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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모래 May 02. 2023

영이별

네가 먼저 떠난다. 담담한 듯, 아프지 않은 듯.

언젠가, 합정역에서 헤어지는 연인을 본 적이 있다.


꽤 먼 발치였지만 그 두 사람이 이별중이라는 건 매우 극명했다. 그건 내가 목격한 것 중 가장 강렬한 이별이었다. 그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역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가진 중력에 두 사람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아무도 그 두 사람의 곁을 감히 지나지도 못했다. 그 눈빛이 말하는 것들 중 분노가 있는지, 슬픔이 있는지는 몰라도 육중한 애정과, 그 애정을 버려야 하는 아픔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숨막힐듯한 그 수십 초 동안 나는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무 발자국쯤, 어쩌면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그 장면에 이끌려 서 있었다. 일 분인지 한 시간인지 도무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남자가 먼저 자리를 떴다. 아무렇지 않은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곧 여자도 몸을 돌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여자가 보지 못한 광경은, 횡단보도를 건널 것 같던 남자가 비틀대더니 나무에 기대 눈물을 터트린 것이었다. 슬픔이 벅차오르므로, 몸을 가누기 힘든 태로, 치솟는 것을 삼키며 한참을 그렇게 있던 것이었다. 밤의 어두운 하늘과, 하얀 셔츠와, 비틀대는 남자.


남자가 보지 못한 광경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가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던 것이다. 뒷모습이지만 여자가 울고 있다는 건 어깨의 떨림으로 알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자 남자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여전히 휘청거리며 길을 건너갔다. 그리고 곧 여자도 손으로 머리를 몇 번 쓸어넘기고, 계단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걸어내려갔다.


그 떠남의 간격마저도 서로 닮아있었다는 걸 두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런 애닳는 마음을 가지고도 헤어져야 하는 사연을 내가 모르듯이.


두 사람이 그렇게 헤어졌는지, 다시 만났는지, 다시 만나서 다시 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매일 퇴근길에 합정역을 지나치면 몇 년 전 두 사람의 모습이 늘 떠오른다. 이별의 압도적인 무거움과 나풀대듯 비틀대는 발걸음과 땅을 뚫고 들어갈 듯하던 한숨과 아무렇지 않은 듯 떼던 발걸음.


나는 두 사람의 이별이 부러웠다. 그 시절의 나도 대단히 사랑을 했지만, 대단치 못한 이별을 했기 때문에, 남의 이별을 질투했다. 나의 이별은 일방적이었고, 떠나는 발걸음을 떼는 대신 유기당했으니까. 그렇게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빚어낸 완벽한 이별은 게으르게 사랑한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까. 두 사람이 모두 떠난 후에도 나는 그런 생각들로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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