기억에 남는 우산 사건 때문이었을까? 


내 아이가 1학년일 때는 무조건 엄마든 아빠든 교문 앞에 서 있고 싶었다. 아이의 하교를 반기는 누군가 있다는 것, 그리고 비가 오더라도 아이의 우산을 들고서 여느 엄마들처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속상한 일이 아이에겐 없기를 바랐다.




엄마는 자녀인 우리 세 남매에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알아서 잘 컸어."


엄마가 얘기한 걸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 혼자 알아서 잘 큰 줄 알았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 어느 날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는 나를 거의 내놓다시피 키웠잖아, 방목 수준이었지~” 


엄마는 발끈했다. "아니, 무슨 방목이냐?! 그렇게 키운 적 없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왈칵 성을 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엄마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엄마의 육아방식은 방목형이 맞다고 보니깐.’




내가 엄마가 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기보다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 여유가 없었던 거다.


왜냐하면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서툴렀으니까. 엄마는 본인의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웠던 거다. 시부모님과 장남인 남편, 3명의 어린 형제자매, 친정 부모님과 장녀인 본인, 3명의 어린 형제자매, 장애를 가진 채 혼자 남겨진 사촌오빠, 그리고 줄줄이 자녀 셋. 가족이라는 단어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들의 범위가 너무 넓었고,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대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엄마가 엄마가 됐을 때는 본인의 엄마가 없었다. 첫째 아들을 낳았다고 소식을 전한 지 며칠 만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졌던 거다. 너무 당황하고 놀랐을 거다. 굉장히 두렵고 심히 외로웠을 거다. 혼자 눈물을 삼켰을 거다. 어디에도 그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었을 거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나에게 아직도 속 깊은 이야기를 잘 나눠주지 않으신다. 어색하신 것 같다. 왜냐하면, 엄마는 속상한 감정을 삭이는 데 도가 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버티려고 애썼을지도 모른다. 아니, 몰랐을 거다. 그 짐을 혼자서 떠맡지 않고 나눠서 짊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짐 몇 개 내려놔도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나도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열고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얘기를 잘 못 한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되는 건데 그 첫 시작의 발걸음을 떼기가 참 어렵다.




아이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혼자서 낑낑대기보다는 엄마인 내게도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일 그게 힘들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나 친구를 주변에서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겪고서 상대방과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머릿속이 정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가 원망스럽다면, 그 불편함과 미운 감정들을 오랫동안 간직하지 말고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어떤 점이 서운했는지, 어떤 점이 원망스러웠는지 말해주면 좋겠다. 나의 답변이 변명이나 핑계로 들릴지라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를 오해했듯 아이도 나를 오해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아이가 손을 내밀 때, 내가 아이의 손이란 걸 알아채고 꼭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엄마도 잘 몰랐다고, 

엄마도 엄마가 서툴렀다고 얘기할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 큰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