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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펭부인 Aug 11. 2023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주 6일, 동네내과로 출근합니다.

 출근하면 하루에 한 번은 꼭 듣는 부탁이 있다. "한 번에 해줘요." 

나는 모기가 아니다. 하지만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들은 하나같이 다 한 번에 혈관을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퇴근길 우연히 보게 된 '다음 생에는 모기로 태어났으면....'이라는 간호사 친구의 카톡 알림창이 오늘따라 참 공감 가면서 웃프지 않을 수 없다.




 모기는 매우 발달된 후각을 통해 이산화탄소 또는 아미노산의 냄새를 맡고 혈관을 한 번에 찾는다고 한다. 사람인 나는 그렇게 발달된 후각이 없기에, 시각과 손가락 아래 촉감에 온 신경을 집중해 혈관을 찾아야 한다. 턱 하니 혈관이 딱 "나 여기 있소." 하며 보이는 분들이 피검사를 해야 할 때에는 반갑기도 하고, 아무리 세게 토니켓을 묶어봐도 혈관이 느껴지지 않는 분들은 한여름밤의 공포영화처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지금의 동네내과에 근무하기 전, 지역 내 큰 아동병원 병동에서 5년간 근무했었다. 치료에 협조적이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IV(정맥주사)를 한다는 건 정말로 큰 스트레스였다. 한 번에 성공하면 그저 본전일 뿐. 실패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화살들이 너무 아팠다. 아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고, 보호자는 "애 잡을 일 있어요?!" 라며 나를 탓하고 욕을 하기도 하였다. 




 동네 내과에 근무하면 적어도 이런 스트레스에서는 벗어날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덜할 줄 알았다. 하나 웬걸. 생각보다 영양제 및 수액을 맞으러 오는 분들도 꽤 많았고 일반검진 피검사에 간염, 고혈당 등으로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해야 할 분들이 많았다. 이뿐일까. 위, 대장내시경을 할 때 대개 수면내시경을 하기에 수액처방은 기본으로 달려있어 IV를 피할 수가 없었다. 



 간호의 꽃이라고 불리는 정맥주사술기. 어느 임상에 가도 자꾸만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오는 이 녀석.

그래 알겠다. 이제 더 이상 겁내지 않으리.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되지 않겠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눈물 흘렸던 지난날의 신규간호사가 아닌, 깡으로 가득 찬 30대 워킹맘 간호사이기에 이젠 과감하게 즐길 것이다.

  



 한 번에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조금 내려놓고 즐기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전보다 편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혈액검사 처방을 내는 원장님. 새로운 마음으로 이내 주사실에서 토니켓을 묶고 혈관을 잡았는데 탄력 없이 이리저리 춤추는 70대 할머니의 혈관이 미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했는데, 그냥 피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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