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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영 Oct 09. 2021

우리 집

  

아파트는 처음이었다. 여러 번의 이사를 마치고 마침내 진짜 우리 집이 생겼다. 부모님께서 결혼하시고 22년, 열일곱 번 이사 끝에 마련한 집. 청약에 번번이 실패하다가 당첨된 집은 관악산이 보이는 정남향, 국사봉 자락과 복개천을 끼고 있는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였다.     


우리 집이 생기기 전까지 주로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유로 집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둘만 낳지 왜 셋을 낳았어...쯧쯧”이라는 말을 셋째인 내 앞에서도 서슴없이 하던 사회였으니까. 우리는 이사하기 며칠 전부터 살림살이를 정리해서 박스에 담아두었고, 이삿날에는 이사업체 대신 아빠 친구들이 오셨다. 자동차도 없을 때라 통장님 댁에 있는 리어커를 빌려다가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짐을 옮겼다. 우리가 살면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살고 싶어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자 그 집은 우리 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번의 이사 끝에 마침내 생긴 진짜 우리 집. 우리가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있는 이 집은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나도 드디어 아파트에 살아본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부러움이 단숨에 보상받는 듯 싶었다. 이삿짐을 들이기 전 온 가족이 가서 청소를 했던 날, 집 안을 꽉 채운 햇빛 아래서 잠이 들었다. 한 겨울에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니. 내복에 패딩까지 껴입고, 기름보일러를 아껴 틀고, 차가운 신발을 끌며 화장실을 가야 했던 남의 집에서 이제 해방이다, 싶었다.      


진짜 우리 집으로 들어가고 한 동안은 부모님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따뜻한 새 집에 들어간 우리에게 고금리의 은행 빚이 기다리고 있었다. IMF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때, 새 집에 들어가면서 적금은 진즉에 깼고, 은행 대출을 풀(full)로 모두 받고도 모자라, 보험사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다. 우리에게 돈을 빌려줄 만큼 돈을 잘 버는 친척도, 넉넉한 친구도 없었던 부모님은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일을 하셨다. 이발소를 운영하셨던 아빠는 개인 영업장을 정리하시고, 운영경비가 적게 드는 24시 사우나 시설 내 이발소로 들어가셨다. 별다른 기술이 없으셨던 엄마는 뒤늦게 컴퓨터 기본을 익히셔서 중개보조원으로 취업을 하셨고, 쉬는 날이면 아파트 입주청소를 하시거나, 고구마줄기까기 같은 소일거리까지 하는 N잡러가 되셨다.   

   

그렇게 부모님이 버티는 사이, 언니들과 나는 그 집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사고, 배낭여행을 가고,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집을 사며 받은 고금리 대출은 모두 갚고 1금융권 대출만 일부 남아 감당할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늙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데, 돈이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시간을 팔아 돈을 샀다. 요즘 ‘꽃중년’이라고도 불리는 40-50대 시절을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만 바라보며, 하루 12시간 노동을 버티며 사셨다. 자식들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인데, 우리 얼굴 볼 새도 없이 일만 하셨다. 우리는 알아서 컸고.  


환갑에는 스위스를 가고 싶다는 엄마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자 아빠의 무릎이 말썽이었다. 이제부터라도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해보자 싶지만 가진 돈으로 엄마아빠의 건강하고 활기 넘쳤던 50대 시절을 살 도리가 없다.      

평범한 직장인이 집을 사려면 N년 동안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가능하다는 류의 뉴스는 의미가 없다. 집값과 연봉의 싸움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리가 사자와 싸우지 않듯이. 사람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집값은 계속 움직인다. 과거 주부들의 부업이 여전히 사이드프로젝트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바뀌어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노동과 시간을 팔아서 번 돈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집’이라니 조금 허망하기까지하다. 그렇게 몸과 시간을 들여 돈을 버는 동안에는 집을 누릴 수도 없고,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니.      

지금은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수없이 짐을 날랐던 리어커 바퀴자국이 남아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은 여전히 일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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