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올해 들어서 나에게 가장 바쁘고 정신없던 한 주였다. 정말 오래간만에 일을 시작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했으니 매일매일이 가시밭길이었고, 공교롭게도 일하는 곳에서 내가 제일 막내이지만 나이상으로는 나이가 제일 많았으니, 같이 일하는 어린 동료들에게 부담감을 줄까 나름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 보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너무나 배워보고 싶었던 번역공부도 같이 시작을 했는데, 생각보다 해야 하는 숙제와 들어야 하는 강의가 많아 내가 괜히 욕심을 부렸나 싶었다. 하지만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 가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에 마음먹은 김에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9월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이렇게만 보면 올해 가장 뿌듯하고 바쁜 한 주를 보낸 것 같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 생겨 혼자서 우는 날들이 많이 이어졌었다. 9월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2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건강 검진을 받았었고, 술, 담배나 몸에 나쁜 것은 잘하지 않는 나로서는 건강검진의 결과도 그렇게 크게 긴장할 만한 사항이 아니기에, 정말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다녀왔었다. 그걸로 나는 잊고 있었다. 병원에서 문자가 오기 전까지는...
너무나 피곤한 상태에서 문자를 보았기 때문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 상 "고등급 상피내 병변"입니다. 내원하시어 조직검사 필요하십니다.
자궁경부암 진행 단계 : 고등급 상피네 병변은 암 전 단계라고 한다. 치료는 원추절제술을 해야 한다. (출처 : 네이버)
일이 상당히 늦게 끝나 그 자리에서 확인은 못했고, 집에 와서 다시 문자를 보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솔직히 '고등급 상피내 병변'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에 이 단어를 검색했고, 설명들과 이미지들을 보니 뭔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급 병변이나 침윤성 암의 가능성이 높다니... 지금 내가 무슨 글을 읽고 있나 싶었고, 토요일은 병원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개원시간이 되자마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병원에 들어가서도 번역숙제가 있어 컴퓨터를 꺼내놓고 숙제를 할 만큼 난 긴장하지 않았었다. 속으로는 괜찮겠지... 별일 아니겠지... 하면서도 예습으로 과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은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숙제를 하며 검진을 기다렸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고, 의사 선생님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나의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우선 '고등급 상피내 병변'은 암 전단계로 현재 '원추절제술'을 통해 일부분을 잘라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 부분에서 벌써 두려웠지만, 의사 선생님은 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세포조직'을 검사해야 하며, 만약 자궁경부암이라면 자궁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거기다 더해 나의 갑상선이 좋지 않았던 점을 들어 그 부분도 다시 한번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뭐랄까... 거의 사형선고를 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약간의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진단 결과를 전하며, 어디 대학병원이 좋은지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셨지만 솔직히 선생님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찰실을 나와 수납을 하기 위해 앉아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수납할 때도, 피를 뽑고 검사할 때도, 하다 못해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때도 덤덤하던 내가, 그냥 남편 목소리에 이렇게 내 감정에 무너질 수 있구나 싶었다.부모도, 동생도, 친구도 아닌, 18년 동안 매일매일 티격태격 싸우며 하루하루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나의 남편만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설명도 못하고 울고 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남편은 놀랐는지 그날 있었던 테니스도 취소하고 병원으로 달려와 주었다. (괜히 미안했다. 운동하고 와서 이야기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10년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너무 일만 하다가 피로와 번아웃이 쌓여 한쪽눈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대로 실명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함께 여러 가지 약을 사용해도 눈의 시력이 돌아오지 않자 의사 선생님은 환자 자신의 피를 희석해서 눈에 넣는 방법을 선택하셨었다. 나의 병명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의 고민도 깊어갔고, 나 역시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남편이 있었고, 다행히도 나는 눈의 시력을 회복하였으며, 운이 좋아 내가 하는 일이 잘 풀려서 강사로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었다고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의 상태가 그때와 똑같을지 다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내가 의지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가 이 힘든 상황을 또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마음속에 품어본다. 남편의 든든한 위로와 보살핌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요즘이지만, 한 번씩 흔들리는 마음에 눈물을 흘린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낙관도 말고, 근거 없는 염려도 말 것
일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읽고 있는 책에서 이 글귀를 보았을 때, 나는 여러 번 마음속으로 이 구절을 읽어보았다. 그래 아직은 모르잖아... 지나친 낙관도 말고, 근거 없는 염려도 하지 말자! 지금은 우선 결과를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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