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란색 장판이 깔린 어느 집 (내부/ 낮)
(클로즈업) 소녀의 두 눈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왼쪽 눈만이 빠르게 깜빡,
깜빡..... 깜빡..... 깜빡..... 그리고 평범하게 감겼다 떠지는 두 눈,
카메라, 90도 회전,
소녀의 머리카락 스르르 내려와 왼쪽 눈 가린다. 왼쪽 눈이 괴로움에 감긴다.
(클로즈업) 거친 손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프레임 넓어지면 구부정한 등의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남자의 오른쪽 다리에 소녀의 머리가 올려져 있다.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의 팔과 구부러진 등 사이 틈새로 소녀의 얼굴 보인다.
앳되 보이는 소녀의 얼굴로 보아 아직 20살을 넘기지 못한 듯하다. 몇 차례 기분 좋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남자의 손이 소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그렇게 잠시 목덜미에 머물던 손은.....
(클로즈업) 거친 손이 부드러운 곡선 위를 다듬는다. 어깨, 팔, 허리, 엉덩이......
BLACK
2. 길거리 (외부/낮)
울창한 숲 사이를 분단하는 일 차선 도로
카메라, 노란 중안선에 초점을 맞추고 훑는다. 밑에서 위쪽으로 빠르게......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카메라도 같이 그 곡선을 다듬는다.
(익스트림 샷) 안개가 옅게 깔려있다. 울창한 숲에 인공적으로 줄을 그어놓아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보인다. 한쪽 귀퉁이에는 도심지로 건물들이 옹졸하게 모여있다.
최대한 숲 쪽으로 몸을 붙인 남자가 일 차선 도로를 걸어간다. 노란색 바람막이 옷을 입은 그는 목 위로까지 지퍼를 조여 맸다. 지저분한 운동화와 간소한 크기의 배낭에 침낭이 아슬하게 연결되어 있다. 배낭여행을 하는 듯하다.
카메라, 남자의 걸음을 따라가길 그만둔다.
저벅되며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작아질수록 카메라의 여백에 안개가 낀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 지나간다. 검은색 승용차는 남자를 앞지르고 얼마 안 가 정차한다.
남자 역시 차 곁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차 창문 밖으로 운전자의 손이 들어갔다 나오고 남자는 몸을 숙여 운전자와의 눈높이를 맞춘다.
곧이어 남자의 허리가 다시 펴지고 차는 멈춰 서기전의 속도를 잊지 않고 달려간다.
남자는 자신과 멀어지는 차를 향해 목례를 한 후에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3. 어느 외각 길에 위치한 편의점 (내부/낮)
휴대폰 두 개가 포개져 충전 중이다.
프레임 넓어지면 앞서 본 배낭을 멘 남자가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고 있다.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류유석이다. 다만 40대의 류유석
(클로즈업) 카메라, 유석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 가까이 다가선다. 선율이 작게 재잘거리는 거 들린다.
유석, 벌떡 허리를 치켜세운다. 카메라, 다시 미디엄숏
눈을 비비며 잠시 시간을 흘려보내고 휴대폰 충전상태를 확인한다. 충전상태 양호, 휴대폰과 충전기 분리된다.
4. 길거리 (외부/밤)
날이 어두워져 잘 곳을 찾는 유석, 두리번 된다.
파란색 기와지붕이 얹힌 공중 화장실 보인다. 지붕 아래로는 평범하게 각진 시멘트 건물로 하얀색 페인트 칠이 되어있다.
유석의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우측으로 이동한다.
화장실 한쪽 벽면에 낙서가 그려져 있다. 카메라, 천천히 음미하듯 낙서를 보여준다. 동그라미 하나에 작대기 5개로 그려진 남성.... 이것이 남성인 이유에는 하단부에 남성의 성기가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다리보다 길쭉한 성기의 끝부분에 오줌이 발사되고 있다.
눈, 코, 입이 표현되지 않은 남성의 얼굴 근처에는 ‘주여......’라는 글씨가 크게 적혀있다. 날카롭게 휘갈겨 써진 글씨가 묘하게 섬뜩하다.
카메라, 남성의 오줌줄기를 따라간다. 삐뚤빼뚤 성의도 없이 그어 놓았다. 그렇게 오줌줄기를 따라가던 카메라 앵글에 남자화장실/여자 화장실을 구분 짓는 파란색, 빨간색 표지판이 보이며 이 건물이 화장실임을 알려준다.
(와이드샷) 유석이 공중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공중 화장실에 불이 켜지며 하얀빛이 밖으로 새어 나온다.
5, 공중 화장실 (내부/밤)
유석이 변기 앞 빈 공간에 침낭을 펴고 누워 있다. 자리 잡기가 힘든지 자꾸만 뒤척인다. 뒤척일 때면 유석에게 변기의 존재가 영 성가시다.
유석 : (입김이 뿜어져 나오며) 후....
불편한 자세를 고치기 위한 유석의 움직임이 센서에 감지되어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유석 : (괴로움에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후..... (떨리는 목소리로) 시발
결국 유석은 침낭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동글동글 알차게 말아지는 침낭....
6. 공원 속 유원지 (외부/밤)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 워터파크 건물 주변을 서성이는 유석, 커다란 유리문 입구를 흔들어 본다. 잠겨있다. 잠긴 유리문 안쪽으로 보이는 어스름함이 으스스하다.
*SMOKEPURPP X LIL PUMP FT, GUCCI MANE TYPE BEAT – MULA 흐른다.
워터파크를 중심으로 폐업한 식당들 군데군데 보인다. 아무렇게 놓여있는 의자들, 부서져있는 걸상, 늘름한 잡초들, 허름한 식당 간판, 내다 버려진 냉장고 그리고 그 주변으로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
[꾸웩 꾸웩] 개구리울음소리 들린다.
워터파크 주변 졸졸 흐르는 냇가에 과자봉지가 무엇인가에 걸려 물의 흐름을 거스른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짝반짝 빛을 낸다. 반짝이는 빛에서 담뱃불이 타드러 가는 이미지로 디졸브
유석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시선을 아래쪽에 두고 있다.
유석의 발아래 워터파크 건물 지하로 갈 수 있는 계단이 깔려있다.
계단을 내려가는 유석, 지하 입구를 지키는 커다란 철제문 보인다. 어설프게 문을 가로막고 있는 20L짜리 약수통 3개....... 이게 유석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약수통 3개를 밀어재끼고 첼제 문을 열어본다. 열린다.
7. 워터파크 지하 관리실 (내부/밤)
*SMOKEPURPP X LIL PUMP FT, GUCCI MANE TYPE BEAT – MULA 여전히 흐른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에는 빨간색 원형 불빛 3개만이 보인다.
[뒤적뒤적 부우 욱] 하얀 불빛이 프레임 전체를 채운다.
하얀 불빛 살짝 아래로 떨어지면, 유석이 손전등을 입에 물고 있다.
시멘트 벽으로 구성된 지하 벽면에 비상경보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바닥 한쪽 구석에는 직사각형 하수구 발판이 일렬로 깔려있다. 정갈함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주변을 둘러보는 유석,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일자형 사다리 하나 보인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서자 허리를 굽혀야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펼쳐진다.
한쪽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비상 경보기와 계기판이 같이 설치되어있다. 경보기 등의 붉은빛과 계기판의 푸르스름한 빛이 주변을 충분히 밝혀준다.
(클로즈업) 벽면에 주룩주룩 흐르는 이슬이 딱딱한 시멘트에 묘한 패턴의 디자인을 구성해준다.
(클로즈업) 유석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허리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문 보인다.
유석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높은 천장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는 넓은 공터가 펼쳐진다. 여기저기 보이는 파란색 천막과 A 형 사다리가 무슨 시공을 하다 말았음을 알게 해 준다.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든 유석은 침낭을 바닥에 깔고는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 섭취하기 시작한다.
초조하게 음식을 삼키는 유석의 뒷모습에서 선율 서서히 끊긴다.
그렇게 유석은 그곳에서 잠을 청한다 더운지 잠결에 바람막이 지퍼를 내려 목에 새겨진 문신이 힐끔 보인다.
8. 길거리 (외부/낮)
워터파크 건물을 등진 채 걷고 있는 유석, 유석의 머리 위로 햇볕이 밝게 내리쬔다.
앞서 묘사한 공중화장실 벽면이 다시 보인다. 동그라미와 곡선으로 만 구성된 꽃들이 새롭게 그려져 있다.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빨간색으로 색감이 입혀지고 꽃줄기가 스멀스멀 그려지며 우아한 그림으로 변모한다.
동시에 빳빳했던 남성의 성기, 스멀스멀 쪼그라든다.
(클로즈업) 유석의 손에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 빨간색이 지저분하게 묻어있다.
차가 내달리는 도로 옆 인도를 걷는 유석,
버스터미널 안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보인다.
사람을 태우기 위해 늘어선 택시, 그중 한 택시 운전사는 지루함에 하품을 해댄다.
허름한 식당 안 손님들이 가득 차 시끌하다.
반면 깔끔한 인테리어를 뽐내는 식당 안, 커다란 벽걸이 TV만이 공허하게 잉잉된다.
인파들 속 같이 걷고 있는 유석, 오랜 여행 때문인지 유독 유석만이 꾀죄죄해 보인다,
단발머리에 정장 차림인 여자 마네킹이 한 모텔을 공손하게 가리킨다. 가리키고 있는 팔이 위아래로 죽은 듯 흔들린다. 마네킹이 가리키는 모텔로 들어서는 유석,
(클로즈업) 환하게 눈웃음치는 이쁘장한 마네킹의 얼굴에 검은 때가 묻어 지저분하다.
9. 모텔 (내부/밤)
2인용 침대 주위 유석이 맸던 배낭, 입고 있던 옷들이 널브러져 있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유석은 샤워를 하는 듯하다.
(클로즈업) 물줄기를 얼굴에 강하게 쳐 맞고 있는 유석, 기분이 좋아 보인다.
프레임 넓어지면 유석의 전신 보인다. 얼굴을 제외한 유석의 몸에는 화려한 문신이 새겨져 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빈틈없이 유석의 몸을 꾸며준다.
얼굴을 쳐들고 맞던 물줄기가 이제는 성가셔졌는지 고개를 푹 숙여 뒤통수로 물을 쳐 받는 유석,
가운을 걸친 유석은 2인용 침대에 홀로 누워있다.
유석 : 후.....
유석, 한 손으로 두 눈깔을 지그시 눌러본다.
[인서트] 어느 집 (내부/낮)
20대의 젊은 여성이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고 유석은 그 여성의 앞에 마주 서 있다.
두 남녀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고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여성은 소리 내어 운다.
(클로즈업) 맞잡은 두 손
모텔에 있는 텔레비전 불빛이 유석을 은은하게 비춰준다. 자고 있는 유석의 주변으로 성가신 텔레비전 소음만이 작게 잉잉된다.
페이드 아웃
영화 제목 '무용수' 표시된다.
10. 중고 책방 (내부/늦은 오후-밤)
책이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이 줄지어 있다. 책장에 진열되지 못한 책들은 플라스틱 노끈으로 묶여 바닥 여기저기 놓여있다. 좌우로 여닫을 수 있는 유리문을 경계선으로 한쪽은 앞서 묘사한 중고책이 전시되어있는 곳, 그리고 한쪽은 카운터 겸 숙식 공간이 존재한다. 다만 숙식 공간 안에도 책장과 책들이 배치해있어 경계선이란 단어가 부끄럽다.
어쨌든 더럽다고 하기에 깔끔하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이.... 깔끔하다고 하기에 지저분한 수염이 있는 남성이, 늙었다고 하기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젊다고 하기에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있는 남성이, 그렇게 애매한 남성이 숙식 공간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부시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남성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다.
애매한 남성 1 :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어! 이제 왔니
같은 이유로 애매한 또 다른 남성이 중고 책방에 들어선다. 똑같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숙식 공간에 존재하는 일인용 간이침대 위 앉은뱅이 탁상이 올려져 있고 그 위로 가스버너, 그리고 삼겹살이 불판 위에 지글지글된다. 불판 위로 작은 주전자 지나간다.
애매한 남성 1이 애매한 남성 2에게 술을 따라준다. 애매한 남성 2가 종이컵에 술을 받는다.
애매한 남성 2 : (잔을 자신 쪽으로 기울이며) 어~이 많어......
두 남성은 침묵을 유지한 채 잔을 비우고 삼겹살을 짚어먹고 다시 서로 잔을 따라준다.
침묵을 먼저 깬 자는 애매한 남성 2이다.
애매한 남성 2 : (한쪽 팔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니 저~ 상가 골목 쪽에 사는 영재 알재?
애매한 남성 1 : 영재?
애매한 남성 2 :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왜 그 서영재 있잖아.... 아가씨 하나 있잖아.....
애매한 남성 1은 인상을 구긴다. 순식간에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험악하게
애매한 남성 1 : (여전히 인상을 구기며) 니.... 시발 그 야기를 갑자기 와하는데
애매한 남성 2 : (살짝 당황해하며) 아니... 그... 좀 재밌는 소식이 있어서 그러지~
둘은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며 잔을 비우고 삼겹살을 짚어 삼킨다. 애매한 남성 1이 자신의 종이컵에 술을 따라 목을 축인다. 이번에 침묵을 깬 자는 애매한 남성 1이다. 다만 조금의 민망함 때문인지 시선을 고기판에 고정한 채 운을 뗀다.
애매한 남성 1 : 재밌는 소식? 그게 뭔데
카메라, 불판 위 지글 되는 삼겹살 보여준다.
(O.S) 애매한 남성 2 : 그게 말여....(꼴딱) 저~기 저 편의점 아들내미랑 영재 가가 같이 떠났다내?
(O.S) 애매한 남성 1 : 떠나? 어디로?
(O.S) 애매한 남성 2 : 그거야 나도 모르지.... 우리 도시를 완전 떠부렸다.
카메라, 지글 되는 불판에서 벗어나 헌 책방 내부를 다시 조망해준다. 처음 때보다 많이 어두워져 있다.
(O.S) 낯선 여성 : (고함에 가깝게) 씨발!
페이드 아웃
11. 결혼식장 (내부/낮)
페이드 인 되며 *THE UNTOLD – most powerful and dramatic 흐른다. 오직 선율만이 오디오를 꽉 채운다.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신랑 신부가 주변의 환호를 받으며 수줍은 미소를 띤다. 크게 웃어야 할 상황이 있었는지 신랑은 이를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고 신부는 입을 가리며 조신하게 웃는다. 그런 신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신랑
객석 앞자리에 하얗고 다른 의자들보다 큰 의자에 앉은 양가 부모 보인다. 신랑 측과 신부 측 사이에 레드 카펫이 깔린 흔한 식장 구조다. 다만 신부 측 자리에 유석의 엄마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니 눈에 띄는 것은 엄마 옆에 있는 빈 의자이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양가 부모의 모습에서 카메라, 차츰 식장 출입구 쪽으로 나아간다. 전반적으로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는 아주 흔한 결혼식이다.
출입구 옆 축의금함을 앞에 두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석 보인다.
카메라,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유석 미디엄숏, 20대의 유석이다. 20대의 유석은 40대의 유석보다 젊은것 말고도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지 않다.
유석은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지루한 듯 축의금함을 만지작된다. 유석의 지루한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띠기 시작한다.
[인서트]
수십 마리의 닭들 보인다. 날개를 퍼덕이고 고개를 앞뒤로 까딱된다. 불안정해 보인다.
황량한 들판에 건장한 황소 한 마리 어슬렁된다. 황소의 입김과 함께 코뚜레가 들썩인다. 모순적이다.
수백 마리의 돼지들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우리로 몰린다. 버겁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굼벵이들 바글 된다. 역동적이다.
선율이 끊기고 드넓은 배추밭이 펼쳐진다. 배추들은 수확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듯 튼실하다.
선율 끊기고 우중충한 하늘 아래 강한 바람소리만이 쓰라리게 헤집는다.
유석의 앞에 누군가 마주 서있다. 검은 정장, 빨간 넥타이 그리고 볼록한 배만이 보인다.
유석이 이어폰 줄을 아래로 당겨 이어폰을 제거한다. 동시에 바람소리 멎고 시끌벅적한 주변의 소음 들린다.
유석 역시 검은 정장, 파란 넥타이 그리고 날씬한 배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O.S) 이모부 : 유석아 가족사진 찍는다. 이만 들어가 봐라.
유석, 옷을 매만진다.
12. 애니메이션 (외부/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 사이...)
허름한 차림에 빼빼 마른 남자가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남자가 향하는 반대방향에서 바람이 부는 덕에 남자의 찢어진 코트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남자가 나아가는 방향 앞 수풀 속 피아노 한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남자는 살짝 의아해 하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건반을 두드린다. 남자의 손가락에 맞춰 느릿하며 우아한 선율이 흐른다. 하늘에서 사과 하나 떨어진다.
사과는 남자의 머리에 튕겨 바닥에 떨어진다.
남자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하늘을 쳐다본다. 잠시 후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건반을 다시 두드려 된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경쾌하고 빠른 리듬의 선율이 이어진다.
사과를 포함해 바나나, 토마토, 멜론, 참외, 복숭아 등의 온갖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채소가 남자의 주변에 떨어진다. 신이 난 남자는 과일 하나를 주워 입을 오물거리며 건반을 계속 두드린다.
이윽고 피아노를 두드려 되는 남자의 곁으로 개 3마리가 다가와 풀썩 쓰러져 죽는다. 닭 수십 마리가 줄지어 오더니 모가지가 날아간다.
커다란 돼지가 다가오더니 내장을 쏟아내며 죽는다. 돼지를 마지막으로 남자는 건반에서 손을 뗀다.
환희에 가득 찬 남자의 표정이... 섬뜩하다.
만화에서 장작불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그림 그대로인 장작불이 이글거린다.
화면 넓어지면 처음보다 살이 붙은 남자가 편한 자세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남자의 주변에는 동물의 뼈와 먹다 버린 과일들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다.
(O.S) 낯선 여자 : (살려달라는 듯) 꺄아아악~~~~
입을 쩝쩝대며 편하게 앉아있던 남자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란다. 잊었던 것이 생각난 그는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한다.
내달리는 남자의 얼굴 클로즈업된다. 남자의 숨은 점점 거칠어지고 땀은 비 오듯 내리며 얼굴은 절박하게 구겨진다. 숨소리 점점 가팔라지는 동시에 커진다. 듣기 거북해질 정도로 커진다.....
13. 본가 (내부/밤)
(클로즈업) 유석의 눈이 떠진다.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유석이 급하게 누운 자세를 일으켜 세워 주변을 둘러본다.
바닥에 앉아 축의금 장부를 기록하는 엄마, 돋보기안경을 쓴 엄마의 주변에 만원, 오만원 짜리 지폐와 봉투들이 나름의 규칙 하에 널브러져 있다.
유석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유석 : 아직도 안 끝났나....
엄마 : (유석을 한심하듯 쳐다보며) 잠이나 자라 화장실 갔다 온 고 사이를 못 참고 잠을 자나....
미안함을 느끼지만 엄마를 도와주기는 싫은 유석
유석 : (괜히 눈을 비비며) 후... 아직 많나?
엄마 : (장부를 기록하며) 응....
집안에 있는 벽시계가 12시 15분 언저리를 가리킨다.
유석 : (시계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 방향을 바라보며) 엄마 벌써 12시다 늙은이 잘 시간 한참 지났다.
엄마 : (봉투를 뒤적이며) 한 시간만 더 하면 된다. (곁눈질로 유석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피고 올래?
유석은 기지개를 펴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유석 : (봉투 안에 든 돈을 확인하며) 엄마... 근데 나 결혼할 때도 집 한 채 해줄 끼가?
엄마 : (빈 봉투를 던지며) 지랄...
엄마는 신음소리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유석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해 괜히 화장실이라도 가는 듯하다.
유석 : (짜증 내듯) 또 가나
(O.S) 엄마 : 이번엔 소변이다. 마한놈....자지 마라
억울한 유석의 표정
14. 편의점 (내부/ 밤)
재깍재깍 되며 12시 15분을 가리키는 벽시계, 목재로 만들어진 시계가 꽤나 이색적이다.
편의점 유니폼을 걸치고 있는 유석, 진열대를 가로질러 편의점 냉장고로 향한다.
냉장고에서 음료수 2개를 꺼내 든다.
편의점 밖 유석의 친구가 테라스 의자에 앉아있다. 다부지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청년이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는 유석
15. 편의점 (외부/밤)
유석이 친구가 앉아있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음료수를 건네준다. 둘은 말없이 담배를 빼 문다.
유석 : (담배연기를 뿜으며) 공부는 잘되고 있냐?
친구 : 공부? 야 필기는 좇밥이야 실기가 문제지 (코를 한번 훌쩍인다)야 나 요새 헬스 다시 끊었다.
유석 : 올~~~ 이쁜 애들 좀 있냐?
친구 : ㅋㅋㅋ 병신... 여기에 이쁜 애들이 있을 거 같음? (시선을 잠시 위로 둔 뒤) 아.... 귀여운 애 하나 있긴 하더라
(클로즈업) 유석의 능글맞은 눈이 장난스럽게 좌에서 우로 움직인다.
(클로즈업) 친구의 능글맞은 눈이 장난스럽게 우에서 좌로 움직인다.
유석 : 야 나랑 같이 여기 뜨자! 니 나랑 같이 조선소 가자!
친구 : (피식하고 비웃으며) 싫어.... 난 편하게 돈 벌거라니깐
유석 : (담배를 꼬나물며) ㅋㅋㅋ 소방관이 편한 줄 아냐? 이거 미친 새끼네
친구 : (담배에 불을 붙이며) ㅋㅋㅋ 대충 하면 돼 대충 (유석을 바라보며) 근데 너네 집 돈 많잖아
유석 : 야.... 그게 내 돈이냐? [O.S 씨발!]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아이 씨이발
친구 : (담담하게 담배를 태우며) ㅋㅋㅋ와... 나 저 여자 오늘만 세 번째 본다.
선캡을 쓴 여자가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 보인다. 밤길 산보를 하는 듯하지만 나풀 되는 긴치마가 묘하다. 여자의 실루엣은 점점 멀어진다. 그녀가 가로지르는 도로 한쪽 가에 촌스러운 간판의 모텔들이 즐비해 있어서일까? 여자의 모습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카메라, 미세하게 흔들린다.
(O.S) 유석 : 난 두 번째.....
16. 골목/도로( 외부/낮)
*CROWN – ANABOLIC BEATZ 흐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얇은 대나무 줄기 하나 살랑살랑 흔들린다. 대나무에 묶인 깃발도 같이 흔들린다.
카메라, 서서히 아래로 내려온다. 파란 양철지붕이 기와 식 지붕을 흉내 내고 있다. 더 내려오면 시멘트 벽돌로 만들어진 담벼락 보인다. 담벼락 위로 날카로운 방향이 위를 향한 채 깨진 유리병이 꽂혀있다. 유석이 그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태우고 있다.
유석이 기댄 담벼락엔 “철학원” 이란 간판이 붙어있다. 간판 주변으로 사주, 궁합, 운세.... 등의 조잡스러운 단어들로 구성된 현수막이 같이 붙어있다.
이어폰을 낀 유석은 흐르고 있는 선율에 심취, 묘한 그루브를 탄다. 살짝살짝 고개를 까딱이는가 하면 손목을 이리저리 베베 꼬거나 한다. 꽁초를 휙 던지고 골목을 빠져나간다.
막 인도로 들어선 순간 선캡을 쓴 여자와 부딪친다. 충격에 이어폰이 빠지고 선율 역시 끊긴다.
유석 : 아... 아 죄송합니.... [철썩]
선캡을 쓴 여자는 거리낌 없이 유석의 볼귀 짝을 후려 친다. 그러곤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유석을 신경도 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한 상가를 향해 씨발이라 외친다.
카메라, 당당한 그녀의 걸음과 함께 펄럭이는 치막 자락 응시한다.
유석과 선캡을 쓴 여자의 부딪힘을 건너편 도로에서 목격한 동네 형 보인다. 동네 형은 소아마비가 있어 평소에도 약간 놀란 듯한 행세지만 이번엔 유독 깜짝 놀랐음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런 표정으로 두 번 두리번거리고는 유석을 바라본다.
어이가 없는 유석은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다 동네 형이 자신의 험한 꼴을 목격했음을 알게 된다.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동네 형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다. 유석은 귀가 얼얼한지 귓불을 만지작된다.
17. 편의점 (내부/밤)
찌푸린 얼굴로 바코드를 찍는 유석,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가 꽤나 건성이다.
유석 : (심드렁하게) 8천7백 원이요....
(클로즈업) 한쪽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있다.
편의점 벽시계가 12시 15분 언저리를 가리킨다.
18. 편의점 (외부/밤)
테라스로 나와 담배를 태우는 유석, 여전히 찌푸린 표정을 유지한 채 밖을 주시한다. 신경질적으로 담배꽁초를 버리자마자 또 한 대의 담배를 문다. 마음이 심란하다.
검은색 고양이가 유석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카메라, 슬로 모션으로 고양이의 움직임 보여준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고양이의 등 근육, 매섭게 노려보는 눈빛 전체적으로 우아함을 뽐낸다. 고양이에게 담배꽁초가 던져진다. 동시에 슬로모션 그만두고 고양이 부리나케 카메라 앵글 밖으로 도망간다.
바닥에 내팽겨 쳐진 담배꽁초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19. 도로 (외부/밤)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유석의 뒷모습, 성큼성큼 되는 어깨의 흔들림, 화가 나있다.
20. 본가 (내부/낮)
찌푸린 얼굴로 밥을 먹는 유석, 미세하게 TV 소음 들린다. 쩝쩝되며 눈을 텔레비전 쪽으로 돌릴 때면 유석의 날카로운 눈매가 으쓱된다.
유석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줄무늬 안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마에 걸쳐져 있다.
프레임 넓어지면 유석이 자는 모습을 중심으로 방 인테리어가 보인다. 하얀색을 바탕으로 보라색 국화꽃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프린트되어있는 이불, 무늬가 없는 빨간 벽지, 방 한쪽 구석 책장에 가득 꽂힌 책, 책장이 부족해 바닥에 몇 권의 책들이 나뒹군다. 책상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회전의자.....
22. 편의점 (외부/밤)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는 유석, 간간히 책 밖으로 시선을 던져 주위를 살핀다. 주위를 살피던 유석, 누군가를 본 듯 기계적 해맑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유석 : (살짝 고개를 까닥 되며) 안녕하세요 형
유석이 편의점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들어가고 뒤따라 앞서 본 동네 형이 어그젓 들어선다.
23. 편의점 (내부/밤)
생기 넘치는 1.5L 붉은색 토마토 주스가 유석의 손에 의해 냉장고에서 꺼내진다.
유석은 동네 형이 무엇을 살지 미리 알고 있다. 토마토 주스 그리고 디스플러스 한 갑, 바코드를 찍고 검은 봉다리에 담는다.
동네 형도 평소와 같이 불편한 손을 활용하여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유석에게 건넨다.
동네 형 : (계산을 하는 유석을 보다 어눌한 발음으로) 괜찮아?
유석 : (카드를 동네 형에게 건네주며) 아뇨... 내가 그 년 만나면 죽여버릴 거예요
동네 형 : (해맑게 웃으며) 흐~아~~아~ 고생해~
동네형의 손에 다시 쥐어진 카드는 느긋하게 원래 위치했던 지갑에 끼워진다.
물건을 집어가기 전, 동네 형은 한쪽 팔을 쭉 뻗어 장난스럽게 유석의 어깨를 토닥인 후,
검은 봉다리에 가장 불편하지 않은 손가락인 새끼와 약지를 걸고는 편의점을 빠져나간다.
유석 : (편의점 밖으로 나가는 동네형을 향해) 들어가세요 형~
동네 형이 나서자마자 유석도 밖으로 나선다.
24. 편의점 (외부/밤)
전과 같이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유석, 순간 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밖을 주시한다는 걸 잊어버렸을 때 다행히도 [씨발]이란 외침이 들린다. 유석, 고개를 황급히 든다.
25. 거리 (외부/밤)
선캡을 쓴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카메라, 그녀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느라 버겁다.
카메라가 간신히 그녀의 곁에 다가서자 그녀의 걸음은 멈춘다.
누군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타박] 되는 소리가 의아해 고개가 살짝 뒤로 돌아간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이 올려진다.
그녀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찔거리고 올려진 손은 거칠게 그녀를 돌아 세운다.
[철썩] 선캡이 벗겨진다. 그녀의 얼굴이 머리카락에 가려진다.
거칠게 숨을 고르는 유석이 그녀의 앞에 마주 서있다.
한 대 얻어맞아 유석을 노려보는 그녀의 얼굴 프레임 가득 채운다.
여자의 민낯이 보인다. 그녀의 나이는 30 중반으로 보인다. 누렇게 뜬 얼굴색에 부스스해 보이지만 꾸미지 않은 여자가 풍기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이름 서영재, 영재는 험악한 얼굴로 고쳐 잡고 무언갈 말하려는 유석에게 왈칵 달려든다.
유석 : (영재의 손을 저지하려 하며) 아잇 씨팔
생각보다 격렬한 영재의 몸짓에 유석은 기가 죽는다. 유석은 주먹을 내지르는 여자를 상대해보지 않았다. 그런 유석이 발길질까지 해대는 여자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유석 : (영재의 손짓 발짓을 막아가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결국 큰 실수를 했다 느낀 유석은 연신 [미안합니다]를 외친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난투질에 영재의 허리춤에 몸을 기대는 유석,
영재 : 놔~~! 놔 이 개새끼야 놔~~~! 아아아악~!
유석의 필사적 몸짓에 의해 때릴 곳이 등판뿐인 영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흠씬 두들겨 팬다. 한동안 그렇게 미친 듯 발광하던 영재는 결국 지쳤는지 입을 다문다. 다소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됐는지 울기 시작한다.
영재 : (하늘을 올려다보며) 흐아앙~~
영재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은 유석은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지 울기 시작한다.
유석 :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떨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26. 거리 (외부/밤) *으스스하고 고요한 도시 풍경
한산한 거리에 몇몇의 불 켜진 상가들
한 상가 간판, 귀여운 돼지 캐릭터가 엄지 척을 하고 있다. 일부 전구 등이 맛이 갔는지 깜빡깜빡된다.
남녀 여럿이 교복을 입고 구석진 곳에 모여있다. 무엇을 하는지 식별은 안 되지만 왠지 불량해 보인다. 편견인 것일까?
낡은 유모차를 보행 보조차로 쓰는 할머니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느릿느릿 걸어간다.
큰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나시 차림의 남자, 가로등 하나가 남자의 주변을 밝혀준다.
27. 편의점 (외부/밤)
카메라, 거리를 두고 유석과 선캡을 쓴 영재가 편의점 테라스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 보여준다. 의자 등받이에 최대한으로 기댄 채 다리를 쫙 벌리고 있는 유석과 허리를 곧추 세운 채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영재..... 두 남녀는 그렇게 맞담을 핀다.
진이 빠져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석의 얼굴, 프레임 가득 채우며
유석 : 류유석입니다.
영재의 얼굴 프레임 가득 채우며 까만 선캡 아래로 입술이 움직인다.
영재 :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는) 서영재.
카메라, 다시 아까와 같은 거리를 유지한다.
페이드 아웃
28. 유석 엄마의 걸음 / 영재의 걸음(낮)
*[두두탁] 하는 북소리와 동시에 화면이 진행된다,
#(엄마/거리)
종종 거리는 발걸음
#(영재/거리)
빠른 발걸음
#(엄마/편의점 외부)
편의점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들어선다.
#(영재/거리)
선캡을 쓴 영재는 상가에 대고 욕설을 내지른다.
영재 : 씨발!
그녀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엄마/편의점 내부)
편의점 금고를 열고 돈을 회수하는 손
엄마 : (기계적 미소를 지으며) 그래 수고해~
회수가 끝나자마자 편의점 알바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선다.
#(영재/거리)
선캡을 살짝 올리고 담배를 태운다. 팔짱을 끼고 한쪽 다리를 타박된다.
영재 앞을 아슬아슬 지나치는 차들
#(엄마/거리)
종종거리는 발걸음
#(영재/거리)
빠른 발걸음
#(엄마/편의점 내부)
편의점 카운터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유석, [딸랑] 소리가 들려 고개를 올린다.
엄마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선다.
엄마 : 아들~
유석 : 어이~
#(영재/거리)
내달리던 발걸음 멈춘다. 선캡을 천천히 벗는 영재,
영재의 얼굴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것이 누군가를 의아스럽게 쳐다보는 듯하다. 눈매에 힘이 없는 것이 다소 독기가 빠져있다.
29. 본가 (내부/낮)
유석과 엄마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달그락 거리는 수저 소리와 쩝쩝대는 소리만이 어색하게 흐른다. 분위기가 냉랭하다. 유석은 죄인 마냥 고개를 최대한 들지 않으며 밥을 먹는다. 반면 엄마는 음식을 씹어 넘길 때면 유석을 냉랭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먹고 남은 음식을 반찬통에 담는 엄마, 반찬 통 주변을 행주로 닦아 가며 깔끔함을 보인다.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안 역시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설거지를 하는 유석, 슬쩍슬쩍 고개를 돌리며 엄마의 낌새를 확인한다.
유석 : (설거지를 하며) 엄마..... 야간 알바 전화 온 거 있나?
대답이 없다, 텔레비전 소리만이 어설프게 들린다.
(O.S) 엄마 : 후.....
설거지를 끝낸 유석은 슬쩍만 바라보던 엄마를 제대로 응시해본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며 허리를 내돌리고 있다.
무서울 것 같던 엄마의 이미지가 조금 웃기게 받아들여진다. 유석은 나갈 채비를 한다. 가방 하날 메고, 담배를 챙기고, 귀에 이어폰을 끼는 것으로 준비는 끝난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집 밖을 나선다.
[철커덕] 엄마는 내돌리던 허리를 멈춘다.
엄마 : 후....
30. 영재의 집 (내부/밤)
식탁 위 먹고 남은 음식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다. 대부분 패스트푸드다.
영재의 아빠와 영재 단 둘이 찍힌 가족사진(*S#1에 나왔던 남자와 소녀),
성경을 포함해 기독교 관련된 서적이 꽂힌 책장, 책장에는 책 이외에도 다 죽어가는 난초가 검은색 화분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고개를 숙이자 지켜보신다’고 적힌 서예액자가 텔레비전 위 걸려있다.
자물쇠가 채워진 문짝, 문짝과 자물쇠에는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등의 귀여운 스티커가 붙어있다.
싱크대 위에 내팽개쳐진 식칼과 가위를 포함한 식기구들,
노란색 장판에 커다랗게 그을린 자국
널브러져 있는 남녀의 옷
영재와 유석이 침대 위 서로 뒤엉켜있다. 영재는 유석의 왼쪽 팔에 기대 누워있다. 침대 옆 큰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볕이 두 남녀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유석 : 누나 오늘도 나가나?
유석의 거북한 질문에 몸이 무거워진 영재,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영재 : (침대에 빠져나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씨발 니 이제 우리 집 오지 마라
유석 : (담배를 찾아 피며) 그만해도 될 거 같다 나는
영재 : (옷을 입다 말고 발을 거칠게 구르며) 답답해~~~ 에~~
유석은 그런 영재의 행동이 대수롭지 않다. 재떨이 겸으로 쓰이는 주전자를 집어 들고 유석도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창가에 주전자를 놓고는 옷을 주워 입기 시작한다.
유석 : (셔츠 단추를 채우며) 오늘 새로운 알바 온다더라 (침묵) 여자다....
영재는 고개를 획 돌려 유석을 노려보고는 선캡을 홱 내린다. 그런 영재가 유석은 사랑스럽다.
유석, 비웃듯 미소 짓는다.
31. 유석의 준비과정 / 영재와 유석의 사랑 행위
*JOEY BADASS TYPE BEAT – LEARNING 흐른다.
#(편의점/밤)
편의점에서 유석과 새로 온 여자 알바가 뭐라 뭐라 노닥거리는 모습이 편의점 외부 창문으로 비친다. 친밀해 보인다.
#(거리/낮)
선캡을 벗는 영재 (S#28과 같은 장면)
#(본가/낮)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검색을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유석
#(어딘가?/낮이든 밤이든)
(클로즈업) 어린애처럼 우는 유석의 얼굴 / (클로즈업) 남녀 두 손이 꽉 줘진다.
#(PC방/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안됨)
PC방에서 친구와 게임을 하는 유석,
유석 : (인상을 쓰며) 야! 아니... 내가 오라고 했잖아 장난치냐?
친구는 어이가 없어 유석을 쳐다본다.
유석 : (인상을 더 쓰며) 뭐 $%@
PC방 흡연실에서 친구와 시시덕거리는 유석, 좁은 공간에 연기가 자욱하다.
#(거리/밤)
영재와 유석이 나란히 인도를 걸어간다. 선캡을 쓰고 있는 영재, 유석 역시 선캡을 쓰고 있다. 두 남녀의 맞잡은 손에 유독 눈길이 간다.
#(본가/낮)
유석과 엄마가 본가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 다툰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유석이 혼이 나고 있다. 유석은 고개를 숙이고 엄마는 유석의 왼쪽 팔목을 꽉 쥐고 유석의 눈을 마주 보려 한다.
(클로즈 업) 엄마의 손가락이 유석의 팔뚝을 파고든다.
(O.S) 엄마 : (유석의 팔뚝이 흔들리며) 야! 내가 언제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한적 있어!
엄마 : (표정이 풀어지며 애걸하듯이) 이번 한 번만 엄마 뜻대로 하자 유석아..... 제발......
유석은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클로즈업) 꽉 깨물리는 유석의 아랫입술
#(거리/밤)
[씨발] 하고 상가에 외치는 영재의 입술로 디졸브. 덩달아 유석도 [씨발]하고 외친다. 둘 다 선캡을 쓰고 있다.
#(본가/밤)
텔레비전 불빛이 간신히 허리를 내돌리는 엄마를 비춰준다.
엄마의 헛헛해 보이는 얼굴이 안쓰럽다.
#(영재의 집/낮)
영재와 유석의 섹스, 영재나 유석이나 끙끙 될 뿐 신음소리를 억지로 참아댄다. 특히나 영재는 신음소리를 내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필사적으로 참는다. 어설프고 힘겨워 보이는 섹스다.
#(본가/낮)
캐리어 가방에 이것저것 물건을 담는 유석, 무엇인가 단단히 결심한 듯 진지한 얼굴이다.
(클로즈업) 휴대폰 액정에 전화가 왔음을 알게 해주는 화면 보인다. ‘팀장님?’ 그리고 ‘010 – xxxx – xxxx' 적혀있다,
유석이 굳은 얼굴을 풀고 친절하게 전화를 응대한다.
#(영재의 집/ 낮)
(클로즈업) 아기자기한 캐릭터 스티커가 붙은 자물쇠가 영재의 손에 의해 만지작된다.
영재가 집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주섬 되며 신는다. 문 밖을 나서기 전 고개를 집 쪽으로 돌리는 영재, 표정이 영 띠껍다.
바닥에 뒤집어 까진 채로 내팽개쳐진 선캡
#(길거리/낮)
(클로즈업) 캐리어 가방의 바퀴가 바닥 지면에 따라 덜컹거린다.
프레임 넓어지면 영재와 유석이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 보인다.
끈질기게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유석과 영재..... 아니 연인, 연인 앞을 거칠게 내달리는 차들, 이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연인 앞을 내달리던 차들이 멈춘다.
더 이상 영재는 선캡을 쓰고 있지 않다.
-BLACK-
32. 길거리 (외부/낮)
페이드인 되면 어그젓 걸어가는 발 보인다. 두 발이 서로 엉킬 듯 엉키지 않으며 위태위태한 장면을 연출한다. 새끼와 약지 손가락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는 검은 봉지..... 봉지 위쪽으로 삐져나온 것을 봤을 때 1.5L 토마토 주스로 추정된다.
프레임 넓어지면 나이가 20살은 더 먹은 동네 형이 걸어간다. 전 보다 몸이 더 불편해진 듯 하지만 동네 형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할 때쯤 동네 형은 걸음을 멈추고, 아래쪽을 유심히 응시한다.
하수구 구멍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명함 하나 보인다.
명함은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구성돼 매우 촌스럽다. 거리감에 큰 글씨들만이 식별되는데...... ‘히 어 로’, ‘류 유 석’, ‘010-XXXX-XXXX’
프레임 안으로 동네형의 불편한 손가락이 들어와 2번 집기를 실패한 후 명함을 집어 올린다.
‘이게 뭔가.....’ 싶은 표정으로 명함을 보던 동네형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동네 형 : (활짝 웃으며) 흐~아~아~~
다시 –BLACK-
33. 조선소 (외부/낮)
큼지막한 배수관에서 강한 물줄기 [콸콸] 흘러나온다.
조선소 도크 바닥에 물이 차오른다.
물에 의해 떠오르는 쓰레기들 보인다.
물의 높이가 어느새 큼지막한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갔다.
도크 문이 개방되고.....
큼지막한 배가 좌우로 휘청거리며 바닷길로 나선다.
34. 조선소 (외부/낮)
지저분한 복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석, 조선소 비계작업이다.
팀장 : (아래를 내려다보며) 2 메다
2M 족장을 팀장에게 올려주는 유석,
유석은 아래에서 자제를 올려주고 팀장은 유석이 건네주는 자제를 받아 위에서 설치를 해나간다. 이런 식으로 순서에 맞게 혹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비계를 한참 동안 설치한다.
팀장 : 야 그 밑에 철골 하나 끼라
유석 : (사다리를 한번 발로 걷어차며) 예~~
유석은 사다리 아랫부분 철재 벽에 철골을 고정시킨다. 깔깔이 쓰는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사다리와 철골을 철사로 단단히 고정시킨 후 유석은 쭈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킨다.
어느 철제문에서 대여섯 명의 족장공들이 밖으로 나온다. 유석은 앞장서서 나오는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는 자제를 받아 든다.
유석이 일정한 리듬으로 자제를 한쪽에 정리하고 나머지는 길게 줄을 지어 유석이 있는 방향으로 손에 손을 거쳐 날라준다. 불규칙한 조선소 소음 아래 리드미컬하게 합을 맞춰 일하고 있는 유석의 모습이 어엿한 족장공이 됐음을 보여준다.
35. 조선소 데크 위 흡연실 (외부/낮)
유석이 속한 비계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태우고 있다. 팀장의 나이는 50 초반으로 보인다. 유석을 포함한 다른 팀원들의 연령대는 20에서 30 중반 정도의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다. 허름한 검은색 가방에서 커피를 탈 재료를 꺼내는 유석, 일회용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기 시작한다. 유석 혼자 분주하다.
동료 형 1 : (유석이 만든 커피를 짚어가며) 막내야 니 내일 회식 오나?
유석 : (커피 한잔을 팀장에게 건네주며) 아뇨 못 가요
동료 형 1 : (살짝 화난 표정을 지으며) 왜!
유석 : 저 교회 가야 되잖아요~
동료 형 1 : 야 아침에 교회 갔다가 회식 오면 되잖아~~ 나도 교회 다녀
유석 : ㅋㅋㅋ 오랜만에 와이프랑 데이트 좀 하려구요
동료 형 1 : 아이 개새끼.... 존내게 빼네 나도 와이프 있어
유석 : 아직도 이혼 안 했어요?
주변에서 낄낄되며 웃는다.
동료 형 1 : ㅋㅋㅋ (골치 아프다는 듯 한쪽 손을 이마에 갖다 대며) 하 시발 유석아... 교회 가기 싫어 죽겄다 진짜.... (손을 이마에서 때며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다) 일요일에 뭐하는 짓이냐....고
동료 형 2 : (웃다 정색을 하며) 유석, 그래서 니 진짜 회식 못 온다고?
유석 : (미안한 척 표정을 지으며) 네..... 데이트해야죠 (해맑게 웃는다)
동료 형 2 : (진심으로 놀라워하며) 그래? 야 내일 팀장님이 떡 값까지 대준다는데 진짜 안 온다고?
팀장 : 미친놈 아냐 저거..... 야 그거 비밀이라고야!
다 같이 피식되며 웃는다. 유석만이 쓴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태운다.
유석은 몸을 비틀어 대며 몸을 일으킨다.
데크 위 난간대를 움켜쥐며 시선을 멀리 둔다. 회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괜스레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든다. 유석이 바라보고 있는 넉넉해 보이는 섬과 바다 보인다.
조그마한 면적의 바닷물이 프레임 안에 잡힌다. 바닷물에 햇빛이 반사되고 출렁이는 물결이 더해져 무수하게 반짝거린다.
36. 우리 집 원룸 (내부/낮)
이리저리 얼굴을 휘잡아가며 화장하는 영재,
정장을 입은 유석은 침대에 뻗어 있다. 한쪽 손은 음흉하게도 영재의 엉덩이를 주물럭 거린다. 화장을 다 끝낸 영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석을 향해 뒤돈다. 단발머리였던 영재는 어느새 아름다운 긴 생머리를 뽐낸다.
유석은 당연하게도 영재의 아름다움을 미소로 응수한다.
유석 : (침대에서 빠져나와 기지개를 피며) 가자
둘은 현관으로 향한다. 유석은 괜스레 영재의 엉덩이를 한번 더 움켜쥔다.
37. 교회 (내부/낮)
교회 목사가 강연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단 따위는 없다. 무선마이크만이 목사의 손에 쥐어져 있다. 빔 프로젝터 하나 있는데 강연과 별 관계없는 화면이 목사 뒤에 깔려있다.
목사 : 제가 어제 유튜브를 봤어요 재밌더라구요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거였는데요 막 싸우는 거예요 (피식 되고 혼자 웃는다) 중국인들끼리 막 싸우더라구요 한 놈은 (양팔을 세로로 쭉 찢으며) 이~~따만 한 긴 칼을 들고 몇 놈은 도끼를 쥐고 미친 듯이 싸우는 거예요~~ 허이구~ (코를 한번 훌쩍된다) 화질이 나빠 피까지는 안 보이지만 아주 야만적이더라구요
연설의 내용은 참 보잘것없지만 목사의 제스처는 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중저음에 쓸만한 울림통을 가진 목사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할 수 있다.
38. 교회 (외부/낮)
교회 건물 청탑 십자가 보인다.
돼지의 입, 쿰쩍쿰쩍 사료를 집어삼킨다.
하얀색 페인트칠이 돼 있는 나무 팻말 보인다. 검은색 귀여운 글씨채로 ‘댕글이’ 그리고 그 아래 빨간색으로 ‘※교회 소유물’ 적혀 있다.
나무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나무 울타리 틈 사이로 커다란 돼지 보인다. 돼지의 눈매가 매섭다.
39. 교회 (내부/낮)
다시 목사의 강연
목사 : 가끔 우리 형제자매님들 중에..... 본인이 아프거나 주변에 아프신 분들이 생기면 저한테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연극하듯) 목사님.... 우리 애가 열이 많이 나요, 목사님 우리 집 어르신이 갑자기 구토를 하세요.... (목소리를 높이며) 나보고 어떡하라고요!
강연장에 작은 웃음소리가 모여 커진다.
목사 :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119 있잖아요~ 119에 먼저 전화하시고! 그리고 나중에 저한테 전화를 주세요 (익살맞게 단호한 표정을 취한다) 응급처치는 제 관할이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는 장~~~ 기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치료를 해드리는 거지 급한 건 먼저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귀엽게 쉐도우 복싱을 하며) 다들 아시겠죠?
(클로즈업) 목사가 위를 올려다보며 눈부시다 듯 인상을 찡그린다. 손으로 빛을 가리는 목사
목사 : (손가락으로 대충 위를 가리키며) 야 거기 프로덱터 좀 꺼라 아.... 이 눈부셔....
다시 한번 강연장에 작은 웃음소리가 모여 커진다.
목사 : 자... 그러면 끝으로 오늘 이 자리를 새롭게 빛내주신 형제자매님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지영 자매님 [아멘~] 김덕웅 형제님 [아멘~] 이남구 자매님 [아멘~] 전구석 자매님 [아멘~]...
성가대가 좌우로 몸을 흔들어가며 찬송가를 부른다. 미리 선택받은 열댓 명의 신자는 강단 위에서 성가대 복을 갖추고 찬송가를 부른다.
불특정 다수는 강단 아래서 강단 위에 있는 성가대와 같은 동작을 취하며 노래를 부른다. 몇몇 이들은 남들보다 격하게 몸을 흔들어대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는 자도 있다. 그럼에도 다들 웃음을 잊지 잃지 않는다.
예배 의자에 유석과 영재 앉아있다. 찬송가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앞에 나서서 춤추는 자들만이 아니다. 영재는 꽉쥔 두 손에 머리를 쥐어박고 있다.
눈을 찔끔찔끔 되감아가며 몸을 떨기도 한다. 유석은 그런 영재를 덤덤하게 쳐다본다.
(N.A) 유석 : 차를 타다. 교회를 간다. 나는 불안합니다.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는 소리가 깔린다.)
40. 차 (내부/낮)
영재는 운전을 하고 유석은 영재의 귓불을 만지작거린다. 핸들을 돌리는 모습이나 살짝 긴장한 듯한 영재의 모습을 봤을 때 아직 운전이 익숙지 않은 듯하다.
[빠~아앙] 클락션 소리 울린다. 영재 놀라 살짝 움찔거린다.
유석 : 어~어! 괜찮아.... 저 새끼가 미친 새끼인 거야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영재,
41. 골목 (외부/낮)
유석은 무게가 꽤 나가는 봉다리 두 개를 쥐고 서 있다. 영재의 주차를 지켜보며 담배를 꺼내 문다. 빈 갑을 찌그리고는 실수로 흘리듯 버린다.
차와 차 사이에 주차가 된다. [털, 털 푸~] 차 시동이 꺼지고
영재 : (차문을 박차고 나온다) 가자
유석 : 오~ 깔끔하네~
폴짝거리며 와락 유석을 끌어안는 영재,
유석 : (아래에 있는 영재를 바라보며) 누나 나 담배 좀 사 올게 먼저 드가라
영재는 유석을 비난하듯 노려보며 유석이 물고 있는 담배를 뺏어 핀다. ‘어쩔 건데’ 식으로 치켜든 영재의 고갯짓이 당돌하다.
유석 : (바보처럼 웃으며) 금방 올게
영재 : (그제야 유석이 들고 있는 봉다리를 가로챈다) 응 빨리 와
유석 : (피식되며) 응
유석은 뒤돌아 발걸음을 뗀다.
(O.S) 영재 : 사랑해
영재의 외침이 들린다. 유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대충 손짓을 해댄다.
영재는 그런 유석의 뒷모습이 마냥 귀여운지 해맑게 웃는다. 생기발랄한 영재의 표정이 놀랍다.
42. 조선소 (외부/낮)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조선소 인부들이 야족장 근처로 모여든다.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담배를 태우며 노닥거린다.
유석은 그런 인부들을 멀찍이 구경하며 구석에서 담배를 태운다. 유석이 기댄 큼지막한 초록색 고철함이 유석을 꾸며준다. 이어폰을 낀 유석은 몸을 건들건들 되며 노래에 심취해있다. 흥에 겨워 몸짓이 커질 때면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본다.
관리자 : 조회 시작합니다!
노닥거리던 인부들이 한 장소로 향해 정해진 대열로 줄을 서기 시작한다.
유석 : (이어폰 줄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후....
유석도 무리 쪽으로 걸어간다. 줄과 열을 맞춰 선 인부들이 국민체조를 시작한다. 국민 체조를 할 때만은 안전모를 벗어야 한다. 그만큼 체조에 본격적으로 임하겠다는 뜻이다. 아침체조의 필요성을 인부들만큼 절실히 느끼는 자들은 드물다. 숨쉬기를 끝으로 체조가 끝나고 다들 안전모를 주워 쓴다.
관리자 : 소장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소장이 무선마이크를 들고 인파들 앞에 선다.
소장 : 다들 고생이 많은 건 알지만 오늘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요. 맨~~날 우리 공정이 바쁘다고 그렇게나 말을 하는데 팀별로 결근율이 왜 이렇게 높은 거죠? 내가 웬만하면 가만히 있겠어요 (잠시 침묵, 목소리를 과하게 높이며) 근데 이건 좀 심하다 싶어요!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앞으로 무단결근이 있으면 팀장을 통해서 무슨 조치를 취할 생각이니깐 신경 써주시길 바랍니다. (누그러진 분위기를 음미하는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오늘 잔업 있으니깐 팀별로 인원수 맞춰주세요 이상!
소장의 [이상!]을 끝으로 인부들 각자 흩어진다.
유석이 자전거 안장에 올라탄다. 유석의 주변으로 자전거를 타고 각자의 작업현장으로 흩어지는 인부들 보인다. 페달을 밟으며 나아가는 유석, 팀원들과 함께 커다란 블록들 사이를 질주한다.
작업현장 근처 작업 벨트와 연장을 만지작되는 유석, 시노를 넣다 뺐다를 반복한다. 녹슨 기둥에 기댄 유석의 주변으로 팀원들이 캔커피를 홀짝이며 담배를 태운다.
팀장 : (담배를 집어던지며) 가자.... 번선 두 다발씩 챙겨가자
유석 : 예
서비스 타워를 타고 배에 올라타는 유석과 팀원들, 커다란 배에 비해 작은 사람들....
43. 조선소 폐쇄공간 (내부/낮) *어두컴컴하다
[쾅 쾅 쾅]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깨에 철사를 짊어진 유석과 팀원들이 몸을 구겨 넣으며 작은 구멍들을 통과한다. 비계 자제를 고정시키고 있는 철사를 절단기로 자른다. 우수수 쏟아지는 비계 자제들....
흔히 손치기라 하는 자재 운반법을 행하는 유석, 받고 내주고 받고 내주고...... 작은 구멍으로 자제를 넣어주면 누군가 빠르게 훔친다.
유석이 자재를 위로 올려주면 팀원 중 하나가 받아 설치한다. [올려, 2m, 철사, G2 ] 등의 필요한 말들만이 크게 외쳐진다. 밀폐공간 속 크고 작은 소리들이 웅웅 된다.
마무리 시노질을 하는 팀장, 시노로 방금 묶은 철사를 두 번 때려 다듬는다. [탁 탁]
팀장 : (아래를 바라보며) 올려
유석을 포함한 팀원들이 팀장의 마지막 시노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듯 남은 자재들을 위쪽으로 올린다.
젤 위쪽에 위치한 팀장은 머리 위 구멍으로 자제를 밀쳐낸다. 구멍을 통해 햇빛이 팀장에게 내리쬔다.
구멍 주변에 올려친 자제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마지막으로 철골 하나 던져지고 팀장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팀원들이 구멍 밖으로 나온다.
양손에 자재를 들고 옮기는 팀원들 차곡차곡 한 곳에 자재들을 정리한다. 유석만이 대열에서 이탈해 홀로 멀리 걸어 나간다.
44. 조선소 내 매점 (내부/낮)
매점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를 바구니에 담는 유석, 대충 쓸어 담고 계산대로 향한다.
유석 : (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리며) 이모 한라산 하나 주세요
이모 : 한라산?
이모는 한참을 두리번대며 담배 대를 살핀다, 이런 식으로 이모가 두리번 될 때면 바구니에서 음료수를 꺼내는 건 유석의 몫이다.
유석 : (손짓을 해대며) 저기.... 저 있네요.... 네 그거 맞아요
이모 : 뭐 이런 걸 피노
유석 : (카드를 건네며) ㅋㅋㅋ 제가 피는 거 아니에요~
45. 조선소 휴식공간 (외부/낮)
검은 봉지를 들고 팀원들이 쉬는 곳으로 향하는 유석, 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 팀원들에게 하나씩 내준다. 팀장에게 한라산을 함께 건넨다.
팀장 : (담배를 건네받으며) 어 고맙다!
(클로즈업) 한라산 포장이 벗겨지고 담배 한 대 팀장의 입술에 물린다. 불이 붙고 연기 내뿜어진다.
[인서트]
한라산 담배 갑에 그려진 산맥을 따라 나그네가 걸어간다.
나그네 : 영차....
나그네의 움직임에서 신삥이 버스에서 하차하는 장면으로 디졸브, 이 남자 젊은 나이임에도 탈모가 진행 중이다. 주변을 둘러보는 신삥, 뒤에서 누군가와 부딪혀 몸이 비틀된다.
신삥 :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아... 아 죄송합니다.
동료 형 4 : (문득 침묵을 깰 수 있다는 게 즐거운 듯 팀장을 바라보며) 팀장님 새로 온다는 애 내일 온다고 하셨나요?
팀장 :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어.... 아니 목요일에 온다고 하더라
유석 : 몇 살이래요?
팀장 :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유석을 쳐다본다) 31살!
유석 : 워메 좇됐네 (동료 형 2를 바라보며) 형이랑 친구네?
동료 형 2 : 야 나이 많다고 쫄고 그러지 마 어리바리 타면 죽여버려 알겠지
유석 : ㅋㅋㅋ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죽여버리죠
동료 형 2 : 그래 혹시나 깝치면 니 문신 보여주면 되잖아 ㅋㅋㅋ
유석 : 아이씨 그런 용도가 아니라니깐요....
팀장 : 유석아 다 완성된 거냐? 함 보자?
유석은 남들에게 버젓이 자신의 문신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괜스레 팀의 분위기를 흐릴 수 없는 노릇이다. 유석은 머뭇거리며 왼쪽 팔을 걷어 부쳐 보인다.
동양풍의 문신이 화려한 색감으로 새겨져 있다.
[삐~~ 삐! 삐익] 호루라기 소리 울린다. 카메라, 천천히 움직이며 쭈그려 담배를 태우는 팀원들 보여준다. 다들 적의에 찬 눈으로 한쪽 방향을 쳐다본다. 꽤나 위협적이다.
노란색 안전모를 쓴 뚱뚱한 안전요원이 어슬렁되며 카메라 앞으로 걸어온다. 걸음을 멈추고 여유로움을 과시하는지 호루라기를 한번 더 분다. [삐~~ 이익] 거만한 표정의 안전요원, 잠시 침묵을 지키다 활짝 웃음 짓는다
안전요원 : 팀장님~~ 여기서 이렇게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험악한 팀장의 얼굴에 비굴한 웃음 지어진다. 쭈그렸던 다리를 피며 일어선다.
팀장 : 에이~ 저희 꽁초는 잘 치워둘게요 하하..
안전요원 : (고개로 뒤쪽을 슬며시 가리키며) 저기~ 뒤에 바로 있는데.... 그렇게 하시죠? 팀장님?
팀장 : (머리를 긁적이며) 아... 그늘이 없어서...
‘흡연 지정 구역’이라 적힌 노란색 팻말 주변으로 아까와 같이 적의에 찬 눈빛을 하고 담배를 태우는 팀원들 보인다. 강한 햇빛이 짜증스럽다.
46. 우리 집 원룸 (내부/낮)
유석과 비슷한 계열의 문신이 새겨진 영재의 팔
부스스 되며 잠에서 깨는 영재,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다. 누운 채로 휴대폰을 더듬거리며 찾은 뒤 만지작된다.
영재 : (괜스레 코를 훌쩍되며) 흐음...
한참을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더니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이것저것 방안을 치우기 시작한다. 작은 방이라 얼마 걸리지 않는다.
샤워를 하며 자신의 머리 쪽에 흐르는 물을 따라 머리를 쓰다듬는 영재
샤워를 하고 나온 나체의 영재, 수건으로 머리를 비벼댄다. 브라와 팬티를 주섬 되며 입는다.
알약을 집어삼킨다. 컵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1.5L 페트병 그대로 들어마신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외출이라도 하는지 꽤나 신중하게 옷을 차려입는다.
무표정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세탁물을 세탁기에 욱여넣는다. 다이소 3천 원짜리의 빨간 주전자 [삐~~~~] 소리를 내며 김을 뿜는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일본식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는 영재,
세탁기 앞 간이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천천히 홀짝인다. 다리를 꼬고 앉은 영재는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
카메라, [투닥투닥] 돌아가는 세탁기 보여준다.
47. 거리 (외부/밤)
(클로즈업) 노란색 빛을 내는 가로등, 그 주변으로 벌레들 나댄다.
카메라. 가로등 빛의 경계선을 알 수 있게 끔 위치 잡는다.
가로등 아래 구부러진 허리에 노쇠한 할머니가 파란색 손수레에 폐지를 차곡차곡 정리한다. 빛의 경계선 안으로 영재가 빈 박스를 들고 들어선다. 할머니 곁에서 주춤하는 영재
영재 : (허리를 살짝 굽히며) 저..... 이거 여기에 둘까요?
할머니 : (영재를 쳐다보며) 으엉.... 글허게 혀
영재는 빈 박스를 손수레 근처에 내려놓는다. 그녀의 행동에 살짝의 미안함 혹은 겸연쩍음이 묻어난다.
영재 : (꾸벅) 감사합니다.....
영재는 유유히 빛의 경계선 밖으로 걸어 나간다.
48. 우리 집 원룸 (내부/밤)
냉장고가 열린다. 노란색 냉장고 불이 켜진다. 풍부한 식자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영재의 손이 뒤적거리며 식자재 일부를 꺼낸다.
영재의 칼질이 어설프지만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요리가 얼추 마무리되었을 때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주변을 행주로 닦아내는 깔끔함을 보인다. 앉은뱅이 탁자에 놓인 음식들,
영재는 세탁기 앞 간이식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태운다. 손에 재떨이를 쥐고는 담배연기를 창가 쪽으로 씀씀이 뱉는다. [삐, 삐, 삐] 영재의 시선이 현관문에 고정된다.
유석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유석 : (미소를 지으며) 어이~
영재 : (머리를 긁적 대며) 빨리 씻어 나 배고파
49. 욕실 (내부/밤)
샤워 타올로 몸을 박박 미는 유석 이리저리 다리도 들어가며 꼼꼼하게 박박 문질러댄다.
욕실 배수구 쪽으로 검은색 땟국물이 소용돌이친다.
(N.A) 유석 : 더럽다, 보고 싶다, 안고 싶다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는 소리 깔린다.)
50. 우리 집 원룸 (내부/밤)
영재와 유석이 앉은뱅이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
영재 : (젓가락으로 접시를 가리키며) 어때 이거 맛있어?
유석 : (오물오물되며) 모양만 이쁘지 별론데?
영재 : 그래? 똑같이 한 건데 별로야?
유석 : 먹을만해 무슨..... 베트남 음식인가?
영재 : 응 무슨 검은색 소스 넣던데 뭔지 모르겠더라
[인서트]
썰렁한 아시아 마트에 베트남 코코넛 소스 줄지어 있다.
영재 : 그래서 그냥 굴소스 넣었어
유석은 무슨 썩은 거라도 먹은 양 인상을 찌푸린다.
영재 : ㅋㅋ내일 같이 그... 아시아 마트 좀 가자
영재는 괜스레 유석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고개를 흔들거린다. 영재의 아양에 유석은 헤벌죽 하다 말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유석 : 안돼.... 냉장고에 음식이 너무 많아....
영재 : 딴 거 안사고 소스만 살게 카레가루도 사야 한단 말이야
유석 : 진짜 소스만 사는 거다 또 요상한 생선 사서 난리 치면 죽여버린다.
영재 : (깔깔 웃으며) 알았어~ 안 사이 새기야~
유석 : ㅋㅋㅋ알았어 생각해 보고.... 근데 누나 이제 운전할 수 있잖아 주차도 잘하던데?
유석의 말에 영재의 분위기가 바뀐다. 턱을 괴며 고개를 돌리고는 시선을 멀리 둔다. 순식간에 맥이 빠져버린 영재다
영재 :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싫어 같이 가.....
영재는 수저를 놓고 약을 챙겨 먹는다. 밥을 다 먹었음에도 유석 앞을 지킨다.
영재 : 맞다 오늘 OOO 자살했다고 하더라
유석 : OOO이 누군데?
영재 : 개그맨. 별로 웃기지는 않아
유석 : 아.... 기억난다. (휴대폰을 영재에게 들이밀며) 애 맞지?
영재 : 응
유석 : (다시 밥을 먹으며) 왜 죽었데?
영재 : (잠시 생각하는 척하며) 몰라..
[인서트] - 장례식장(내부/밤)
영재 아빠의 영정사진에 국화꽃 한 송이 슬로 모션으로 떨어진다.
상복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재, 초췌해 보인다. 고개를 들더니 순간 무척 더러운 거라도 본 듯 얼굴이 일그러진다.
(클로즈업) 투박한 손이 한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쥔다.
영재 : (인상을 쓰며) 야! 이것 좀 먹으라고~!
유석 : ㅋㅋㅋ 아씨 누나 이거 존나 맛없어
영재는 유석을 향해 젓가락을 거칠게 집어던진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음식
영재는 설거지를 하고 유석은 상을 치운다. 서로 습관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꽤나 부부 티를 낸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유석은 습관대로 설거지를 하는 영재를 끌어안는다. 영재의 채취를 즐긴다.
역사가 있는 원룸인지라. 백열등이 깜빡깜빡된다. 유석과 영재는 나란히 위를 올려다본다.
깜빡....깜빡......깜빡.....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백열등의 깜빡이는 횟수가 미친 듯 빨라진다.
맛이 간 백열등을 가만히 보던 유석이 허리를 흔들어댄다.
유석 : (미소 지으며) 우우~~ 우우우~~~~ 아~~
유석은 영재의 몸을 손으로 훑으며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영재는 유석의 손길을 즐기며 낄낄댄다.
제거된 백열등
유석과 영재의 섹스, 서로의 만짐에 몸이 굴곡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헐떡이는 유석의 등이 카메라 프레임 가득 채운다. 왼쪽 어깨 쪽에 옅은 보라색 멍이 넓게 퍼져있다.
유석의 등을 배경으로 유석의 내레이션 흐른다.
(N.A) 유석 : 섹스, 빠구리, 떡 치기, 러브 아니 사랑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는 소리가 깔린다.)
51. 조선소 식 후 휴식공간 (내부/낮)
손톱 때를 벗기는 누군가의 손 보인다.
프레임 넓어지면 동료 형 1의 손임을 알 수 있다. 유석은 동료 형 1 옆에서 캔 커피를 홀짝인다.
대충 구색만 갖춘 휴식공간임에도 벌러덩 누워 만족스러운 잠을 취하는 인부들 눈에 띈다.
동료 형 1 : 야 니 오늘 뭐하냐?
유석 : 별 계획 없는데요?
동료 형 1은 본격적으로 잠을 자려는 듯 안전화를 벗어던진다.
동료 형 1 : (고개를 힘겹게 위로 돌리며) 그럼 훌라나 하러 가자
유석 : 아 맞다 오늘 우리 엄마 뭐 아프다던데요?
동료 형 1 : ㅋㅋㅋ 뒤질래?
유석 : 아 근데 오늘은 진짜 안돼요 담에 가죠 어차피 신입 올 때 회식할 거잖아요
어느새 편한 자세를 잡고 벌러덩 누워 있는 동료 형 1이 발로 유석의 머리를 툭하고 건드린다.
유석 : (더럽다 듯 손을 휘저으며) 에이 씨....
낄낄대는 동료 형 1이 마냥 밉지만은 않다.
유석이 쓰레기통으로 쓰이는 항아리에 빈 캔을 던진다. 골인.....
52. 태국 마사지샵 뒷방 (내부/밤) / 베트남 소스 제조
*MARK KORVEN – WHAT WENT WE 흐른다.
맥주병과 맥주캔, 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 자욱한 담배연기가 천장에서 갈 길을 잃은 이미지 순서대로 펼쳐진다.
동료 형 1 : 땄다 하이구~~ 따버렸다~~
샵 사장 : 아이... 개새끼
둥근 테이블에 4명이 훌라를 치고 있다. 테이블 주변 구석으로 신발장, 휴지 묶음, 플라스틱 의자 등이 어설프게 배치되어있는 걸로 보아 도박판을 벌리기 위해 따로 마련한 공간인 듯하다.
[인서트]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기계에 베트남 소스가 농축됨을 뽐내며 휘저어진다.
마사지 샵 알바가 뒷방으로 향한다. 카메라, 샵 알바의 뒤를 따른다.
반쯤 열린 문 앞 꽉 닫혀있는 다른 문 하나 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 붙어 있다. 여자 대기실이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는 훌라를 치는 4명 보인다.
샵 알바의 모습이 카메라 프레임에 다시 들어오고 반쯤 열린 문을 활짝 연다.
샵 알바 : (문을 완전히 열며) 네 사장님
샵 사장 : 니 저녁 안 먹었지 짱개 먹을래?
샵 알바 : 짬뽕밥 하나 먹을게요
사장 애인 : (신용카드를 건네주며) 애기야 이걸로 계산해
샵 알바 : (카드를 두 손으로 받으며) 네....
샵 사장, 사장 애인, 샵 알바 모두 동료 형 1과 나이차가 크게 나지 않아 보인다.
샵 사장 : (알바를 바라보며) 짜장 곱빼기 3개 하고 탕수육 대자 하나 시키라 안에 애들은 뭐하냐?
알바가 고개를 돌려 여자 대기실 문 쪽을 쳐다본다.
[인서트]
소스 주입기가 일정한 속도로 지나가는 병들에 소스를 채운다.
마사지 샵 자동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온다.
샵 알바 :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었죠?
손님 : (돈을 건네주며) 네 마리요
샵 알바 : 네, 안내해드릴게요
샵 알바가 앞장서고 손님이 뒤따른다. 카메라, 샵 알바와 손님의 뒤를 따른다. 코너를 돌자 긴 골목 형식에 양
쪽으로 방이 주르륵 배치해있다. 알바가 젤 끝에 있는 방문을 연다.
[인서트]
소스가 담긴 병이 컨베이어 벨트 위로 움직인다.
먹고 남은 빈 접시들이 널브러져 있다. 金家界 라고 적힌 젓가락 포장지가 지저분함을 더한다.
유석 : 지랄... 어이구.... 시벌....
샵 사장 : (카드 패 하나를 버리며) 야 손님 왔으니깐 조용해야 한다.
여자 대기실에서 문이 열리며 마리 나온다. 문이 닫히기 전 틈으로 태국 여성 3명이 편한 자세로 휴대폰을 만지작되며 쉬는 모습 보인다.
마리가 훌라를 치고 있는 방으로 들어선다. 신발장에는 신발이 아닌 마사지용 바구니들이 배치해 있다.
마리 : (마사지용 바구니 하나 꺼내 들며) 안녕하세요
동료 형 1 : (카드 패를 확인하며) 어..... 그래 (마리를 보며 윙크를 해댄다) 고생해
볼만하지 않은 윙크임에도 마리는 웃음 지어준다. 유석이 동료 형 1을 기분 나쁜 듯 노려본다.
선율 끊기고 [인서트]
공중에서 2,3 바뀌 도는 베트남 소스..... 팍 하고 깨진다.
팍 하고 눈을 뜨는 유석,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53. 우리 집 원룸 (내부/낮)
유석이 영재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다.
유석 :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한다) 하.... 좇댔다 (휴대폰을 집어던지며) 하....
유석은 곁에서 자고 있는 영재를 끌어안는다. 안심이 되는지 다시 잠이 든다. 영재 역시 유석을 끌어안는다. 유석의 엉덩이를 두 번 정도 토닥인다.
[인서트] - 조선소 (외부/낮)
비계발판 위 쪼그려 앉아 있는 팀장 보인다. 얼굴이 시뻘게진 팀장이 시노를 내팽개 친다. [쾅]
(N.A) 유석 : 휴가, 뭐하니?, 뭐해요?, 마트 가요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는 소리 깔린다.)
54. 마트 (내부/낮)
마트 카트를 끌고 가는 유석, 영재는 신중한 표정을 지어가며 유석이 끌고 가는 카트에 식재료를 담는다.
카트 안에 가득 채워진 식재료들....
55. 차 안 (내부/낮)
영재는 운전을 하고 유석은 영재의 귓불을 만지작 거린다.
영재 : 나..... 이제 일 해볼까 봐
유석 : 어... 어~~ 운전에 집중해 줄래?
영재 : 나 장난 아니야....
유석은 만지작되던 영재의 귓불을 놓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한다.
영재는 괜히 죄지은 기분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느끼는 영재다.
영재 : 교회 장로님이 일하나 소개 시켜주신다고 했어
유석 : 하....
영재 : 아는 사람이 작은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데 서류 작업할 사람이 필요하대...
유석 : 누나....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 그게 말이가
영재 : 왜.... 내가 해봐야 어디 식당 알바나 뭐 서빙 같은 거 해야 되는데 이건 아니잖아
유석 : 차라리 그런 걸 해! 어차피 돈 때문에 하는 거 아니잖아...... 그런 거면... 그런 게 더 의미 있고 배우는 것도 많을걸?.... 어디... 비서가 직업이냐?
영재 : 비서도..... 응..... 알았어
영재는 할 말을 잃는다. 영재 특유의 맥 빠진 표정이 지어진다.
56. 골목 (외부/낮)
양손에 꽤나 묵직한 봉다리 3개를 쥐고 있는 유석은 주차를 하는 영재를 지켜본다. 한참을 넣다 뺐다를 반복하는 영재의 주차 실력, 유석은 영재의 주차 실력에 신물이 났는지 잠시 시선을 먼 곳에 둔다.
공원에서 그네를 타는 여자아이 보인다. 여자아이라고 해야 할까? 18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여자 아이다. 조신하게 흔들대기만 했더라면 유석은 넋 놓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흔들대는 각도가 위험해 보일 정도다. 유석의 시선은 그네 타는 소녀에게 고정된다.
주차를 끝낸 영재가 차문을 열고 나온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유석은 머쓱하다.
유석 : 굿~~ 사랑해 ㅋ
영재 환하게 웃는다. 유석의 뜬금없는 고백이 영재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이라도 하는 듯 느껴진다. ‘너만 있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고리타분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 영재다.
57. 길거리 (외부/낮)
* HIKARI SAKE 흐른다
영재의 걸음 아주 당차다.(발)
알바몬 사이트에 나열되어 있는 알바 목록들, 빠르게 주르륵 스크롤 내려간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알바 전단지 여러 개....
쫙 펼쳐지는 신문, 그 안에 수록되어 있는 일자리 목록들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무엇인가에 시선이 고정되기도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영재 (풀샷)
식당 유리 안으로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 보인다. 해맑게 웃으며 음식을 나르는 아주머니, 기계적 미소를 짓는 카페 직원 하나, 둘 등등
구석 음침한 곳에서 담배를 태우는 영재, 불안한지 자신의 귓불을 만지작된다. 눈빛만은 매섭게 치켜뜬다.
불평하듯 지껄이는 남자 손님, 비열하게 웃으며 지껄이는 손님, 게걸스럽게 음식을 섭취하는 남자 손님 등의 이미지 흐른다.
선율이 끊기고 영재의 얼굴 클로즈업된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영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있다.
(클로즈업) 한 남자의 입에서 [카악 퉷] 하는 소리.... 그렇다... 더러운 가래침 뱉어진다. 선율 끊긴다.
타박타박 영재의 느린 걸음(발)
58. 우리 집 원룸 (내부/밤)
영재는 유석의 품 안에 쏙 들어가 있다. 유석은 영재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59. 어느 허름한 집 (외부/낮)
허름한 집 열린 창가를 통해 양반다리를 한 노인 보인다. 노인의 쭈글쭈글한 주름은 늙었다는 것 외에는 나이도 성별도 종잡을 수 없다. 이 정도의 주름에는 경외심을 비롯해 정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노인은 되새김질하듯 입을 다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한참을 창밖을 보던 노인의 눈이 슬쩍 위로 향한다.
60. 하늘 (외부/낮)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우중충한 하늘과 우뚝 선 빌딩 2채가 함께 보인다. 우울함을 자아내는 하늘에서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우뚝 선 빌딩이 악당들의 본거지인 것처럼 느껴진다.
61. 조선소 (외부/낮)
비계 설치물 위에 서있는 동료 형 2, 아찔할 정도로 높은 곳이라 위태로워 보인다. 동료 형 2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위를 올려다본다. 비 때문에 고소작업이 더 위태롭게 느껴진다.
동료 형 2 : 2 메다
신삥이 1.5M 발판을 동료 형 2가 있는 곳으로 내려준다. 신삥은 젊은 나이임에도 몸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건장한 체격이 아닌 신삥에게 1.5M 발판이 살짝 버겁다.
족장을 받아 든 동료 형 2는 설치할 곳에 길이를 대본다. 짧다....
동료 형 2 : (건네받은 족장을 다시 올리며) 2 메다 주라고
신삥 : 아... 2 메다? 잠시만.....
한참 소식이 없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마냥 위만 쳐다보는 동료 형 2가 안쓰러워 보인다.
동료 형 2 : 야~! 2 메다 주라고! 야! (나지막이) 아이 씨팔
동료 형 2가 서있는 바로 아래서 철사를 묶고 있는 유석이 키득된다.
유석 :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듯) 2 메다~~~!
신삥 : (2M 족장을 동료 형 2에게 내려주며) 네!
동료 형 2 : (건네받은 족장을 설치하며) 하.... 병신 같은 새끼
동료 형 2의 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유석과 동료 형 2가 위에서 내려주는 자재를 받아가며 비계작업이 계속 이루어진다.
(O.S) 팀장 : 쉬었다 하자
동료 형 2와 유석이 위쪽으로 올라간다.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쉬고 있는 팀원들, 신삥이 부지런히 커피를 탄다. 동료 형 2는 커피를 타는 신삥의 모습을 한동안 노려본다.
동료 형 2 : (신삥이 커피를 건네주는 것을 받아 들며) 야 니 일 시작한 지 한 달 되지 않았냐?
신삥 : 한 2주 됐어
동료 형 2 : 근데 너 아직 자재도 똑바로 파악 못하냐? 자재 파악은 해야 될 거 아니냐....
신삥 : (고개를 끄덕이며) 응 알았어...
신삥이 적당히 주눅이 들었는지 나머지 커피를 나눠주는 것도 잊고 동료 형 2와 최대한 떨어진 곳에 주저앉는다. 수줍게 담배에 불을 붙이는 신삥, 유석이 눈치껏 커피를 대신 나눠준다.
일이 다시 시작된다. 동료 형 2가 철사로 발판을 묶고 위를 올려다본다.
신삥은 아까 와 같이 낑낑거리며 비계발판을 동료 형 2에게 건네주려 한다. 순간 신삥의 손에서 자제가 미끌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쾅.... 쿠당..... 쾅.....] 워낙 높은 곳이라 자제는 한참을 떨어진다.
동료 형 2와 유석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자재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아래를 쳐다본다. 다행히도 떨어지는 자재에 누군가 맞는 큰 사고는 생기지 않았다.
동료 형 2 : (위를 올려다보며) 야이 씨발 새끼야!
62. 조선소 탈의실 (내부/낮)
페인트가 벗겨져 녹슨 철제 옷장이 삐그덕 되며 열린다. 안전벨트와 장비가 옷장 안에 무참히 처박힌다.
인부들이 부산을 떨며 옷을 갈아입는다. [고생하셨습니다]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며 환복을 완료한 이들이 퇴근을 서두른다. 그 와중에 유석은 늑장을 부린다. 신삥의 환복 속도가 워낙 느려서이다.
유석 : 형 자전거 타고 가요?
신삥 : (고개를 끄덕이며) 응
유석 : 숙소까지 얼마나 걸리는데요
신삥 : 한 십분 걸릴걸?
유석 : (눈이 풀린 채) 오.....십분?
(클로즈업) 어째 유석이 맥 빠진 표정을 짓는다.
63. 호프집 (내부/밤)
소주잔에 소주가 채워진다. 두 소주잔이 부딪힌다. 유석과 신삥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얼굴이 빨개져 있는 신삥의 얼굴 프레임 가득 채워진다.
유석 : (잔을 부딪히며)와~~ㅎ 형 얼굴 너무 빨간데요~
신삥이 히죽 웃으며 소주잔을 들이켠다.
신삥 : 나 술 강해 진짜로... 강해
유석 : (비웃듯 웃으며) 형님~ 내일 째면 안 됩니다. (지겹다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Z라인 끝내야죠~
둘은 잠시 침묵을 유지한 채 치킨을 집어삼킨다.
작은 양철통에 뼈 조각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다.
유석 : 형 일할 때 좀 무서우세요?
신삥 : 아니 무섭진 않아... 그냥 아직 적응이 안 됐나 봐
유석 : 형 너무 쫄지 마세요 쫄면 더 위험하다니깐요 위험해 보여도 이게 해보면 다 좇밥이에요 진짜
유석의 목소리나 행동거지가 유달리 활발해 보인다.
신삥 :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응..... 무섭진 않아, 유석이 넌 얼마나 일했어?
유석 : 저는 한... 1년 넘었나?
신삥 : 와... 오래 했네... 여기 오기 전에는 뭐했는데?
유석 : 그냥 뭐 엄마일 도왔죠 형은 뭐하시다 왔어요?
신삥 : 교회 다니다가 왔어
유석 : 교회요?
신삥 : 어... 우리 부모님이 선교사시거든
유석 : 아.... 선교사....?(유석의 눈이 풀린다)
유석의 얼굴 클로즈업된다. 어째 유석이 맥 빠진 표정을 짓는다.
64. 교회 (내부/낮)
찬송가 울려 퍼진다. 영재는 어김없이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떨고 있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세우는 영재,
영재 : (눈을 질끈 감은채) 씨발~! 씨발~! 개새끼들아~!
보통 두 손을 깍지 끼고 외치는 말은 꽤나 성스러운 말 혹은 그 언저리에라도 포함되는 무엇이어야 할 것이다. 영재의 행위가 극히 이상해 보인다. 유석은 그런 영재를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보는 것이 두려워 보인다. 이미 익숙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압박해 온다. 급기야 유석은 무슨 재미난 생각이라도 하는지 눈알을 위로 올려대며 딴청을 피운다.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선다. 허리를 굽히며 조심스럽게 자리를 뜬다.
영재는 유석이 자리를 뜨는지도 모르는 듯하다.
영재 : (나지막이) 씨발....(좀 더 자신감을 갖으며) 씨발~!
65. 교회 뒤 흡연실 (외부/낮)
교회에는 따로 흡연실이라 지정된 곳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그 증거로 이름도 모르겠고 다 죽어가는 작은 나무가 심어진 화분에 꽁초들이 버려져있다.
(클로즈업)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한 남자의 입 보인다. 줄을 칭칭 감은 손이 담뱃대를 잡고 입으로부터 거리를 벌린다. 남자의 입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다.
앞서 묘사한 돼지.... 댕글이 보인다. 목줄이 채워져 있다. 바닥에 코를 파고 킁킁거린다.
프레임 넓어지면 목사가 댕글이 목줄을 쥐고 파이프 담배를 피워되고 있다. 꽤나 이색적이다. 먼 곳에 시선을 두며 담배를 태우던 목사, 시선이 근거리에 고정된다.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살짝 까닥인다.
유석 : (고개를 까닥되며) 안녕하세요
유석이 몸에 붙은 모든 주머니를 확인하듯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고개를 까닥된다. 입에 담배가 물린 걸 보면 라이터를 찾는 모양이다.
목사 : 네 어서 오세요
성냥 하나 그어진다.
목사가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성냥불을 유석에게 대준다. 성냥이라니.... 유석은 살짝 당황스럽다. 유석과 목사의 거리는 그렇게 가까워지고.....
파이프 담배를 문 목사의 입에서 연기가 흘러나온다. 유석의 코로 그 연기가 흡입된다.
어딘가 다른 세계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 드는 유석이다. 유석은 담배를 깊게 빨고는 담배를 문 상태로 벌어진 입 사이로 연기를 내뿜는다.
(클로즈업) 유석의 눈이 살짝 맛이 가 있다.
*BACH – MIDIKZ 흐른다.
[인서트]
앞서 묘사한 꽁초에 둘러싸인 화분 속 나무의 형태가 일그러지며 나무의 결대로 터져버린다.
클로즈업된 상태로 연초에 붙은 불씨가 반짝이며 타들어간다.
산속에 있는 한 가옥이 불길에 휩싸인다.(낮)
금색의 부처 동상(낮)
한 남자의 우락부락한 팔뚝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근육이 터질듯하다.
가로 30cm, 세로 80cm 되는 작은 LED 전광판에 ‘BAR’ 다음 칵테일 잔에 체리가 살포시 올려지는 이미지 흐른다.(밤)
자욱한 담배연기가 검은색 배경으로 무엇인가를 현상하듯 그리지만 이내 힘없이 공중에 서성인다.
금색의 부처가 내밀고 있는 손바닥으로 카메라, 무섭게 흔들리며 돌진한다.(낮)
파이프 속에 있는 담배 잎에 불씨가 반짝이며 타들어간다.
냄비 속 물이 끓어지며 보글보글 역동적 이미지 만든다.
낼름 밖으로 꺼내져 있는 두 혓바닥이 서로 밑에서 위로 햝으며 맞물린다.
한 남자의 입에서 연기가 의도치 않게 스물스물 흘러나온다.
클로즈업된 유석의 맛이 간 눈이 순간 힘 있게 떠진다.
선율 끊긴다.
유석 : 와.... 파이프 담배 피시나 봐요?
목사 : (쓸데없이 크게 웃으며) 하하하하 내가 워낙 멋쟁이잖아요
유석은 어이가 없어 웃다 자신의 웃음에 휘말려 진짜로 웃기 시작한다.
목사 : (유석이 웃는 모습을 빤히 보다) 고생이 많으세요....
유석은 목사의 질문에 순간 무엇인가로부터 공격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유석 : 뭐가요?
목사 : 저..... 형제님 제가 아는 만신이 있거든요?
유석 : 만신이요? 그게 뭔데요?
목사 : 무당이요 훌륭한 무당이요
목사는 주섬 되며 명함 하나를 유석에게 건넨다.
목사 : 얼마 전에 만났는데 형제님 생각나서 하나 받아 왔어요
유석 : (명함을 빤히 본 후 피식되며) 무당이 명함도 파요?
목사 : 그럼요~~ 저도 있는데요
[인서트]
목사의 명함이 누군가의 지갑에서 꺼내지는 동작이 슬로 모션으로 연출된다.
목사의 명함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테두리는 보라색이며 노란 글씨로 ‘엑소시스트’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그 아래로는 OOO교회 목사 OOO, 010-xxxx-xxxx , ‘믿지 않을 곳에 믿음이 생기리' ,000tntlf123@hanmail.net 이 순서대로 적혀있다.
(클로즈업) 파이프 담뱃대가 뒤집히며 담뱃재가 아래로 떨어진다. 톡톡 담뱃대를 두드리는 목사의 손가락....
목사 : (파이프 구멍 안쪽이 깨끗한지 확인하며) 제 소개받았다고 하면 싸게 잘해줄 거예요
유석 : 굿이요?
목사 : 네 굿이요.... 그게 꽤나 볼만하거든요 재밌어요
유석 : (명함을 속주머니에 챙기며) 재밌어요?
목사 : (파이프 담배를 속주머니에 챙기며) 그럼요... 생각보다 비싸지도 않더라구요
유석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무릎을 굽히며 괜스레 댕글이를 쓰다듬는 유석,
유석 : 으~이 요놈의 돼지! (귀엽다 듯이 거칠게 쓰다듬으며) 너는 어째 볼 때마다 역겹냐~ 으응? ㅎㅎ
목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린다. 유석이 어색한 추임새 [으,이] 하며 쪼그렸던 무릎을 핀다.
유석 : (고개를 까닥이며) 이만 가볼게요~~
앞서 언급한 꽁초가 수북한 화분에 또 다른 꽁초 하나 추가된다. 그 속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는 나무가 슬픈지도 모르게 살아간다.
(O.S) 목사 : 네.... 고생하세요
66. 애니메이션
애꾸눈 무사의 얼굴이 프레임 가득 채운다. 무사의 왼쪽 눈에는 회색으로 빛바랜 의안이 끼어져 있다. 무사의 오른쪽 눈만이 좌우로 움직인다.
해안가를 배경으로 애꾸인 무사와 10뎃명 되는 무리와의 활극이 펼쳐진다. 무사의 화려한 칼솜씨에 일단의 무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모두 쓰러뜨렸다 생각한 무사는 숨을 고른다. 끈적한 피가 묻은 칼을 거두려는 순간 무사의 칼은 다시 휘둘러진다. 비열해 보이는 무사의 기습 공격을 막기 위해서
상대의 실력이 위협적임을 단번에 알아챈 무사는 기합을 새로이 다진다. 하지만 두 칼잽이의 합이 더해 갈수록 무사의 몸에 생채기가 늘어난다. 결국 무사는 가슴팍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고 무릎을 꿇는다. 무정하게도 상대의 칼은 멈추지 않는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의해 상대의 일격을 막아내는 무사.... 하지만 칼의 옆면으로 막아낸 것이라 자신의 칼이 부러진다. 부러지는 칼의 흐름에 따라 무사의 오른쪽 팔이 잘려나간다. 승리를 확신한 상대는 무사의 목에 칼을 겨누며 한마디 한다. “코코 마데다”
패배를 확신한 무사는 남은 팔로 단도를 빼내 자신의 목을 찌른다. 무사는 그렇게... 단도를 꽉 쥐고는 머리를 바닥에 쳐 박는다. 무사의 의안에 끈적한 피가 스며든다.
67. 우리 집 (내부/밤)
영재와 유석이 나란히 누워있다. 침대 위에 앉은뱅이책상이 노트북을 받친 채 올려져 있다. 노트북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간신히 영재와 유석을 비춰준다.
영재 : 가꼬~이~
유석 : (영재의 머리를 자신의 머리에 부딪히며) ㅋㅋㅋ 카와이네~
제거된 백열등 보인다. 여전히 제거된 상태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둘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영재는 화장을 지우고 유석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유석 :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누나 만신이 뭔지 아나?
영재 : 무당이잖아
유석은 영재의 박식함에 할 말을 잃는다. 화장을 다 지운 영재는 약을 삼킨다.
영재 : 니 내가 귀신 들린 거라 생각하나...
유석 : (여전히 책을 읽으며) 아니 그.... 누나가 그랬잖아 아빠 거시기 빨 때 뭐 귀신 들린 거 같았다고
영재 : (침대 위로 유석과 나란히 누우며) 응 맞어 병신 같은 새끼...... 지가 당하니깐 뒤지기나 하고
유석의 핸드폰이 울린다. 의외로 굉장히 평범하고 대중적인 벨소리.... 아니 그냥 아무 설정도 하지 않은 벨소리가 울린다. 유석은 책을 덮고 휴대폰을 집어 든다.
.
유석 : (활짝 웃으며) 여보세요 어~~ 야 웬일이냐
영재는 누운 몸을 뒤척이며 유석을 등진다. 영재의 귓가에 유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재는 의도적으로 눈을 천천히 끔뻑된다.
(O.S) 유석 : 아 진짜? 워킹 홀리데이? 혼자 가는 거냐? ......... 와.. 대단하다 너 ㅋㅋ 안 무섭냐?....... 그래 진짜 조심해야 해 ........ 응 ...... 아! 야 우리 엄만 잘 지내?......... 아... 그래? 응... 응 그래 고생 많이 했다 .......ㅋㅋㅋ....... 알겠어 고맙다 몸조심하고 ....... 어 ....... 어 ........ 그래 바이
유석의 전화가 끝이 났지만 둘은 딱히 할 말이 없다. 영재는 한참을 눈만 끔뻑된다. 괜히 유석에게 등을 보여 서로의 침묵이 묘한 분위기가 되었다 생각하는 영재다. 자신의 행동을 은근히 속상해한다.
영재 : (여전히 등을 돌린 채) 굿... 해볼까?
영재의 눈은 끔뻑되기를 그치고 유석의 답을 기다린다. 땡그랗게 뜬 영재의 눈이 어딘가 소름 끼친다.
(O.S) 유석 : (침묵) 천천히 생각해 봐
영재의 눈이 감기며 눈물이 흐른다.
-BLAK-
(N.A) 유석 : 씨발, 개새끼, 병신, 등신, 창녀 (무엇인가 공책에 끄적이는 소리가 깔린다.)
68. 마리 집 원룸 (내부/밤)
공책에 앞서 유석이 내까린 단어들이 적혀 있다. 막 창녀라는 단어가 쓰인다.
프레임 넓어지면 유석의 손이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마리는 엎드린 채 공책에 볼펜으로 끄적이고 있다. 마리는 자신이 적어내는 단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석을 올려다본다.
마리 : (유석을 돌아보며) 창녀?
유석 : ㅋㅋㅋ 너 많이 늘었다? that’s good
마리 : 뭐에요?이고
유석 : ㅋㅋㅋ secret
마리 : (인상을 찌푸리며) 탐 마이~~?
둘은 나체 상태이다 더구나 유석은 미간을 찌푸린 마리가 너무 귀엽다. 마리와 유석은 키스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몸을 섞는다. 유석의 목을 휘감는 마리의 팔이 유석을 무섭게 끌어당긴다.
변기에 오줌줄기가 떨어지며 노란색 물이 요동친다.
나체의 유석이 화장실 문을 닫으며 나선다. 유석은 곧장 마리에게 다가가 마리의 몸을 장난스레 훔친다. 이윽고 아기처럼 웅크린 채 마리의 품에 안긴다. 마리는 그런 유석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마리가 자신의 배 위에 올려진 유석의 팔을 집어 올린다.
(클로즈업) 유석의 손목에는 철사에 긁혀 생긴 상처가 무수히 많다. 긁힌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먼지가 들어가는 바람에 흉이 져버린다. 때가 묻은 것처럼 얼룩이 져버리는 것이다. 최근에 또 긁혔는지 빨간 선이 크게 그어져 있다.
마리 :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괜찮아?
유석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배시시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마리 : (유석의 손목을 흔들며) what happen to you?
유석 : (귀찮다는 듯) just work and just hurt ok? don’t worry
마리 : (유석의 손목을 내팽개치며) 비바!
유석이 헤벌죽 웃는다.
(클로즈업) 마리의 오른쪽 눈썹 위, 마리의 아기자기한 외모에는 어울리지 않는 상처가 있다. 오른쪽 눈썹 위로 살이 크게 파였었음을 알게 해 주는 흉터가 존재한다. 유석의 손가락이 마리의 흉터를 간질거린다.
유석 : (프래임 넓어지며) what happen here?
마리 : (눈알을 위로 올리며) 아........
마리는 히죽 웃으며 휴대폰을 집어 든다.
*박지훈 – 역신(疫神) 흐른다.
[인서트] - 어느 초원 (외부/낮)
코뚜레를 한 검은색 소 3마리가 잡초가 무성한 땅 위를 어슬렁거린다. 다른 소에 비해 유독 덩치가 큰 소가 고개를 힘차게 돌린다,
(클로즈업) 땅에 박힌 쇠말뚝이 뽑힌다.
[인서트] - 어느 태국 거리 (외부/낮)
거리에 사람들이 평소와 같이 길을 걷는다. 카메라는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넉넉히 보여준다. 유독 화려한 원피스 차림인 마리가 보인다. 마리 역시 카메라를 스쳐 지나간다.
마리가 지나간 후에도 자리를 고수한 카메라에 행인들의 묘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뒤를 힐끔 거리며 뛰거나 인도를 벗어나 찻길을 가로지른다. 얼마 후 우왕좌왕하는 인파들 틈으로 커다란 검은 소가 달려오는 것 보인다. 검은 소 역시 카메라를 스쳐 지나간다.
마리가 자신의 흉터를 매만지며 아프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리 : 찡찡~!
구글 번역기 소리가 “진짜요”라고 작게 울린다.
유석 : (깔깔되며) 찡찡?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임을 확신시켜 준다. 다만 그녀의 환한 미소에 더 믿음이 간다.
[인서트] - 어느 도로 (외부/낮)
도로에 검은 소가 자빠져있다. 배 쪽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검은 소는 약해진 숨을 고르고 있다.
69. 우리 집 원룸 (내부/낮-밤)
* 박지훈 – 역신(疫神) 여전히 흐른다.
택배박스 테이프가 칼에 의해 쭈욱 찢어진다. 택배박스 안에는 화려한 원피스가 들어있다. 영재는 원피스의 포장지를 뜯고는 입어본다. 간신히 전신을 비춰주는 거울에 몸을 낮추기도 하고 배배 꼬기도 하며 자신의 몸 윤곽을 들여다본다. 썩 맘에 들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은 자신의 얼굴 때문에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영재는 황급히 화장을 해본다.
실컷 화장을 한 뒤 괜히 웃거나 입을 좌우로 쩍쩍 벌려가며 상태를 확인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화장을 지우고 다시 화장해 본다.
다시 시작한 화장의 끝이 보인다. 영재는 손거울에 비친 볼에 큰 붓을 활용해 색조를 입힌다.
순간 거울에 비친 볼에 물이 주르륵 흐른다. 선율 서서히 끊긴다.
영재 본인도 눈물을 흘리는 자신이 의아스럽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휴지로 재빨리 닦아낸다. 아무래도 애써한 화장이 더 신경 쓰이나 보다.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내 정색을 하고 멍하니 거울만을 들여다본다. [삐~~~~] 하고 아주 듣기 싫은 소음 지속된다.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려 주전자 물을 끓이던 불을 끈다.
우리 집 원룸에 하나뿐인 창가에는 도둑을 방지하는 새하얀 철장이 쳐져있다. 철장 틈으로 영재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커피를 타는 모습 보인다. 카메라, 도촬 하듯 철장 틈으로 보이는 영재를 담는다.
멍하니 있다 손을 위로 뻗어 일본식 찻잔을 꺼낸다. 원두를 찻잔에 담는 듯하다. 다시 영재는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다. 주전자를 들어 찻잔에 물을 담는다. 주전자를 내려놓고는 또다시 시간을 흘린다. 이내 찻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 홀짝인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정갈하게 앉은뱅이책상에 차려져 있다.
영재는 세탁기 앞 간이식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태운다. 아까 입은 화려한 원피스와 우중충한 영재의 표정이 어쩐지 기괴스럽다.
(클로즈업)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한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꾹 눌러 돌려된다.
관자놀이를 돌리는 영재의 엄지 손가락 회전력이
드럼세탁기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전력으로 디졸브.... [삐, 삐, 삐]
(O.S) 영재 : 왜 이렇게 늦게 왔어.....
(O.S) 유석 : 오빠가 술 좀 먹었지롱~
(O.S) 영재 : 야!~~~~
영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드럼세탁기는 계속 돌아가고,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일정한 패턴의 소리가 적막하게 울린다.
*RUSS TYPE BEAT FT. YELAWOLF – FLAWLRSS(GUITAR) 흐른다
70. 거리 (외부/밤) / 피시방(유석), 우리 집 원룸(영재)
*RUSS TYPE BEAT FT. YELAWOLF – FLAWLRSS(GUITAR) 여전히 흐른다
유흥가로 예상되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걸어간다.
가로형 전면 간판, 입간판, 옥상 간판, 공기인형 간판 등이 반짝이며 연속적으로 보인다.
남녀 여럿이 교복을 입고 구석진 곳에 모여있다. 무엇을 하는지 식별은 안 되지만 왠지 불량해 보인다. 편견인 것일까?
가로등 불 아래 쓰레기 더미가 형성되어있다. 그 가로등을 붙잡고 토를 하는 여성 그 여성을 옆에서 부축해주는 또 다른 여성
밤길 수많은 차들이 필연적으로 불빛을 번쩍이며 내달린다.
캡 모자를 쓴 유석이 피시방에 홀로 앉아 반쯤 풀린 눈으로 게임을 한다. (피시방)
다 마신 1.5L 페트병, 유석의 옷과 영재의 옷, 택배박스를 뜯으면 나오는 포장 재료들 등이 우리 집 원룸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다. 그런 지저분한 집에 의욕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영재.....(우리 집 원룸)
캡 모자를 깊게 눌러쓴 유석이 밤길을 서성이다 취객과 부딪힌다. 유석 얼굴 클로즈 업 되니 이글거리는 눈빛이 위태롭다....(거리)
초점을 잃은 영재의 눈, 프레임 넓어지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벽면에 등을 기댄 영재 보여준다. 오른쪽 손이 문신이 새겨진 왼쪽 팔뚝을 강하게 쥐고 있다.(우리 집 원룸)
(클로즈업) 영재의 오른쪽 엄지가 왼쪽 팔뚝을 깊게 파고든다.
페이드 아웃
71. 길거리 (외부/밤)
캡 모자를 쓴 유석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놓고 걸어간다.
유석은 걸음을 멈추고 한쪽을 유심히 응시한다. 유석이 응시하는 곳에 까만 고양이 한 마리 있다. 차가 내달리는 도로를 가로지르기 위해 타이밍을 잰다. 두리번, 두리번 유심히 타이밍을 재는 고양이......
유석, 긴장된 눈으로 고양이를 바라본다.
고양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 빠르게 달리는 차를 향해 내달린다. 달리는 차는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속력에 변화가 없다. 부딪힌 것일까? 고양이는 죽은 것일까? 차가 지나가고 남긴 프레임 건너편 인도를 유유히 걸어가는 고양이 보인다.
유석 : (식겁한 표정으로 들릴 듯 말 듯) 하..... 시발... 깜짝아
고양이의 경이로운 신체능력에 유석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다. 이내 재미난 생각이라도 났는지 배시시 미소를 보이며 바짓단을 주섬 되 휴대폰을 꺼내 든다.
유석 : 누나! 어... 나 지금 집에 가고 있어.. 응 얼마 안 걸려 근데 방금 나 진짜 개 쩌는 거 봤다!
까만 고양이가.....(침묵) 아... 그래? 알았어 곧 들어갈게...... 응...
유석은 다시 묵묵히 집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 집 원룸 근처에 다다른 유석은 자신의 집 주변이 무언가 달라졌음을 눈치 챈다. 1층 집인 우리 집 원룸은 집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차 한 대를 주차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의 골목으로 들어서야 한다. 가로등 빛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 밤에는 꽤나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노란색 가로등 빛이 골목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원룸 집주인이 취미 삼아 기르는 화단의 꽃들까지도 빛을 받아 반짝인다. 유석이 놀라워하며 가로등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가로등 목이 무슨 이유인지 구부러져 있다. 무언가에 의해 강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유석은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다가가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반짝인다. 다시 전화를 거는 유석
유석 : 누나.... 나 지금 집 앞인데 잠시 나와줄래? ..... ㅎㅎ아니야 바로 집 앞이야 누나야 잠깐만 나와 봐
72. 우리 집 원룸 (내부/낮)
땅바닥에 주저앉아 벽면에 등을 기댄 영재, 휴대폰을 귀에 대고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지친 기색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재 : 왜 그러는데..... 나 나가기 싫어.....
영재는 고개를 돌려 집 현관문을 바라본다.
카메라, 집 현관문을 기준으로 영재와의 거리감을 보여준다. 조금씩 현관문에서 멀어지며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이내 현관문의 형태가 살짝 일그러진다.
영재 한쪽 손을 이마에 갖다 대며 다시 고개를 떨군다.
*RUSS TYPE BEAT FT. YELAWOLF – AMOR (GUITAR) 흐른다.
영재 : 알았어.... 나갈게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영재는 자신을 짓누르는 무언가를 원망하듯 고개를 위로 쳐든다. 영재,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73. 현관문 앞 (외부/밤)
*여전히 RUSS TYPE BEAT FT. YELAWOLF – AMOR (GUITAR) 흐른다.
영재가 뚱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영재 역시 이상함을 느껴 가로등 쪽으로 고개를 한번 돌리고는 앞에 서 있는 유석을 바라본다.
구부러진 목의 가로등이 환한 빛을 낸다. 날벌레들이 빛을 향해 춤을 춘다.
유석과 영재, 노란색 환한 빛을 받으며 서로 마주 보고 선다. 유석이 영재의 한쪽 손을 잡아 어깨 높이 위로 올린다. 남은 손으로 영재의 허리를 감싸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영재 역시 얼떨결에 유석의 허리를 감는다. 그렇게 연인은 금방이라도 춤을 출 것 같은 자세를 취한다.
유석 : 누나 나한테 화 많이 났나......
영재 : (고개를 살짝 떨구며) 응.... 아니 미안해
그렇게 잠시 침묵을 유지한다. 유석이 가로등 쪽으로 시선을 올린다. 영재 역시 뒤따라 시선을 올린다.
유석 : (미소를 지으며 영재를 바라본다.) 탱고든 살사든 뭐라도 춰야 할 거 같지 않아?
영재 : (유석의 엉뚱함에 피식 웃으며) 너 그런 것도 출 줄 알아?
유석 : 모르지 ㅋㅋㅋ 근데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 유석이 가볍게 뱉은 할 수 있다가 영재에겐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진다. 영재는 고개를 떨구고 침묵을 유지한다. 유석은 흥을 돋우기 위해 영재의 몸을 부여잡고 흔들어댄다. 그 흔들림이 영재에겐 버겁고 짜증스럽다.
(클로즈업) 영재가 한쪽 발을 거칠게 구른다. [탁, 탁, 탁]
영재 : (유석을 째려보며) 할 수 없어!
유석 : 할 수 있어!
영재 : 나는 모르니깐 할 수 없다고!
영재의 목소리가 커졌다. 유석은 영재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화가 난다.
유석 : 할 수 있는 거잖아......시발.... 그런 건 몰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영재의 허리를 감싸 안았던 유석의 손이 영재의 옷을 꽉 쥔다.
영재가 유석의 눈을 무섭게 노려본다. 영재의 눈이 서서히 붉어진다.
영재 : 못해! 못한다고~~!!!
영재는 유석이 잡고 있는 자신의 모든 곳을 뿌리치고 거리를 벌린다.
*RUSS TYPE BEAT FT. YELAWOLF – AMOR (GUITAR) 조금씩 작아지며 끊긴다.
(클로즈업) 유석이 잡아 쥔 영재의 옷에 곧 사라질 주름이 남았다.
눈물을 보이기 싫은 영재는 고개를 떨군다.
영재 : (떨리는 목소리로) 너..... 이 씨...... 너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거니?
유석 : 하...... 누나..... (목소리를 좀 높이며) 내가 너한테 뭘 미안해해야 하는 건데?
영재는 유석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유석의 배 쪽에 있는 옷을 움켜쥔다. 유석은 영재의 행동이 몹시나 버겁다. 부릅떴던 유석의 눈이 누그러진다.
(클로즈 업) 영재의 파르르 떠는 눈꺼풀 그 밑으로 물줄기가 그어진다.
(O.S) 유석 : 미안해.....
(O.S) 영재 : 나 먼저 들어갈게
영재가 몸을 획 돌려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카메라, 영재가 들어서며 닫은 현관문을 넉넉히 보여준다.
프레임 안으로 담배연기가 들어온다.
(클로즈업) 영재가 꽉 쥐었던 유석의 옷에 사라지지 않을 거 같은 주름이 남아 있다.
영재의 곁에 있는 동안 유석은 영재의 눈물을 봐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연약하게 우는 영재는 처음이다. 곧 사라질 것 같이 우는 영재의 모습이 유석의 가슴을 찢는다. 유석은 꽁초를 귀찮다 듯 버리고 집으로 들어선다.
74. 조선소 (외부/낮)
완공이 얼마 남지 않은 배의 데크 위, 유석이 속한 팀원들이 엉성하게 줄지어 걸어간다. 사방이 하얗게 페인트 되어있어 팀원들의 행렬이 마치 침입자의 침투같이 은밀하게 느껴진다.
75. 조선소 폐쇄공간 (내부/낮)
유석이 폭 50cm 되는 발판 위에서 위태로운 자세로 균형을 잡고 있다. 비계 해체작업이 진행 중이다. 줄로 연결된 브라켓을 힘껏 잡아당겨본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손에 쥔 줄을 발판 밑 어느 지점에 고정시키고 2M 파이프 하나를 든다. 브라켓을 [쾅 쾅] 후려갈긴다. 맘처럼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76. 우리 집 원룸 (내부/낮이든 밤이든....)
멈춰있는 드럼 세탁기, 빨래 감이 그대로 안에 들어있다.
77. 조선소 폐쇄공간 (내부/낮)
[쾅 쾅] 신삥이 유석의 해체작업을 올려다보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유석을 가만히 지켜보는 신삥, 유석이 파이프로 브라켓을 때리는 소리에 맞춰 신삥의 멍청한 얼굴 위로 철가루가 떨어진다.
78. 마사지샵 여자 대기실 문짝 (내부/낮이든 밤이든...)
문밖으로 태국 염불이 흘러나온다. 태국 남성의 침착한 어조가 길게 늘어진다. 그 낯선 남성의 목소리에 귀가 기울어지는 동시에 카메라, 조금씩 문쪽으로 다가선다.
79. 우리 집 원룸 (내부/낮이든 밤이든....)
영재는 세탁기 앞 간이식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태운다. 앞선 장면에서 봤던 화려한 원피스를 그대로 입고 있다.
(클로즈업) 영재의 손가락을 향해 조금씩 그리고 위협적으로 타들어가는 담배 불씨
현관문 쪽을 힘 없이 응시하는 영재
80. 조선소 폐쇄공간 (내부/낮)
[쾅 쾅] 있는 힘껏 두드려대는 유석, 안전모 아래로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81. 우리 집 원룸 (내부/낮이든 밤이든...)
카메라, S#79. 그대로의 영재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영재의 시선은 여전히 힘 없이 고정되어있다.
82. 마사지샵 여자 대기실 문짝 (내부/ 낮이든 밤이든...)
문밖으로 태국 염불이 흘러나온다. 이내 염불소리 끊기고 카메라, 긴장이라도 한 걸까? 천천히 다가가던 움직임 멈춘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문이 열린다.
83. 조선소 폐쇄공간 (내부/낮) *살짝 어두움
[쾅] 드디어 브라켓이 해체되고. 브라켓은 줄에 묶여 대롱대롱 된다. 유석은 줄을 끌어당겨 브라켓과 연결된 매듭을 푼다. 유석의 얼굴이 화나 있다.
유석 : 후.... (아래를 바라보며) 거 아래 그렇게 있지 마세요! 뭐 떨어지잖아요
신삥은 유석의 말이 잘 안 들리는지 위만 올려다보고 있다.
유석 : (고함을 지르며) 씨발 가만히 있지 말고 좀 움직여!
신삥은 깜짝 놀라 몸을 살짝 움츠린다. [쉬었다 하자~] 팀장의 목소리에 신삥은 휙 하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뗀다. 유석 역시 위에서 조심조심 내려와 팀원들이 쉬고 있는 데로 향한다.
신삥은 팀원들의 커피를 타느라 손이 바쁘다. 유석은 담배를 꼬나물며 팀장 옆에 앉는다.
유석 : 팀장님 죄송한데요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며칠 쉬어야겠는데요
팀장 : 내일부터?
유석 : 네.... 며칠이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팀장 : (두 눈을 손가락으로 짓누르며) 알았다... 그렇게 해라
[인서트]
약을 삼키는 영재의 입과 손
유석 : (고개를 숙이며) 끝나는 대로 바로 돌아올게요
다들 일에 지쳤는지 말이 없다. [쾅 쾅]되는 주변의 소음만 들릴 뿐이다. 괜스레 신삥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장을 고쳐 멘다.
팀장 : (신삥을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떨구며) 좀만 더 쉬었다 하자
신삥 : (다시 앉으며) 네...
유석은 담배 한 대를 더 태운다. 우수에 쩌든 유석이 담배연기를 내뿜는 동시에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된다.
84. S#83의 장소가 애니메이션으로 전환
*이번 애니메이션 장면의 그림체는 설명이 필요하다. 글로 표현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림의 외곽선이 흐물흐물 거리며 움직인다. 외곽선은 쭉쭉 각이 져 전체적으로 지저분하다. 간신히 비율만을 성의 있게 맞췄다. 다만 가끔 외곽석의 움직임이 거세 비율조차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형편없고 거친 작화이지만 그만큼 역동적이다.
*KIDCUDI – RUN 흐른다.
쪼그려 담배를 태우는 유석을 중심으로 카메라, 천천히 멀어진다.
조선소 도장작업을 하는 인부 보인다. 도장사의 작업복은 청색으로 전신을 덮는다. 방진 마스크까지 쓰므로 얼굴을 식별하기 힘들다. 도장 스프레이를 손에 든 도장사가 배의 커다란 면적에 색을 칠한다.
조선소 그라인더 작업하는 인부 보인다. 그라인더 작업복 역시 도장사와 같다. 그라인더 작업자는 배 바닥에 쪼그려 바닥 평탄화 작업을 한다. 그라인더를 왔다 갔다 하는 동시에 뿌연 먼지가 작업자 주위를 감싼다.
조선소 용접공 보인다. 용접공의 작업복은 차이를 보인다. 갈색 두꺼운 작업복으로서 전신을 보호한다. 또한 간신히 시야만 확보할 수 있는 보안면을 착용한다. 배 안 어느 구석에서 불씨를 튀며 용접을 하는 용접공
거의 완공된 배에 볼트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로프 맨 한 명이 줄에 매달려있다. 아찔한 높이에 매달려 있음에도 능숙한 동작을 과시한다.
담배를 태우는 유석, 굽힌 양다리에 두 팔을 얹힌 유석은 그 사이로 고개를 밀어 넣어 숙이고 있다.
(클로즈업) 어두운 명암 처리로 그림자 져 있는 유석의 얼굴, 무엇인가 응시하는 듯하다.
배 바닥을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굼벵이, 굼벵이의 등 쪽으로 불씨가 탁탁 튀는 담배가 가까이 다가선다, 간신히 굼벵이에게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는 담배..... 굼벵이 괴로워하며 꿈틀 되는 속도를 올린다. 하지만 여전히 느리다. 그렇게 한동안 굼벵이를 괴롭히던 담배는 위협적인 불씨를 과시하며 굼벵이에게 닿는다. 굼벵이, 담배에 짓눌리며 관통당한다.
팍팍 튀는 불씨와 팍팍 튀는 초록색 피의 역동적인 이미지에 힘입어 무수한 노란색 나비가 펄럭이는 이미지로 바뀐다.
앞서 묘사한 어두운 명함의 유석의 얼굴, 프레임 가득 채운다. 프레임 안으로 노란색 나비가 날아와 서서히 유석의 얼굴 가린다. 선율 끊긴다.
85. 차 (내부/낮)
차 바퀴 굴러간다. 유석이 운전 중이다.
영재는 자신의 귓불을 괜스레 만지작거린다. 선 바이브를 내리는 영재, 자신의 얼굴 상태를 확인한다.
영재 : 하.....
유석 : 어쩔 수 없잖아 부정 탄다잖아....
영재는 유석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토라진 듯하다
유석 : 누나 내 이거..... 음..... 누나가 나 신경 쓴다고 화장 열심히 한 거 안다. 근데 솔직히 나는 누나 맨 얼굴이 더 좋아.
영재 : 지랄....
유석 : 진짜로.... 화장한 게 더 이쁘긴 한데 맨 얼굴이 더 좋아 자연스럽다고 할까? 짐승 같아서 더 좋아 ㅋㅋㅋ
영재는 유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생각보다 쌔게 맞은 유석은 기분이 상한다. 운전에 집중하기로 한다.
86. 차 밖 풍경 (외부/낮)
외진 도시, 오래된 집들...... 오래된 집들 앞 인도에 꽃이 진 화단들 쭉 늘어져 있다. 카메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 있는 화단들을 훑는다. 화단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할아버지 보인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쌩하고 뒷 꽁무니를 보여주며 내달리는 영재와 유석의 차
추수가 끝난 밭들이 펼쳐진다. 드문드문 마시멜로 형태의 무엇이 보인다.
밭 한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유석의 얼굴
밭 가운데 녹슨 양철통 안에서 쓰레기다 태워진다. 불꽃이 일렁이고 연기가 몽글된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차 한 대가 길의 흐름에 맞춰 나아간다.
초록색의 풍성한 나무 잎이 가드레일 위로 펼쳐진다. 도중에 관리 안 된 공용 화장실 하나 보인다.
차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쐬는 영재,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미귀자 전단지가 공용화장실 벽보에 붙어 있다. 미귀자의 사진(20대 여성), “2004년 08월 14일 20시경 산책을 한다고 집을 나선 후 미귀가”
87. 유석의 아버지 산소 (외부/낮)
큰 바위 옆에 차 한 대 주차해 있다.
유석과 영재가 묘지에 절을 2번 한다. 관리가 잘 되어있는 산소다. 다양하게 심어져 있는 꽃들, 임시 막사 앞에 예쁘게 깔려있는 보도 블록들, 크기가 다양한 항아리, 우아하게 락스 칠이 된 소 여물통 등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있다.
묘지를 등진 채 앉아 유석과 영재가 담배를 태운다.
영재 : (잔디를 잡아 뜯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많이 좋아하셨나 봐
유석 : 별로.... 우리 아빠는 무능력한 사람이었어
영재 : 그래도 보기 좋다! 이렇게 예쁘게 관리도 하시고
유석 : 그래? 어휴 난 진절머리나 흙 파고, 돌 파고, 심고 우리 엄마 몸 다 상해
영재 : 싫어?
유석 : 응 싫어...(침묵) 그래도 내가 우리 아빠 젤 좋아했어 엄마랑 누나는 때려도 나는 안 때렸거든
영재와 유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인서트]
무신을 그린 그림 2장이 한 장씩 빠르게 보여진다.(어느 사당 내부)
(익스트림 샷) 산골짜기 중간에 구멍이 파인 듯 사당이 작게 보인다. (숲 속의 사당)
작은 비닐하우스 앞 작은 밭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밭 가운데 새를 쫓기 위해? 벌레를 쫒기 위해? 작동되는 최신 기계가 놓여있다. 동그란 원형판에 긴 막대기가 양쪽에 꽂혀 뱅글뱅글 돌아간다. 양쪽 막대기 끝에는 폭 5cm 길이 2m 되는 천이 묶여있다.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천이 같이 빙글 뱅글 돌아간다.(어느 개인 소유 농장)
(슬로 모션) 사당을 배경으로 하얀 소복 차림의 여성이 서있다.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은 두 손을 곱게 자신의 배 쪽에 모으고 있다. 여성의 주변으로 수십 마리의 닭들이 날개 짓을 해댄다. 이 여성이 많은 이름을 가진 정체모를 만신이다. (사당 외부)
88. 영재의 집 (외부/낮)
영재의 집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폭의 계단을 올라서야 한다. 옆 건물의 높이에 그늘져 꽤나 음습한 분위기를 풍긴다. 유석이 앞장서고 영재가 그 뒤를 따른다.
영재 : 아...
계단을 오르다 다리를 헛디뎠는지 영재는 주저앉아 왼쪽 발목을 문지른다.
[인서트]
근엄하며 아름다운 무신들의 그림이 영재의 집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유석은 영재에게 다가가 등을 어루만지며 영재의 상태를 살핀다.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다.
유석 : 괜찮아?
영재 : 응.....
89. 영재의 집 (내부/낮-밤)
영재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유석이 먼저 들어선다. 유석의 눈에 만신이 보인다. 새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빈틈없이 머리를 뒤로 올려 재낀 만신이 둘을 기다렸다는 듯 입구 앞에 서있다. 만신 치고는 전혀 기가 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순박해 보여 민속촌 직원 같다.
유석 : 안녕하세요
만신은 우아하게 고개를 수그려 유석의 인사에 응한다.
식탁에서 남자 화랭이와 여자 화랭이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두 화랭이는 의외로 평범한 복장을 갖추고 있다. 남자 화랭이 성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식탁이 흔들린다. 남자 화랭이 유석에게 다가가 손을 건넨다. 얼떨결에 유석은 남자 화랭이의 손을 맞잡는다.
남자 화랭이 : (유석의 손을 두 손으로 포개며) 어서 오세요 준비는 다 해놨습니다.
짚 돗자리와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굿상,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무신 그림들
스티커가 붙어 있는 문짝에 자물쇠가 없어지고 반쯤 열려있다. 문틈 사이로 임산부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는 모습 보인다. 부풀어 있는 배만이 강조되어 보인다.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자물쇠는 절단기로 잘린 단면을 보이며 바닥에 내팽개쳐 있다.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영재, 눈매는 날카로워지고 입술은 깨물린다.
만신이 멍하니 시선을 창가에 둔다. 한참을 바라보는 만신이 이상했는지 유석과 영재 그리고 남자 화랭이, 만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만신 : 와.... 눈 내린다. 내일 내린다고 했는데.....
[인서트]
원래부터 고요한 도시가 눈이 내리면서 더욱 고요해졌다. 나풀나풀 예쁘게도 눈이 내려온다. (낮)
만신 :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유석을 보며) 남자 친구분께서도 함께 하실 건가요?
유석 : 아.... 네 상관없다면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겠습니다.
만신은 유석의 대답에 고개를 살짝 수그리며 응한 뒤 주섬주섬 천을 꺼내 들어 영재에게 건넨다.
만신 : 얼굴을 가리세요
하얀 천이 영재의 뒤통수 쪽으로 단단히 묶인다. 굿상을 등지고 꿇어앉아 있는 영재
남자 화랭이 장구를 쳐댄다. [둥-탁]
만신은 훌러덩 하얀 한복을 벗는다.
여자 화랭이 화려한 무복을 가져온다. 여자 화랭이의 도움을 받으며 만신은 무복으로 갈아입는다. 무복으로 갈아입은 만신은 여자 화랭이 건네는 식칼을 받아 든다.
여자 화랭이 영재가 꿇어앉아있는 왼쪽으로 파란 천을 늘어뜨린 후 끝부분을 발로 밞는다.
만신은 반대쪽 끝부분을 잡아당겨 팽팽히 만든 후 가운데 부분을 칼로 [부-욱] 찢으며 뛰어간다. 다시 한번 여자 화랭이 영재의 오른쪽으로 빨간 천을 늘어뜨린 후 아까 와 같이 만신이 가운데를 [부욱] 찢으며 뛰어간다.
카메라, 유석이 거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스쳐 보여준다.
잠시 BLACK 다시 화면 보이면.....
만신이 꿇어앉은 영재 앞에 우뚝 서있다. 만신은 주먹을 꽉 쥔 손을 앞으로 펼치고 있다. 주먹이 펴지며 쌀알이 우수수 떨어진다. 만신이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꺾으며 [우두둑] 목 푸는 소리를 낸다. 이후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의 머리를 성의 없이 긁어댄다.
만신 : (시선을 위로 올리며) 성님 오셨소!
만신은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벤다.
만신 : 조촐하게 하렵니더.
만신은 피 묻은 손으로 자신의 양 어깨, 허리, 허벅지를 쳐댄다. 이후 [큼, 허!] 하며 목을 푼다.
만신 : (건들건들 몸을 흔들어 대며) 성님 먹을게 어디 있겠소 솥을 열어 제끼니 시큼하기만 하고! 있는 거라곤 닭 하나 있는디.... 이것이 힘이 없어 알 하나 안 내놓습니더 잡아먹을라 해도 꼬꼬댁하고 울지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러지도 못합니더 하도 배가 고파 내 젖을 짜 봤는디 찔끔도 안 됩니더
남자 화랭이 : 얼 쑤![둥 탁] 임자는 어딨나?
만신 : (침을 꼴딱 삼키며) 우리 남진 어디 갔냐고? (남자 화랭이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니가 알지 내가 아니? 옆집 영숙이네 가서 물어보고 앞 집 미숙이네 가서 물어보고 뒷집 김 영감네 가서 물어보고 저기 저 바닷가에도 기웃거려 봤다.
남자 화랭이 : 헛짓이여~ [두 둥 탁]
만신 : 우리 남진 어딨음메~~ 하자 영숙이네 쌀 집어던지고 미숙이네 감자 집어던지고 김 영감은 소금 뿌리더라 음메~~~ 좋아라! 배가 이따 만치 불러가~~! (과한 연극을 하듯 두 팔을 배 쪽으로 동그랗게 만들며 몸을 흔들어댄다).
남자 화랭이 : 좋다 [탁 탁] 근데 바닷가는 왜 안 가나
만신 : (미소를 지으며) 안 가긴 왜 안가! 남정네들 물 받으러 갔지
남자 화랭이 : 에~헤~이 [두두두두 탁탁]
만신 : (앞서 와 같이 하지만 좀 더 무성의하게 두 팔을 배 쪽에 동그랗게 만들며) 내 배가 이따 만치 불어왔을 때 김 염감네 식구 하나가 찾아왔어......
남자 화랭이 옆에 가만 앉아 있던 여자 화랭이 징을 한번 친다. [쾅~~]
만신 : (연기를 하듯 울먹이며) 내가 갈 때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나 그냥 조용히 있겠습니더 그냥..... 그냥..... 조용히 지내면 되잖아요....
남자 화랭이 고개를 무섭게 저으며 장구를 친다. [두두두 두두두]
만신 : (아기를 들고 있는 시늉을 하는 팔을 앞으로 내밀며) 여기 있습니더....(고함을 지르며) 와요! 쥑이게요? 시발 것 내가 이것도 없으면 어떻게 살라꼬 이럽니까!
천을 뒤집어쓴 영재,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만신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만신의 두 눈이 무섭도록 이글거린다. 이내 이글거리던 눈이 꾹 감긴다.
만신은 아기를 들고 있는 시늉을 하던 손을 천천히 자신의 몸에 갖다 붙이며 스스로를 안는다. 그렇게 만신은 영재와 같은 모습으로 꿇어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영재와 만신이 같이 터트리는 울음소리를 지우려는지 남자 화랭이와 여자 화랭이가 장구와 북을 흠뻑 두드려 된다.
한참을 그대로 주저앉아 울던 두 여인은 서서히 다른 움직임을 꽤 한다. 영재는 자신의 뒤통수에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려하고 만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언제 자신이 울었냐는 듯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만신은 무복을 주섬 되며 방울 하나를 손에 든다. 흔들흔들, 허우적허우적 되며 화랭이들이 뽑아내는 선율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이내 방울을 거칠게 흔들며 [에헤이, 어이~, 어~허] 등의 추임새를 내며 장단에 흠뻑 심취한 모습을 보인다.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져 있는 것이 아주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다.
짚 돗자리 위에 날이 서글프게 베려진 식칼 하나 놓여있다. 만신이 썼던 칼이 내팽겨 쳐진 것이다.
그렇게 만신이 춤을 추는 와중에도 영재는 끙끙되며 매듭을 풀어버리려 한다. 맘처럼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났던지 영재는 [아~ㄱ~~~!] 하며 괴성을 지른다.
끝내 영재는 매듭을 풀어버리고, 동시에 화랭이들의 장단이 멎는다.
영재는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거칠어졌던 숨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좀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만신, 장단에 심취했던 자신의 몸을 억제하고 영재를 빤히 쳐다본다.
만신 : 울어라... 많이 서러웠제?
영재는 만신을 올려다보며 쏘아본다.
영재 : (고개를 자물쇠가 부서진 문쪽으로 돌리며) 니! 저 방 들어갔나....
만신 : 그래! (침묵) 괘안타 잘 보내줬다 내가.... 보고 싶은 것도 없었는지 가라 하니 바로 가더라
간신히 만신을 쏘아봤던 것일까? 영재는 무너지듯 얼굴을 찌푸리며 눈물을 흘린다. 고개를 바닥에 쳐 박고는 한참을 들지 못한다. 만신이 영재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준다.
만신 : 우리 애기...... 많이 힘든 거 내 안다....... 이제 괘안타
만신은 무복을 주섬 되며 또 하나의 방울을 꺼내 들어 영재의 한쪽 손에 쥐어준다.
방울에는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 등의 아기자기한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있다.
만신은 두 손으로 영재의 손과 방울을 따뜻하게 포갠다.
만신 : (영재의 등을 토닥이며) 이제 그만 고개 들자...... 그만큼 원망했고 그만큼 미안했으면 충분하다
[인서트]
어느새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도시 풍경 눈은 낮에 내리던 눈보다 더욱 세차게 내린다.
장구, 꽹과리, 징소리가 눈 내리는 고요한 밤에 작게나마 울린다. (밤)
고개를 까닥되며 꽹과리를 치고 있는 유석, 흥에 겨워 들썩이는 춤사위가 만신의 춤사위와 비교해보아도 영 어색하지 않다.
여자 화랭이도, 남자 화랭이도 신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징과 장구를 쳐 댄다.
각자 느낌 가는 대로 쳐 대도 요상하리만치 힘 있는 선율이 영재의 집에 울려 퍼진다.
만신과 영재는 선율에 맞춰 사이좋게 손도 잡는가 하며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해 가며 신나게 덩실덩실된다. 영재는 어린아이 같이 방방 뛰기도 하고 이성을 유혹하듯 우아하게 손을 펄럭이기도 한다.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는 영재의 모습이 유석의 눈에 들어온다. 눈물과 땀이 뒤섞인 채 환한 미소를 띤 유석
90. 플래시 백 – S#25. (유석이 영재의 따귀를 때리던 밤)
유석이 영재를 끌어안고 있다. 눈물과 땀이 뒤섞여 있다.
유석 : (떨리는 목소리로) 누님.... 이제 그만 놔도 될까요?
별 반응이 없자 유석은 끌어안았던 손을 천천히 푼다. 유석이 영재를 마주 보자 영재는 곧바로 유석의 따귀를 후려갈긴다. 유석은 아픈 귓불을 만지작 거리며 머쓱하게 웃는다. 만지작 거리던 손이 때어지고 유석의 얼굴이 진지해져 간다. 어딘가를 멍하게 응시하는 유석
91. 영재의 집 (내부/밤)
영재의 목에 칼이 관통해있다. 바닥에 머리를 콕 박고 두 손으로 칼을 꼭 쥔 채 영재는 죽었다.
영재의 머리에 천이 꽉 묵여 있다.
놀라 나자빠져있는 만신, 만신의 손에 꽹과리가 쥐어져 있다.
페이드 아웃
92. 어느 산의 절벽 (외부/낮)
(클로즈업) 영재의 뼛가루가 유석의 손에 으깨진다. 바닥에 주저앉은 유석은 영재의 뼛가루를 비벼대며 멍하니 시선을 먼 곳에 둔다. 뿌리지도 못하고 자꾸만 으깨기만 하더니 분골함째 절벽 아래로 집어던진다.
덩어리 진 뼛가루가 흩어진다.
93. 배추밭 (외부/낮)
황량한 배추밭, 수확시기를 놓쳐 새하얀 눈을 있는 대로 맞고 있는 배추들.......
94. 길거리 (외부/낮)
*유석과 그.... 엄마 / 소복소복 눈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만이 깔린다.
느릿한 유석의 발걸음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다소 걷는 게 위태롭다.
분주한 엄마의 발걸음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다소 걷는 게 위태롭다
귀에 이어폰을 낀 유석은 묘한 그루브를 탄다. 유석의 손에 국화꽃 한 다발 쥐어져 있다.
유석은 영재가 욕했던 상가에 국화꽃을 놓는다.
분주한 엄마의 발걸음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다소 걷는 게 위태롭다
또 다른 상가에 국화꽃을 놓는 유석, 그런 유석을 지켜보는 상가주인, 표정이 떨떠름하다.
느릿한 유석의 발걸음 이내 멈춘다.
유석의 앞에 엄마가 우두커니 서 있다.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엄마는 유석의 멱살을 뒤흔든다. 유석은 엄마의 흔들음에 저항 없이 흔들린다.
이내 유석의 품에 폭하고 파고든다. 엄마는 할 말이 많지만 그저 눈물만 흘린다. 유석은 엄마의 머리를 아끼듯 쓰다듬는다.
*소복소복되는 눈 밟는 소리가 끊기고 길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음 들린다.
95. 본가 (내부/낮)
유석은 백 팩에 책, 옷, 반찬 통 등을 챙긴다.
엄마는 안마의자에 앉아 몸을 풀고 있다.
엄마 : (아픈 표정을 지으며) 점심 먹고 갈끼가?
유석 : 아니 가면서 먹지 뭐
집 밖을 나서는 유석 [쾅]
홀로 남은 엄마, 안마의자의 시원함에 못 이겨 입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온다.
96. 차 (내부/밤)
어딘가에 주차를 하는 유석, 잠시 머리를 핸들에 박더니 차 문을 열고 나선다.
97. 마리 집 (외부/밤)
유석은 마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선다. 문을 열자마자 태국 염불이 새어 나온다.
두 손을 합장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마리
마리 : 중얼중얼(주문을 외운다)
마리는 간간히 눈을 까 뒤집으며 동물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동물 울음소리에 맞춰 각 동물의 특색을 흉내 낸다. 마리 곁에 두 여성이 앉아있다. 두 여성은 유석 쪽을 빤히 쳐다본다.
집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유석, 그녀들의 적대감이 어이가 없다.
98. 길거리 (외부/밤)
정처 없이 걸어가는 유석의 뒷모습, 유석의 등 밖으로 동료 형 1이 편의점에서 나오는 모습 보인다. 유석을 본 동료 형 1이 우뚝 움직임을 멈춘다.
동료 형 1 : 어.... 유석아!
유석 : 어..... 형
동료 형 1 : (환하게 웃으며) 오랜만이다 너!
유석 : (머쓱하게 웃으며) 잘 지냈어? 어디가?
동료 형 1 : 어.. 그냥 병원에 있다가 답답해서 나왔어
유석 : 병원? 어디 아프나?
동료 형 1 : 너 모르냐? 엊그제 우리 마누라 출산했다. 나도 지금 한동안 출근 못 하고 있어
유석은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축하한다는 말이 쉬이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유석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인서트]
영재의 집 문틈 사이로 보였던 임신한 여성의 배가 전보다 좀 더 프레임을 채운 상태로 보인다.
동료 형 1 : (유석의 어깨를 건드리며) 뭘 그렇게 놀래~~ ㅋㅋ 담배나 하나 줘봐 요새 담배도 못 피고 죽겄다야.....
유석은 죽겠다고 하는 동료 형 1의 표정이 너무나 밝다고 느낀다. 얌전히 담배를 건네주며 불을 지펴주는 유석이 영락없이 패배자의 모습이다.
유석 : 축하한다! 아들? 딸?
동료 형 1 : 딸! 야 ㅎㅎ 머리도 안 낳는데 벌써부터 귀엽다
유석 : (피식 웃으며) 아이.....부럽네~ 근데 딸만 둘이면 걱정 많이 되겠다?
동료 형 1 : 응..... 뭐.... 잘 키워봐야지 이쁘게
유석 : 응..... 진짜 잘 키웠으면 좋겠다. 형! 나 이만 가볼게 축하하구~나중에 봐.
유석은 동료 형 1을 만나기 전과 같이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간다.
(O.S) 동료 형 1 : 아 유석아!
유석은 형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선다.
(O.S) 동료 형 1 : 너 그 새끼 자살한 거는 알고 있냐?
유석의 눈이 미세하게 커진다.
99. 하얀 배경의 어느 곳 (외부/낮)
신삥이 사뿐사뿐 5걸음 정도 걸어가다 멈춰 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카메라 프레임에 신삥의 얼굴이 채워진다. 멍청하다고 할 정도로 해맑은 표정이다.
신삥이 카메라 앵글 아래로 후욱 사라진다.
100. 길거리 (외부/밤)
다시 정처 없이 걷는 유석의 뒷모습, 그의 들썩이는 어깨가 격렬해진 것이 다소 화난듯하다. 유석은 걸음을 멈춘다. 유난히 밝게 빛나는 레스토랑이 눈에 띈다.
101. 레스토랑 (내부/밤)
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유석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직원 : 어서 오세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손님 죄송한데 저희 곧 마감 시간이거든요....
유석 : (해맑게 웃지만 다소 기운이 없는 듯하다) 누나..... 나 배고파.... 금방 먹고 갈게요 응?
직원 : (어색하게 웃으며) 아.... 네
*바흐 소나타 1번 G단조 1악장 아다지오 흐른다.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유석의 뒷모습, 매장 테이블에는 유석 혼자 앉아 있다.
카메라, 천천히 유석에게 다가간다.
유석 : (반쯤 고개를 돌리며) 저 사장님! (카메라, 유석에게 다가가길 멈춘다) 죄송한데요 노래 좀 꺼주실 수 있나요?
(O.S) 직원 : 네~~!
유석은 노래가 꺼지기 전까지 고개를 움직이지 않는다. 노래가 꺼지자 다시 스테이크를 집어먹는다.
멈춰 섰던 카메라도 다시 유석의 목 쪽으로 다가선다. 유석의 뒷목에 문신이 스멀스멀 그려진다.
곧이어 화면 전체에 그림이 채워진다.
끝
엔딩 크레디트 올라가며 RAE SREMMURD – LIT LIKE BIC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