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즐성 Dec 14. 2023

초등학교 1학년, 육아휴직이 필요할까?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1년을 보내는 중이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연달아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산전후휴가까지 합쳐서 총 2년 9개월 동안 육아에만 집중했다. 아니, 허우적거렸다.


결혼은 만 27살에, 출산은 만 28살에 했다. 또래보다 결혼과 출산이 빨라서 주변에 조언을 얻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기가 특기인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 난관을 헤쳐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복직하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육아휴직하지 않을 거라고!! 육아보다는 일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전업으로 육아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복직하고 5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마음이 바뀌었다. 좀 쉬고 싶었다. 아이들이 부쩍 성장하여 서로 말도 잘 통하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능력이 커졌다. 나도 이제 초보엄마 딱지는 좀 뗀 것 같기에 육아휴직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이젠 조직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나 홀로 서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조금은 일상에서 벗어나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두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돕지만, 나도 잘 성장하고 싶었다.


휴직해서 하고 싶었던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아이들 등교시키면서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아이들 하교 시간에 집으로 퇴근하고 싶었다. 집에 오면 집안일이 눈에 밟혀서 온전히 책에만 집중하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전자책 쓰기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었다. 무자본 지식 창업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한 지 2개월이 지난 시점,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생각보다 시간이 없고, 생각보다 피곤하다.


실제로 하는 일은 딱히 없었다. 7시부터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작해서, 9시까지 등교시켰다. 11시 30분까지는 영어공부나 책 읽기 등 자유시간을 갖고 점심을 먹었다. 12시 30분에 아이들이 하교한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4시까지 놀았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는 옆에 서 있거나 벤치에 앉아있었다. 4시에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5시에 저녁 준비를 하고, 5시 50분에는 학원에서 데려온다. 6시에는 저녁을 먹고 7시 이후에는 놀다가 씻겼다.


내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그래도 많을 줄 알았다. 회사 다닐 때보다 조금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2시간이었다. 희한하게 신랑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내 에너지는 5% 남짓 남아있어서 집안일과 육아일이 힘들었다.


둘째, 생각보다 아이들은 혼자서도 잘한다.


3월 한 달간은 초등학교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아파트 내부에 있는 도로 1곳 건너는 게 불안했기 때문에 당연히 등교를 시켜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4월 들어서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 우리끼리 학교 가 볼래~"

"그래! 대신 찻 길 건널 때는 좌우 꼭 잘 살펴서 조심히 건너야 해!"


그렇게 한 달간을 등교로 둘이서 척척 잘 해냈다. 학원을 가야 하는 시간이면 놀던 일을 모두 멈추고 학원으로 잘 향했다. 내가 괜히 휴직한 거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생각보다 초등학생이 막 된 아이도 혼자서 잘한다.


셋째, 생각보다 좋다.


봄의 새싹을 느낀다. 연둣빛 잎을 오래 감상할 수 있다. 밝은 낮에 놀이터에서 열심히 노는 아이들을 보는 이 시간들이 너무 감사하다. 회사 다닐 때는 평일 밤에만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봤기 때문에, 낮에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경제적 이유만 아니면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난 혼자 잘 놀아서인지 평일이 기다려졌다. 생각보다 참 좋았다.




초등학교 1학년, 육아휴직이 필요한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여건이 된다면 꼭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플 때 쉬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아플 때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주말로 미루지 않고, 자유롭게 제때 병원에 갈 수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내가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언제든 데리러 갈 수 있다.


일상이 바쁜 것은 매 한 가지이다. 하지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오는 경험을 통해 다시금 나를 돌아보고 나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하마터면 살던 대로 생각할 뻔했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부터의 나를 고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