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운동 원림
강진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남쪽 시골마을에 감춰진 기품 있는 별장이다. 마을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대나무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청량한 계곡 건너편에 잘 가꿔진 원림이 나온다. 대나무와 동백이 우거진 산책길도 운치있지만, 숲속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정원은 극적인 멋이있다. 아기자기한 건물과 주변 경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백운동 원림은 아늑하고 환상적이다.
조선 중기에 지은 백운동 원림은 자연과 건축을 대하는 당시 사람들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전통 정원이다.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명승으로 지정됐고,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원림과 더불어 호남 3대 원림으로 불린다. 여기서 자극받은 사람들이 그림과 시를 남긴 200여 년 전이나, 사진을 찍어와 pc로 기록하는 지금이나 명승이 주는 감동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명승의 생명력
그런데 이 빼어난 경치는 백운동 원림이 역사의 굴곡을 견뎌내고 스스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백운동 원림의 건물들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복원된 것인데, 이 복원은 기록 덕분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에 원림을 다녀간 문인들이 시와 기행문을 남겼다. 특히,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정약용은 제자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남겼는데 그것이 원림 복원의 근거가 된 것이다. 결국, 매혹적인 경치는 기록을 남기고 기록은 후대의 중창으로 이어졌으니 백운동 원림은 스스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원림의 입지
흔히 '정원'과 '원림'은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의미가 조금 다르다. 정원은 담장으로 둘러싼 집안 뜰에 나무나 꽃을 심어 가꾼 곳이다. 이와는 달리 원림은 경치 좋은 곳이나 전원에서 머무르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요즘의 전원주택과 비슷한 원림은 주거지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교감이나 휴식, 학문수양, 교류 등의 목적으로 지은 특별 거주지다.
그러므로 원림이 들어서는 자리는 일반 주거지와 구별된다. 물론, 그렇다고 원림이 산간오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원림은 보통 마을과 농지에서 반경 2km 이내에 들어섰다. 원림을 조성한 건축주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부농이었다. 따라서 집안 대소사 및 농사일 관리를 위해 생활터전과 너무 멀어져서는 곤란하다. 백운동 원림 아래쪽에도 마을과 논밭으로 된 들판이 있다.
그런데 백운동 원림은 마을 뒤에 있지만 밖에서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진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는 중에도 거기에 원림이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숲속에 완전히 감춰져 있다. 외부에서 안 보이게 자리잡은 백운동 원림의 입지상 특징은 다른 원림에도 일반적이었다. 마을에서 가깝지만 마을과 격리되고, 바깥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지형을 일부러 골랐던 것이다.
이런 '은거' 취향은 당시 선비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벼슬길에서 은퇴하거나 귀양살이 중일 때 만이 아니었다. 재력이 뒷받침된 상류층 사이에서는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을 택해 건물을 짓고 머무는 일이 흔했다.
자연주의
자연속에 건물을 짓는 흐름은 백운동 원림이 만들어진 17세기 이전부터 있었다. 이미 16세기 중엽부터 전국 곳곳의 경승지에 원림과 정자건믈이 등장했다. 경북 봉화 권벌의 정자건물들, 경주 이언적의 독락당, 안동 만휴정 등이 대표적이다. 전라도에도 많은 사례가 있다. 송강 정철의 식영정이나 송순의 면앙정은 그중 잘 알려진 예다. 특히 담양 소쇄원은 백운동 원림보다 백 년쯤 앞서 지은 대표적인 원림 건축이다.
이처럼 가파른 절벽이나 암반 위, 경치 좋은 계곡에 집을 짓고 경관을 즐기며 학문탐구와 휴식처로 삼는 것이 이 시대 상류층에 대유행이었다.
그런데 자연속의 이점을 누리고, 나아가 자연을 건축에 융화시키는 게 원림건축의 핵심이라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게 된다. 주변 경관을 얼마나 잘 누릴수 있느냐가 원림의 본령이라면, 건물보다는 입지 즉, 원림의 터가 가장 중요하다.
결국, 좋은 원림의 결정적인 요소는 천연의 멋이 넘쳐 나오는 절경을 택했느냐가 된다. 건물은 그저 기본적인 기능만 갖춰서 간소하게 짓더라도 주변 경관으로 멋이 나는 곳이어야 좋은 원림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원림을 조성할 때는 건물을 짓는 장인의 솜씨보다는 터를 고르고 결정하는 주인의 취향과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므로 원림건축에는 장인의 솜씨가 아닌 주인의 안목이 주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백운동 원림도 바로 그런 비경을 골라 자연상태의 경관에 건물이 조화되도록 배치되어 있다.
원림 조경기법
한편, 그런 좋은 원림을 조성하기 위해 사용된 특별한 조경 방법이 따로 있었다.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의 "차경" 기법이다. 차경은 자연환경을 누리면서 건축과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요즘의 '생태주의 건축'과 원리가 비슷하다.
차경의 첫번째 요소는 좋은 입지를 정하는 것이다. 입지는 건축행위로 바꿀수도 없고 잘못 고르면 건축에 제약이 되기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조선 선비들이 선호한 입지는 숲속이나 높은 언덕, 개울가와 인적이 드물고 한적한 곳이었다.
차경을 구성하는 세부요소들은 거리와 높이,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얻기 위한 방법들이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지형에 건물을 앉힘으로써 입체적인 경치를 즐기고 계절별로 특색있는 경관이 나도록 나무를 가꾸는 것이다. 백운동 원림에서도 이와같은 수법들이 잘 나타난다.
월출산을 끌어들인 백운동 원림
백운동 원림은 계곡을 낀 언덕 위에 축대를 쌓고 조성했다. 덕분에 사시사철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면서 아래쪽 수려한 경관도 즐길 수 있다. 담장 안의 건물들은 각기 다른 높이의 축대 위에 놓여 외부 조망이 다르다. 건물별로 고유한 경치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백운동 원림의 건물들은 모두 규모가 작다. 안채를 제외하고는 소박한 초가지붕이고, 하나같이 권위적이거나 돋보이지 않아서 자연경관의 일부처럼 어우러진다.
백운동 원림이 아늑한 숲 속 공원 느낌이 나는 것은 입지 덕분이다. 백운동 원림은 월출산 산자락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곳의 작은 야산에 만들었다. 야산 중간 계곡에 들어선 원림을 산 능선이 동그랗게 감싸 안아서 포근한 기분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형은 아늑하지만 자칫 답답해질 위험이 있다.
백운동 원림 조성자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원림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멀리 있는 경관을 끌어들임으로써 탁 트인 조망을 확보한 것이다. 이 정자에 올라 앉으면 원림 내부가 환히 내려다 보일 뿐만 아니라, 멀리 월출산 기암괴석과 봉우리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 결과 백운동 원림은 차경의 여러 요소를 모두 갖춘 아름다운 원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