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죽헌 고택 사랑채
고택을 다녀보면 같은 집이 없다. 시대마다 유행이 다르고 양식이 같아도 목수 솜씨가 다르고, 한 목수가 지어도 주인 취향이나 입지 조건이 제각각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집마다 특징과 개성이 있고, 고유한 멋도 있다.
집의 내력과 스펙을 알면 고택 감상이 더 재미 날 순 있지만, 모른다고 문제될 건 없다. 원산지나 학명 같은 거 몰라도 꽃은 이쁘고 향기롭다.
그런데도 굳이 답사기를 쓰느냐고? 매뉴얼 안 읽으면 불안한 사람도 있는 거니까. 나처럼. 또 좀 알고 보면 없던 호기심도 생기고. 뇌 세포는 새로운 자극을 좋아한다고도 하고.
죽헌 고택 사랑채는 1919년에 지었다.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맨 오른쪽 전면 한 칸은 대청마루를 깔고 팔작지붕을 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평면만 보면 보통의 살림집 같다. 그런데 집의 실제 모습과 전체적인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이 집 사랑채는 고택 안에 있는 별장 같다. 어떻게 이런 분위기가 나는지 신기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따져 보고 싶어졌다.
일각문
사랑채 출입문은 대문 안쪽 왼편 담장에 있다. 사랑채 구역을 구분하기 위해 길게 설치한 담장 앞쪽 일부를 끊어서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서까래(목기연) 위로 기와를 얹어 판문을 보호했다. 두 개의 기둥만 썼다해서 일각문이라 한다. 목기연을 받치는 네 개의 얇은 각재는 후대에 설치한 보조기둥이다.
문을 여기 둔 것은 사랑채 손님은 안채를 들러서는 안 되고 곧장 진입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이유인지 잠겨서 사랑채를 보려면 계단을 올라가 안채와 사랑채 간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이 통로도 사랑채를 처음 지었던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다.
빈지널 판벽
사랑채 뒤로 진입하면 툇마루와 함께 왼쪽 판벽이 눈에 띈다. 상중하 인방을 가로지르고 사잇 기둥 한두개씩을 받친 다음 판재를 뉘워 끼웠다. 왼쪽 두 기둥 사이에는 판재 13장을 차곡차곡 쌓듯이 끼웠는데 이를 빈지널 판벽이라 한다. 답사 당시 집주인께서 판재를 위에서부터 뺐다가 다시 끼우는 방식이라고 하셨다. 맞다. 어릴적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과거 대규모 농사를 짓던 부농가의 곡식창고 같은데 사용됐었다. 어떤 집에는 널판에 순서대로 번호를 적어두기도 한다. 뺐다가 다시 끼울 때 순서가 바뀌면 틈이 생기고 잘 안 맞게 된다. 빈지널 방식의 판벽은 곡식을 채웠다가 위에서 덜어 꺼내 쓰기 편리하다.
건물을 돌아 앞으로 가면 전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한쪽에 소담한 연지(연못)를 갖춘 작은 정원이 있고 개방감 좋은 마루가 나타난다. 정원 바깥으로는 토석 담장을 길게 둘러 마을 앞길로부터 사랑채 구역을 에워싸고 있다. 담장이 꽤 높은데도 멀리 천관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훌륭하다.
죽헌 고택 사랑채가 막힘없는 조망과 정원의 아늑함이라는 언뜻 상반되는 두 느낌을 동시에 갖춘 것은 아마도 높은 기단 덕분일 것이다. 경사지에 집을 지으면 높은 곳을 깎아내거나 낮은 곳을 채워 터를 닦는다. 이 집 건축주는 언덕에 우뚝 세워 멀리까지 시야를 확보했다. 이를 위해 앞부분에 석축을 쌓은 것이다.
그런데 단을 상하 두 단으로 나누어 설치했다. 한단 통으로 쌓으면 너무 높아 시각적으로 부담되고 실제로도 위험할 수 있다. 보성 강골마을 열화정 기단은 아주 높게 설치된 사례다. 죽헌 고택 사랑채는 집의 높이를 확보하면서도 축대를 둘로 나눠 위압감을 덜었다.
가적 지붕(덧달아 낸 처마)
죽헌 고택 사랑채의 건물 구조상 특징은 전면 지붕이다. 건물 앞에 처마를 덧달고 지붕을 연장했다.
그렇게 지붕을 길게 내민 후 건물 맨 왼쪽 방 앞에 넓은 누마루를 설치했다. 그 결과 이 집은 왼쪽에 누마루와 오른쪽 기존의 대청까지 널찍한 마루를 두 개나 갖춘 사랑채가 된 것이다.
이렇게 확장된 지붕을 ‘가적 지붕’ 또는 ‘눈썹 지붕’이라 한다. 문화재 건물 중 이와 비슷하게 지붕을 확장한 예로는 안동 도산서원 안에 있는 도산서당의 측면 지붕이 있고, 논산 돈암서원 강당도 잘 알려진 사례다. 도산서당은 퇴계 이황이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가까운 스님 목수에게 공사를 의뢰한 건물이다. 또 돈암서원은 송시열을 배향한 서원으로 고대 예법과 그 이론을 깐깐하게 재현해 지은 건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건물들은 모두 건물 측면에 덧댄 형태라는 점에서 죽헌 고택과는 차이가 있다.
죽헌 고택은 생활편의 확대를 위해 대담하게 전면의 모양새를 변형시킨 점에서 잘 안 보이는 측면에 제한적으로 부가된 그 이전의 가적 지붕과는 결이 달라 보인다.
죽헌 고택의 지붕 확장은 도산서원 도산서당이나 돈암서원 응도당 보다는 한참 후대에 지어진 창덕궁 연경당 선향재 앞의 채양이나, 강릉 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의 것과 맥락이 비슷하다.
이는 시대상의 변화 즉 새로운 건축 흐름을 반영한다. 선향재와 열화당에는 19세기 왕실과 상류 권력층 사이의 새 유행이 나타난다. 선향재는 청나라 풍 건물로 지어진 왕의 서재이고, 열화당 앞의 채양은 당시 러시아에서 들여온 구조물이었다.
생활편의
즉, 조선 중후기 까지는 유교 예법과 사대부의 격식을 의식하며 규범을 따르던 상류층 건축이 구한말 격동기를 전후로 생활상의 편의 확대를 위해 변신하는 모습이 두 건물에 나타난다.
당시 지방 부호들의 건축에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안채와 사랑채를 복도로 연결한다든지, 사랑채에 유리문을 설치하는 등의 변화가 그것이다.
죽헌 고택 사랑채의 기발한 지붕 확장도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생활편의를 위해 건축에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던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죽헌 고택 사랑채의 지붕 확장 부위를 자세히 보면 구조적으로도 매우 합리적이다.
지붕 연장이 없었다면 상부 기단 끝선이 처마 내밈의 최대치가 된다. 그대로 뒀다면 건물이 높아 비바람에 창호지까지 젖었을 것이다.
거꾸로, 만약 평지에 지은 건물이었다면 이 만큼 길게 앞 처마를 연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존 지붕의 경사를 따라 처마를 늘리면, 눌러쓴 모자 챙이 눈을 가리는 것처럼 답답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헌 고택 사랑채는 2단의 석축 위에 올려진 건물이다. 덕분에 길게 처마를 내밀어도 시야 간섭이 없다.
구조적 합리성
즉, 높은 경사지 건물의 약점을 보완하는 한편, 그 이점을 살려 과감하게 건물 앞의 처마를 늘려 놓은 것이다.
덕분에 죽헌 고택 사랑채는 기단 상면(토방)이 마루의 연장 같은 느낌이 나고, 대청마루도 빗물 드는 일이 없게 됐다.
확장한 처마지붕 덕분에 설치할 수 있게 된 좌측 누마루가 사랑채의 뷰 포인트다. 앉아 있으면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누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가까운 곳에 연못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 누마루를 만들기 위해 처마를 늘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죽헌 고택 사랑채에는 안채와 달리 장식을 배제한 담백한 모습이다. 누마루에는 화려한 계자각(닭 다리 모양의 조각 장식된) 난간 대신 간략한 평난간을 둘렀다. 전면 덧 기둥에는 사다리꼴 장주초석을 길게 치석 해 받쳐 세워 한층 날렵한 느낌을 준다. 이 사랑채는 고급 치목기법이나 화려한 장식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둔 건물이다.
공간의 변화
오른쪽 기존 대청마루와 새로 만든 누마루를 툇마루로 연결함으로써 건물의 모든 방과 마루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됐다. 덧달아낸 가적 지붕으로 전면 공간이 넓어지니 정원과 외부 경관을 한층 여유롭게 즐기수 있다.
죽헌 고택 사랑채는 경사지의 높은 축대를 활용해 확장한 전면 처마로 생동감 있는 공간변화에 성공한 멋진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