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러버가 비행기를 못타게 된다는 건

잊고있었다. 나의 공황장애를.

by 길 위의 앨리스



한참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백수의 축제와 같은 취미부자 생활을 즐길 무렵, 나는 엄마와 함께 따로 또 함께하는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는 특 J 성향을 가진, 특히 여행 전엔 무조건 엑셀파일로 플랜 B,C에 동선, 이동시간까지 꼼꼼하게 다 따져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나의 성향과 다른 즉흥적이고 정적인, 쉬엄쉬엄을 택했다. 엄마는 친구들과 골프를 3일간 치며 머물고, 나는 3일간 혼자서 숙소를 잡아 따로 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중간에서 만나 합류해 같이 여행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10월의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혹시라도 환경변화에 내가 또 돌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약도 잘 챙겨먹었다. 절대로 절대로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망의 비행기 탑승. 다행히도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대한항공이라 크기도 했지만 만석이 아니었다. 평일이라 그런가 코로나로 그런가 한산한 공항은 낯설었다.


드디어 이륙. 맑은 하늘에 기류는 잔잔했다. 걱정했던 공황은 다행히도 오지 않았다. 물론 병원에선 비상시를 대비한 약을 항상 따로 처방해준다. 나는 공황증상이 한번 오면 꽤 길게 가는 편이다. 들어보니 평균적인 사람들은 짧게 오고 만다는데 나는 심할 때는 한시간 넘게도 힘들어봤다. 겪어본 분들은 알 것이다. 아주 잠깐도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는 걸. 제주도로 떠났던 그 때만 해도 내가 엘리베이터를 완벽하게 극복한 것은 아니어서 비행기를 탄다는게 큰 모험이었다. 살면서 내가 비행기를 모험으로 생각하게 될 지경이 되다니. 나는 10살때부터 비행기를 수도없이 탔다. 내 인생의 단맛을 꼽는다면 단연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만큼은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다녔고, 명품은 못사도 해외여행은 1년에 못해도 두세차례 이상 다녔다. 비행기는 설레는 장소 그자체였다. 그런 내게, 비행기가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되는 장소가 되어버렸단 게 서글펐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나는 많은 것들을 하나 둘씩 극복해가던 터라 희망찬 상태였다.


다행히도 1시간이 채 안되는 비행은 아무일도 없이 잘 끝났다. 제주의 하늘도 맑았다. 렌터카를 빌려 엄마를 친구분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내려주고 나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일단 짐을 내리고 숙소에서 잠시라도 쉬어볼까 했다. 그러나 좀 일찍 가서인지 체크인 시간에 마쳐 오라는 말을 들었고 나는 차로 돌아와 네비게이션을 찾아봤다.

역시 카페인을 먼저 충전해야겠다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마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일찍부터 짐을 챙겨 길을 나서느라 카페인 충전을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또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르니까!) 그래서 카페에 가기로 하고 찾아보았다. 조금 멀긴 하지만 함덕 쪽에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카페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곧장 그리로 향했다.


카페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제주공항에 내려서도 사람은 좀 봤지만, 코로나가 시작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건 처음 본것 같았다. 휴직하고 사람많은 공간은 피했던 터라 나는 주문만 재빨리 하고 야외로 나갔다.


야외좌석은 간격도 떨어져 있고 바다공기 때문에 조금 편하게 느껴졌다. 바테이블에 의자는 바다 바로 앞이다 보니 자리가 한자리도 없었다. 뒤쪽 좌석 중에 리조트의자가 하나 구석에 남아있어 그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솜사탕을 한쪽 찢은거 같은 구름이 새파란 하늘에 떠 있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그 솜사탕이 속도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하늘을 마음놓고 누워 본지가 언제였는지 떠올릴 수조차 없이 오래됐음을 깨달았다. 하늘보다 짙푸른 바다는 바람에 하얀 파도를 치대며 바로 코앞까지 울렁거렸다. 그리고 음악소리.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었을 것 같았다.



스케줄 또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도록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시켜놓고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참 좋았다. 이게 뭐라고 그동안 그렇게 노예처럼 살았을까. 새삼스레 휴직계를 낼때까지 고민했던 내자신이 참 바보같이 느껴졌다.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북적이고 있었다. 나의 호텔 체크인 시간도 가까워졌다. 이제 출발해야겠다 하고 짐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앞에서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잉? 차키가 없었다. 가방에 뒀나? 가방도 다 뒤져보았는데 없다. 없다!!!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보니, 내가 입은 트렌치코트 주머니가 기울기가 얕아서 뭘 넣어도 잘 빠져 왠지 자리에 떨구고 온것 같았다. 있는 힘껏 달려갔다. 다시 도착한 카페의 내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단다. 할 수 없이 온 길을 더듬어보며 찾아봐야하는데. 어쩌나. 왜이러지 나. 스스로를 원망하며 카운터에 가서 물어나 보자 하고 갔더니, 점원이 바로 키를 내준다.


아고. 십년 감수했다.

정신과 약이 진짜 그런 부작용이 있는진 몰라도 부쩍 깜박깜박 하고 그러던 시기였다.

살면서 지갑 한번 카드 한장 잃어버려 본 적이 없던 나라서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다.


호텔에 들어와 체크인을 한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는 후기사진을 보고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방이 무척 넓었다. 좁은 방은 혼자라도 내가 답답해 할 것 같아 큰 방으로 찾았다.



1층에 방을 주어 실망하고 들어섰는데 다행히도 뷰가 나오는 방이었다.

그리고 방은 넓었다. 그리고 조용하고 드넓은 단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만족이다. 평화롭다. 좋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 가만히 있었다. 아까 사람많은 카페에서 진을 뺐고 또 키를 떨어뜨려서 한바탕 하고 나서인지 기운이 없었다. 한숨 돌리며 그냥 쉬기로 했다.

조용한 리조트는 장점은 바글거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또 단점이 뭘 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코로나로 호텔들이 불황이라 그런지 2박을 하니 호텔 체크인할 때 치맥 쿠폰을 받았다. 나는 치맥을 저녁 메뉴로 정했다. 전화로 치맥을 주문하니 룸으로 친절히 배달을 해주었다. 나는 치킨을 뜯고 숙소에서 멀리 바다도 내려다보다 넷플릭스 했다. ㅎㅎ


호젓하게 맞이한 다음날 아침식탁.


사실 다음날 다다음날 뭘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비가 오는 저녁즈음 유명한 돈까스 맛집이라는 곳에 1번으로 들어가 먹고 오기도 했고, 그날 오후에는 숲길을 혼자 걸었으며 맑은 날 아침에는 갤러리에 갔다가 사진들을 보았다. 기억에 남아있는 사진이 있는데, 중산간쯤의 길목 인거 같았다. 아마도 후작업을 통해 길 가운데 레이저빔처럼 붉은색 선을 그었던 듯 하다. 그 선을 넘어가면 빨갱이로 간주하고 잔혹하게 사람을 죽였다던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비오는 날 걸었던 숲길과 맛집이라던 돈가스집. 오픈 1빠로 들어가 혼자 흡입하였다.


어느 갤러리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사진은 기억에 남아 찍었습니다.

약때문이었는지 시간이 흘러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중에 엄마와 합류하고선 재밌는 일은 있었던 거 같은데 깔깔 웃은 기억만 나고 정확히 무슨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같이 노을이 지는 바닷길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바람부는 날 그림그리는 카페에 가서 그림도 그렸고, 잠도 푹 잤다. 별탈없이 일주일이 지나고 돌아가는 날이 왔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여느날과 같은 맑고 건조한 날 오후였다. 하늘도 핑크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이륙직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풍인지 기압인지의 영향으로 계속 움직이지 말고 벨트를 매고 앉아있으라고 기장이 방송했다. 올라갈 때부터 나는 이미 조금씩 불안해졌다. 내 불안감은 온 몸의 신경 촉수가 되어 비행기의 흔들림에 이미 이성을 잃고 날뛰어 댔다. 나는 이성을 잃고 공포감에 울기 시작했다. 마치 바구니에 든 영아 처럼. 약을 두알 세알 먹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공황이 올것 같은 장소를 극도로 피했던 이유는 바로 비상약도 일단 한번 온 그 님을 떨치지 못했던 경험 때문이었다. 펑펑 울었다. 엄마 손을 꼭 붙잡고. 그날 내가 정확히 그 비행기에서 뭔짓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그저 계속 울었던 기억밖에는. 이제 내린다는 방송이 들릴때까지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고 정신이 좀 들고 나니 다들 줄을 서서 기체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 제주도여행의 끝은 슬픔, 이었다. 나는 하루에 열알이 넘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환자였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행했던 일상도 큰 도전이 되어버린 내 삶의 질은 크게 후퇴했다는 걸 다시 체감했다.

억울했고, 화가 났는데, 나에겐 복수할 기운도 정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나를 탓해야 하나.

운전도 제대로 못해서 겨우 집앞이나 다니는 수준이었는데 제주도에서 혼자서도 잘 돌아다녀 좋아했었던 그 기분 그 성취감...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십자가 모양으로 엎어져서 한참 울었다. 그동안 쌓아올렸던 희망이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한동안은 바깥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내게 비행기를 못 타게 된다는 것은 달리기선수에게 달리지 말라는 선고와 같았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걸 진정으로 원하는 건 아니었다. 먼 나라로 떠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은 내게 아직 불가능하다. 어찌하면 좋을까. 많은 것들이 내 인생에서 원치않게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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