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출산기 6주 차
병원에서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팬케이크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조금 전에 받은 산모 수첩을 뒤적이다가 초음파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차에서는 많이 이야기보다는 아내를 잠시 놔두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 사진을 좀 더 바라볼 수 있도록 두었습니다.
고마워, 축하해.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 전 우리는 서로에게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고 아낌없이 웃어주었지요. 산모들은 병원에 다녀온 그 하루만 평온해진다고 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불안해질 아내이겠지만 오늘만큼은 불안함을 지우고 마음껏 즐거워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과 의사의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의사가 말해주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해도 된다니 너무 다행이다."
"이것저것 다 먹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봉골레 파스타는 이제 못 먹는 건가."
"아까 심장 뛰던 것 봤어?"
오늘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들이었죠. 오늘은 둘 다 미리 휴가를 내 두었습니다. 병원에 초진을 보는 것도 중요했고, 우리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으니까요. 저녁 예약을 해 두었지만 여유 있는 시간 덕분에 성수동에 들렀습니다. 유난히도 햇볕이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평일이었지만 성수동은 여전히 북적거렸고, 무더운 날씨에도 밝은 얼굴들을 하고는 재잘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 둘도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우동집은 정말 맛있었는데."
"어? 저기 있던 커피숍은 없어졌네."
손을 꼭 잡고 걸으며 걷는 우리는,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한 날의 평범한 둘이었어요. 새로 생겼다던 브랜드 스토어에 들어가 한참을 둘러보기도 하고, 오래 걸어 지칠 때면 잠시 자그마한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마셨습니다. 언제나처럼 예쁜 아내를 앞에 두고 앉아, '여기 좀 봐봐.' 하며 사진을 찍어주곤 했지요. 휴가였지만 급한 일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잠시 나가 찻집 앞 난간에 기대어 통화를 하며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아내와 찡긋 눈인사를 하고는 서로에게 웃어주기도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유난히 내리쬐던 햇볕이 생각나는 하루였네요.
오후가 마무리될 때쯤, 구민체육센터에 주차해 두었던 차량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을 위해 챙겨두었던 무알콜 스파클링 와인이 더운 날씨에 잘못되진 않았는지만 한번 확인하고는 압구정동으로 향했습니다. 차에 앉아 출발하기 전 아내에게 '나도 초음파 사진 좀'이라고 말하고는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사실은 한껏 벅차 있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는데, 일상적인 날인 것처럼 행동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십 대가 되는 동안 설렘과 불안함의 크기는 대부분 비례한다는 걸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산모들처럼 오늘 하루만큼은 불안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또한 임신을 함께 하는 남편의 마음이 아닐까 라며 혼자 생각했던 운전 길이었습니다.
예약해 두었던 한식 파인다이닝 솔밤에 도착했습니다. 주차를 맡기고는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이 좁아서 살짝 놀랐지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커다란 오픈 키친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몇 개의 테이블들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첫 손님이어서 잠시 가게를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유난스럽게 꾸미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의 실내가 좋았고, 테이블마다 예쁘게 떨어지도록 세팅된 핀 조명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음식은 정갈했고, 세련된 서비스가 좋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주 건강하게 딸기를 만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불안이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의 확신이었죠. 나는 페어링 와인을 들고, 아내는 무알콜 와인으로 축배를 들 수 있도록 이 저녁시간을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우리의 대화는 아름다웠고, 행복한 결혼기념일을 즐기는 평범한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접시가 아내 앞에 하나, 내 앞에 하나 나왔습니다. 거기엔 각각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ㅡ Happy 3rd anniversary!
ㅡ 건강하게 순산을 기원합니다❤️
어쩌면 평범한 결혼기념일의 그날. 우리에게 찾아온 딸기와 함께 조금은 특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