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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욱상 Apr 19. 2021

창업가의 크로스핏

하얗게 불태우기

꾸준히 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다. 

식물 키우기, 이불 개기, 어떤 관계들, 그리고 크로스핏. 


그 중 크로스핏은,  ' 체력을 매일매일 시험하는, 굳이 사서 하는 고생'이다. 한 주에 세 번 정도 간다. 가서 뭘 하냐면, 함께 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 후 오늘의 운동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20여 분 동안 그 날의 운동 메뉴를 있는 힘껏 소화한다. 보통 목표는 그날의 동작을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하는 것, 또는 정해진 횟수를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다. 운동 동작은 바벨, 로잉, 월볼, 줄넘기, 철봉, 싸이클, 덤벨과 케틀벨 동작들을 조합해 매일 바뀐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 장비는 좋고 코치님들은 유능하시다. 


반쯤은 내 의지, 반쯤은 Peer Pressure에 이끌려 운동을 하다보면  온 몸의 에너지가 완전 연소된다. "3, 2, 1, TIME!" 이라는 코치님의 외침과 함께 오늘의 운동이 끝나면 그저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쉴 수 밖에 없다. 땀으로 온몸이 축축하다. 다음날 아침 근육통은 이미 예약되어 있다. 


크로스핏은 좌절의 연속이다. 내 몸의 비루함을 체감하는데 크로스핏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예를 들면, 쓰러스터 (Thruster) 20개가 칠판에 적혀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딱 일곱 개 하는 시점부터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다. 하나 하나 해나갈 때마다 자세는 흐뜨러진다. 조금이라도 더 편한 자세로 하려는 내 안의 비겁함이 느껴진다. 정도를 가기란 너무 힘들다. 누가 정신이 몸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었나. 그 사람은 케틀벨 20kg로 스윙 30개를 연속으로 안 해본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스핏을 1년 이상 계속 해나가고 주위에 추천하는 이유는, 내게 있어 크로스핏이 하루의 '스몰 석세스'이기 때문이다. 아주 대단한 건 아니지만,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는 그날의 작은 성취감.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만큼, 탱크에 기름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완전연소를 했다는 느낌. 그 순간 만큼은 크로스핏 체육관 밖의 일들도 뭐든지 그렇게 이뤄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도 수많은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냥 하나하나씩 부러뜨러 나가면 되겠지 뭐. 대략 이런 기분이다. 


공동창업자 분과 점심을 먹다가, "크로스핏 너무 좋은데 무릎이 좀 아파서 그만할까 고민 중이에요"라는 얘기를 했더니 공동창업자 분께서 "전 그래도 최대한 상욱님이 계속 하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놀랐다. 아니 굳이? 이유를 들어 보니, 운동 이후에 내가 팀 슬랙에 남기는 댓글들이 훨씬 더 에너제틱하고, 더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내 판단의 타율을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최근 읽었던 책들 중 위대한 창업가들인 스티브 슈워츠먼 ("투자의 모험")과 필 나이트 ("슈 독")들의 책에선 그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때 했었던 운동에 대한 얘기가 초반부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육상선수였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규율과 자기관리, 경쟁심과 이를 뒷받침하는 꾸준한 노력. 이것들의 중요성을 운동을 통해 배웠고, 결국 커리어와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크로스핏을 하고 나서부터 이 내용들이 몸으로 이해된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청년은 몇 년 후 나이키를 창업합니다.


창업은 고단한 일이다. 매일매일이 작은 전투 같기도 하고, 하루에도 희열과 두려움이 번갈아가며 온다. 그 과정에서 창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팀을 위해서 매일 좋은 판단들을 내리는 것 뿐이다. 크로스핏은 여기에 큰 도움이 된다. 첫째, 일단 사람은 몸이 안 좋으면 좋은 판단을 내리기 힘든데, 크로스핏은 당장은 근육통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좋은 체력을 준다. 골골대지 않게 되었다. 둘째, 그날 그날의 나쁜 에너지들을 바벨에 실어 날려 보낼 수 있다. 프레스 하나마다, 그날의 질투와 원망과 자책을 담아서 할 수 있다. 이 때 바벨을 드는 힘이 더 잘 들어가고, 나쁜 감정들은 잘 날아간다. 셋째, 아까도 언급했던 성취와 낙관의 호르몬을 뿜어 준다. 어느 정도냐면, '아 뭐 회사 잘 안 되면 어때'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여러분, 크로스핏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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