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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마 Jul 27. 2022

그 익숙한, 함께 선택하는 것

남자의 출산기 5주 차

우리 부부를 간단히 소개해야 할 것 같네요. 아내가 서른셋, 내가 서른여덟이던 2018년에 만나 2019년에 결혼했습니다. 그 해 6월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없던 시절이라 멋진 하늘 아래서 야외 결혼식을 했지요.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직접 만들어 나갔습니다.


청첩장만 4가지 타입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용, 동료와 친구들용을 만들었고 200명 이내의 손님들만 모셨기 때문에 초대드리지 못하는 분들께 보내는 카드와 해외에서 오시는 분들을 위한 외국어용을 만들었어요. 주례 없는 결혼식의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사진과 영상작가님도 따로 섭외하고 결혼식 전체 음악을 담당해주실 분을 섭외했으며, 손님들께 드릴 와인과 샴페인을 직접 골라 공수했습니다. 결혼식 전에는 부모님들의 손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손님들을 직접 만나서 청첩장을 드리고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드레스와 메이크업 같은 것으로도 아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외의 모든 것을    있도록 해야 했어요. 나는 고객들에게  나은 제안을 하는 직군의 책임자로 있었고 매일 같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며  많은 것을 진행하기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내와 상의하고 결혼식 2개월 , 과감히 직서를 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결혼이 평온하게,  온전하게 이루어질  같았습니다. 덕분에 아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평일 오전 오후 시간에 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있었죠. 남들은 결혼 전에 승진이나  나은 직장으로의 이직을 원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완전한 결혼을 원했습니다.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그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2021년에 나는 직장을    옮겼습니다. 커리어와 급여의 성장이  것도 좋지만 안정적이면서도 가정에 충실할  있는 시간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구성원의 임신과 출산을 함께 기뻐하고 응원할  있는 곳이어야 했고 육아에 에너지를 쏟을  있으며 그에 따른 경제적 기반이 되어줄  있어야 했습니다. 수직 상승하는 모습을 그렸던 젊은 날과는 달리, 가족과 함께라면 천천히  발씩 나아가는 삶이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했고, 아내는 무한히 나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임신 과정을 대하는 태도도 우리에겐 변함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나의 역할을 찾아야 했고, 해내야 했습니다. 우선 병원부터 함께 찾았습니다. 믿을만한 병원을 찾아 믿을만한 의사를 선택해 보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좋은 병원의 의사들은 예약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기로  것은 아니라, 약간의 여유가 있어 조금은 다행이었습니다.


병원과 의사의 신뢰감도 중요했지만 집에서의 거리와 가는 길이 복잡하지 않고, 주차가 편리한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내는  개의 병원을 골라서 장단점을 뽑아주었고 책임 분만이 가능한 곳으로 선택하고 출산 후 우리가 원하는 분유를 급유할  있는 곳으로 선택했습니다. 집과의 거리도 중요했지만 임신 기간 동안 반복되는 진료를 생각하면 아내와 나의 사무실과도 멀지 않아야 했지요.


소아과를 함께 운영하거나 산후조리원을 함께 운영하는 것도 주요한 선택항목이었는데, 우리는 신뢰도와 편의성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병원을 선택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6월 22일 오전, 병원 초진 예약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6월 22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딸기 만나러 가자!

Featured image source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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