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서른XX살에는

꿈과 실제의 간극 그 어디쯤에서

by 길 위의 앨리스


몇 년 전 도깨비의 도시 퀘백에 혼자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클래식 카 전시회를 보게 되었는데 차에 대해선 전혀 모르던 내가 봐도 너무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도록 쓸고 닦였을 그 차들은 어제 뽑았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잘 관리되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인터페이스의 요즘 차들과는 달리 커스터마이즈 된 듯한 클래식하고도 다양한 인터페이스의 모습과 외양의 디자인까지 개성이 뚜렷한 차들이었다. 아마도 가격은 어느 고급 외제차보다도 비싸거나 값을 채 매길수 없도록 레어템일 것이다.


내가 만약 최고급 외제차냐 이 한대뿐인 클래식카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그냥 보급형 외제차를 택할 것이다. 실제 살아가는데 있어 한대뿐인, 그것도 오래되어 부품도 구하기 힘든 차라면 관리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어떤 차로 살고싶은가를 선택할수 있다면 나는 주저않고 바로 이 클래식카로 살아가길 선택할 것이다. 세상 한대뿐인 유일무이한 존재인데다 우아하고 고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 인생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나는 어느덧 40대를 향해 가고 있다. 100세시대에 지금의 내 나이가 늙었다 말하기엔 뭣하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할수도 없다. 내 인생은 고급 클래식카에 가까울까? 아니면 경제적인 경차? 애매하게 평범한 보급형 준중형차? 아니면 SUV?


나는 어릴적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 왔다. 손으로 쓰다가 20대때부터 온라인에 썼다. 일기를 쓰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20대 초반, 나는 일기에 내가 바라는 스물다섯살의 모습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그때의 일기를 일부 공유해 본다.


내나이 스물다섯 살에는....
고시를 통과해 공익을 위해 일하고 국가의 녹봉을 받고 있을 것이다.
예쁜 옷을 입고 값비싼 신발을 신은 채 우아하게 다닐 것이다.
외제차를 타며, 하고싶었던 첼로를 취미생활로 하고 있을 것이다.
해외대학에 석사학위를 따기위해 지원을 했을 것이다.


정말 부끄럽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말 그대로 어린애였던 것 같다. 겉모습, 직업 이런 것들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적었던 것도 같다. 정말 그림같은 삶이다. 스물다섯살에 저 정도 이루려면 천재고, 운이 억세게 좋고, 집에 돈도 좀 있었어야 되는 것인데. 현실감이 심히 떨어질 때였던 것 같다. 그래, 하지만 어렸으니까. ㅋ


실제 나의 스물다섯살은 이랬다.


고시에는 또 떨어졌다. 강남의 한평짜리 고시원에서 학원을 다니며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자습실에 있었다. 예쁘게 치장하고 출근하는 나풀나풀한 원피스 입은 언니들 사이에서 백수라는 언타이틀드 인생을 살며 추리닝 차림에 맨얼굴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학원가를 전전했다. 첼로는 커녕 클래식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었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휴대폰도 없애 대학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매일 아침 길을 나서는 내 머리는 늘 말리지 못해 젖어있었다.


실로 엄청난 간극이었다. 실제 스물다섯에 저렇게 썼던 나의 글을 보며 한숨짓던 기억이 난다. 남들은 취업해서 예쁘게 꾸미고 다니며 맛있는 거 사먹고 좋은 거 사입고 연애하느라 바쁜데, 나만 뒤쳐진 것 같았다. 소속없는 삶이 불안했다. 그 불안감으로 고시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점수는 점점 떨어져갔다.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내가 과연 될까 하는 마음이 나자신을 잠식해갔다. 주변에는 나만큼 열심히 안 하면서도 나보다는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넘쳐났다. 눈 감고있는 시간을 빼고는 최대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이게 뻘짓같아 마음은 늘 미친사람처럼 날뛰고있었다. 하지만 20대였다. 내가 늦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희망이 아예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번째 고시에서 떨어졌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불안감을 양분삼아 취업준비를 했다. 나의 공백기로 서류에서 탈락한 경우를 제외하면 면접까지 올라간 회사에서는 단 한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음 해에 지금의 직장에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긴했지만 내겐 또 30대라는 희망이 있었다. 나의 10년 뒤는 어떨까 가끔 상상했다. 처음 1,2년은 그냥 정신없이 다니는것으로도 체력이 부족했다. 회사만 다녀오면 잠이 왔다. 자고 씻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야근하고 퇴근하고 집에가서 잠들었다. 딴 생각 할 시간을 회사가 주지 않았다. 그러나 3년차 중반 쯤 되니 이게 내 인생의 끝일까하는 의문과 함께 딴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은 20대고 난 끝나지 않았어. 하고. 그래도 5년차가 될때까지는 내가 일을 못하는 건지 일복이 터져나는 건지 몰라도 퇴근하고 잠들때까지의 최대 2-3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기에는 내 체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부끄럽지만 제대로 된 연애도 잘 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20대가 끝이 났다.


30대가 되었다. 20대에 적은 꿈을 다시 읽어본다. 아, 신기하게도 몇가지가 이뤄져 있었다. 고시에 붙진 않았지만 공직에 종사하며 봉급을 받게 되었다. 첼로는 스물일곱 즈음 취미로 하다가 그만두었다. 고급은 아니지만 외제차 오너가 되었다. 예쁜 옷은 모르겠지만 내가 스물다섯살 때 강남바닥에서 매일 보던 언니들 같이 화장도 하고 원피스도 입고 다녔다.


이정도면 100퍼센트까진 아니지만 거의 비슷하게는 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공직은 맞는데 적성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고리타분한데인지 몰랐고, 월급이 이렇게도 적은지 몰랐다. 화장도 하고 옷도 사입는데 우아함은 고사하고 마음은 늘 종종대며 여유가 없었다. 아, 30대에는 어떻게 되고 싶을까? 생각했다.


30대 초 한 신발회사 CEO의 인터뷰를 잡지에서 보게되었다. 그분은 스물일곱에 진로를 틀어서 디자인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30대 중반쯤 회사를 차리고 40세의 CEO가 되어있었다. 단발머리에 30대 초반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던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감과 강단이 느껴졌다. 아, 저거구나. 했다. 나의 40세도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용기와 패기, 열정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나만이 할수 있는 일을 하며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삶. 그렇게 살고싶었다.


그런데 내년이면 내가 마흔이 된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각종 질병과 약해진 체력으로 빌빌대며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하지 사춘기 때보다도 더한 내적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용기도, 패기도, 열정도 없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나이가 들수록 더 잘 모르겠다. 스물다섯에도 내 인생은 완성형이 될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고 마흔이 되면 그래도 비스무레하게라도 가겠지 했지만 그또한 전혀 아니다. 20대는 젊기라도 했지. 10년을 굴린 보급형 자동차같은 나는 이제 골골거리기까지 한다. 젠장.


희망을 가져볼 근거를 찾는다면 과거의 영광 뿐이다.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았던 나의 과거. 남들에겐 평범해 보이는 그 성취는 사실 불안함을 견디고 친구들마저 끊어내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하루하루 노력했던 것들의 열매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30대 나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주로 실패였음을 고백한다.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평판관리에 실패하고. 건강관리에 실패하고. 일에서 뭔가를 이뤘는지를 생각해보면 뭐 하나 들려해도 없는 것 같다. 그 실패를 인정하고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리고 의기소침해진 나를 위로하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상처는 아문 듯 흉터를 남겼지만 돈 주고 살수 없는 경험과 깨달음을 남겼다. 온실 속 화초같던 어린아이 대신 뿌리를 알수없는 단단함을 갖게 되었다.


30대 후반 즈음 되면 저런 고오급 클래식카같은 근사해보이는 삶을 살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20대 초에 하던 나의 망상은 부끄럽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백조가 될 수 없는 오리의 몸으로 나는 드러나지 않는 물밑에서 열심히 발장구를 치고 있다. 상처 뿐인 30대였지만 마흔이 넘어서는 언제 어디서든 의연하게 나만의 길을 걷고 싶다. 첼로도 필요없고 예쁜 구두도 필요없다. 그것이 바로 클래식카 같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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