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직후의 하루하루는 너무나도 길고 더뎠다. 어서 빨리 목을 가누기 바랐고, 어서 빨리 제대로 앉을 수 있어서 목욕시키기 수월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서 빨리 하루하루가 지나가 통잠을 잤으면 했다.
할머니들이 지나가면서 툭 건네는 한마디 "시간이 금방 가더라. 지금이 참 좋을 때야~"
듣기 싫었다. 엄마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인데 지금이 좋을 때라니! 힘들었던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좋았을 때의 기억만을 살려두신 게 아닐까 의심했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님이 쓰신 책,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의 프롤로그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더라. 인생에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은 또다시 오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박혜란 지음
나도 한 달 뒤면 첫 아이를 낳은 지 딱 10년이 된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정말 잠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그 시간 속을 살고 있는 사람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섣부르게 잠깐이라 얘기할 수는 없다. 할머니의 시선과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초보엄마의 시선은 다르리라.
만약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어떻게 키우고 싶을까?
첫째,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않을 거다.
좋은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하려고 애썼다. 아이를 위해 자연주의 출산을 했고, 아이 피부를 위해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아이의 두뇌에 좋다는 모유를 1년간 수유했고, 아이가 울면 1초 만에 반응하려고 힘썼다.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해서 생후 2년 반 이후가 돼서야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
좋은 엄마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그리고 그런 높은 잣대들로 인해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하게 하고 죄책감을 키운다. 더 잘해주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고 동동거렸다.
욕심이 지나쳤을까? 무엇을 해도 불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나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했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의 '그냥' 엄마로 함께 살아갈 테다.
둘째, 할머니의 마음으로 키울 거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곁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할머니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머니라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만을 바라고 욕심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그냥' 엄마를 추구하지만, 키우다 보면 내 아이이기 때문에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기도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나기도 한다. 잘못하고 있으면 괜히 내가 잘못 가르친 것 같고, 다른 사람들 있는데서 인사도 잘 안 하고 예의 없이 굴면 내가 다 부끄럽다. 조금은 초연하게 아이를 대하고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육아의 목적은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20여 년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아이를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 힘을 길러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 오은영 박사
셋째, 메모할 거다.
아이를 키우며 기억하고픈 순간들이 생길 때마다 메모하고 싶다. 처음으로 통잠을 잔 날, 처음으로 몸을 뒤집은 날,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던 날, 처음으로 문장으로 말한 날 등 짧게라도 기억하고픈 성장 기록들을 메모하고 싶다. 죽음이 무섭고 두렵다며 서럽게 울던 날, 우리는 부자냐고 물어보던 날, 아빠한테 돈(돼지) 남편이라며 아빠 모르게 놀리던 날의 마주이야기 들도 메모하고 싶다. 이건 꼭 기록해야지 다짐했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메모하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육아를 하며 마음이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고 싶다. 어른이라면 마땅히 내 안의 감정들을 적절하게 통제할 줄 알아야 하지만,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널뛰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 생각이 나는 대로 적어보고 싶다. 내용이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글쓰기는 마음을 알아채는 데 유용한 도구라 믿는다. 그래서 힘든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에게 올인하기보다 나만의 시간을 사수하며 살아갈 거다.
남편에게 아이 맡기는 것을 불안해하지 않을 거다.
육아 중인 나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줄 거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