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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Jul 27. 2022

#1.인생은 실전이다. ①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인생? 실전이지."라는 말을 많이들 사용한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 쉬운 것도 없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그런 막중함을 표현한 것 같다.

이리 보면 참 기특하지만 정작 묻고 싶은 게 있다.

과연 너는 네 스스로 네 인생을 개척하고 준비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이다.


유비무환 (有備無患) | 미리 대비를 하면 두려울 것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하는데 내 주변 지인들은 "넌 뭔 걱정이 그리 많냐."라고 웃는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인생은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인가.





우리 집은 잘 살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리 유능하신 분이 아니였다.

그냥 유능하지만 않았다면 그래도 좋았을텐데 성격도 한 성질 하셨다. 왜 있지 않은가. 꼭 보면 능력없고 돈 못 버는 사람들이 자격지심에 더 괴팍하게 구는...딱 그런 분이셨다.

그러다 개발붐이 일었고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토지와 선산이 대박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변했다. 졸지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외제차에 골프에 아주 인생이 달라졌다.

내 삶은 변한 게 없었다. 돈벼락을 맞았으니 드라마대로라면 스포츠카에 나는 정신 못차리고 살아야 정상인데말이다.


돈이 없던 사람이 돈이 생기면 사람이 변한다. 오만과 건방, 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스스로 번 적이 없는 돈을 졸지에 갖게 되면 그것을 노리는 자들에게 호구잡히기 딱 좋게 되고 우리 아버지가 딱 그 꼴이었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던 일이기에 나는 별 충격이 없었다.

그런데 곧 내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30대에 닥친 위기, 빚더미에 오르다


아버지에게 위임장을 써 준 일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나도 빚의 일부 책임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아니 그냥 내 명의로 빚이 생겨버렸다. 난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써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이었지만.

더 황당한 건 정말 드라마처럼 아버지가 잠적하고 딱 일주일만에 집에 압류가 들어왔다.

압류를 풀기 위해 차를 팔고 적금을 깨고 별의 별 짓을 다해야 했다.


1년도 안돼 집이 넘어갔고 여기저기서 돈을 갚으라는 연락과 독촉장, 통지서가 빗발쳤다.

갚고 싶어도 뭘 알아야 갚고 무마를 할텐데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또 터지는 격이었다. 가만히 살퍄보니 아버지는 일이 잘못되자 가족들에게 이를 숨기기 위해 사채든 무엇이든 돈이 될 루트는 다 이용을 해버린 것이다.

내용도 모르는 나는 졸지에 채권자들의 추심을 받아야 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했고 사정을 알아서 편의를 봐주던 회사도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 낙찰됐으니 퇴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게 2월 4일이었다. 하루에 남들은 하나만 겪어도 울화가 치밀 일을 세 가지나 당한 것이다.





모든 걸 다 털어 틀어막다 보니 가진 것도 없었다.

돈이 없으니 매일 그냥 거리를 돌아다녔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술은 아는 형이 사주면 마셨다. 다만 약속 장소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담배도 살 돈이 없으니 누가 사주면 피웠고 아니면 밤에 거리에 나가 꽁초를 주워 피웠다.

담배라고 안 피면 정말 견디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취직도 안돼 일일 알바를 뛰었다. 2시간 거리까지는 무조건 걸어다녔다.

모든 인간관계가 끝났고 정말 죽지못해 사는 나날이었다.

하루는 지방의 어떤 아저씨가 전화를 해왔다. 누구냐고 물으니 가게를 하는 사람이라 했다.

무슨 일이냐 하니 아버지 이름을 대며 "부친 아닌교?"한다. 맞다고 하니 잠시 통화가 되겠냐고 하기에 돈 갚을 여력이 없으니 끊으라 했고 그 사장님은 그게 아니라며 웃었다.


말인즉 아버지가 그 곳에서 일을 좀 했는데 가불을 하고는 안 나왔다는 것이다.

종종 소주 한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 정도 사연을 들었고 혹시 연락이 되는가 싶어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내게 "사정 들어보니 참 아버지가 되어가 너무한 감이 있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이렇게 무너뜨려놓고 이러면 안되는긴데..."라며 가불한 돈은 안 받을테니 용기잊지 말라고 했다.

그때 태어나 세번째로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나는 이때 돈이 얼마나 무섭고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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