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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Jul 21. 2023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7달 하고도 21일째 옷을 사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매일 소비를 하는 일상 속에서 만족감보다는 공허함이 더 컸기에, 그리고 항상 일을 하고 있어 바쁘다는 핑계 속에 나를 챙기기 위해선 밥을 하기보다는 밥을 사서 먹어야 했고, 옷을 세탁기에 돌리는 번거로움 보다는 세탁소에 맡기는 편리함을 택했으며, 각종 세일 시즌에 맞혀 나중에 내가 사용할 테니 물건을 미리미리 사서 쟁여두자는 심리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아끼는 길이고,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나에게는 여유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었고, 돈은 벌고 있으니 매일 쓰는 돈이 실은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긴 여행을 하고 난 이후에 규칙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자, 그동안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제는 정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의 선택지를 뽑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로 매일 꾸준히 나가야 하는 일터가 없기에 옷을 살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1년 동안 옷을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화장을 할 이유가 없으니 화장품을 살 필요도 없었고, (집에 있는 기초화장품으로 충분히 1년을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신발, 가방과 같은 것들도 더 이상 구매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로지 소비는 '생필품' 위주로,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식비' 위주로 돈을 쓰다 보니, 이제는 반대로 집안에 쓸데없이 채워져 있는 물건들로 시선이 옮겨졌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영어로 강의도 하면서, 매년 영어교재를 집필하는 일이다 보니 집안 곳곳에는 책들이 정말 벽처럼 쌓여있었다. 내가 쓴 책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힘들게 준비한 수업 자료를 버리려니 생각보다 속이 쓰려 감히 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책과 수많은 A4용지로 가득 찬 서재는 이상하게 숨이 턱턱 막혔고, 아까운 건 둘째치고 나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큰맘 먹고 내가 쓴 책들을 각 1권씩만 두고 나머지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보냈다. 너무나 양이 많아 내가 직접 들고나갈 수 없어 잘 사용하지 않는 카트를 꺼냈다. (이사할 때 사용하고 나서 꺼내본 적이 없는 카트였다.) 그리고는 10년 동안 내가 일했던 그 모든 자료들과 책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책장 하나를 다 비워내니, 막혀있던 벽이 보이고 책들 사이사이에도 숨구멍이 트여서 그런지 서재에 들어갈 때 느껴지던 답답함은 사라졌다.


영어책을 버리다 보니 이번에는 소설과 다른 인문학 서적들이 눈에 거슬렸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들은 한쪽에 두고, 더 이상 팔 수 없는 책들은 미련 없이 솎아냈다. 책이라는 것이 사람이 읽을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인데,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은 더 이상 보지 않아 먼지만 쌓여가고 공간만 차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 주변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고, 실은 아직도 집안 곳곳해 버리고 싶은 물건들은 많지만 유예시간을 두고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지를 고민한 후에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적다 보니 미니멀리스트라기보다는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마음 같아선 여행용 케리어 1개에 내가 사용할 물건들만 다 남기고 정리를 하고 싶지만, 같이 살고 있는 나의 님은 나와는 반대로 멕시멀리스트라 적정한 선에서 서로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불가리아에 나의 요가복을 두고 왔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꼭 필요한 소비만 하면서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킬 것처럼 보였는데, 아... 사람 마음이란 갈대인가 보다. 여행하는 길에 배낭이 무거워 짐을 줄일 요량으로 오래된 요가복을 버리고 왔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가볍게 저녁 산책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편인데, 8월부터 요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운동을 어떻게 하면 잘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갑자기 요가복이 사고 싶어지고, 세일품목을 찾아보게 된다.


평소 최다혜 작가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이라는 책을 보며, 지금의 나의 불안한 삶의 위로와 위안을 받았는데, 또다시 흔들리는 나를 보면 사람의 본성이란 쉽게 사라지지 않는구나 싶다. 지금 마음 같아선 집에 있는 추리닝을 입고 요가를 나갈까 생각 중인데, 나도 내가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잘 모르겠다. 이번만 잘 버티면 1년 동안 옷 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데, 요가복이 이제는 불필요가 아닌 필요가 되었으니 나의 소비는 괜찮은 것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소비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을 내가, 이제는 단 하나의 물건을 사더라도 이 물건이 정말 나에게 꼭 필요한지, 집에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물품이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덜 쓰는 연습 덕분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고, 큰돈을 쓰지 않아도 내 삶은 충분히 충만하다"는 말을 오늘도 나는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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