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by 도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공단에서 주야 2교대를 하며 가끔 없는 주를 부르짖고 시대에 미쳐가던 이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초입, 나는 한 소녀를 알게 되었고 그녀를 사랑했다. 내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이쁨이었던 그녀는 저 먼 밑에 지방에서 한참이나 위로 올라와 충청도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고, 명함도 없는 내가 가진 위치란 그녀에 비하면 한껏 보잘것없고 작아만지는 것들이었다.


한 번을 만나 데이트 비슷한 것을 했는데, 그녀는 내게 없는 나의 지성이나 눈동자를 가린 앞머리 같은 소년미를 좋아했던 것 같다. 휘게 문고라고, 이름도 처음 듣는 서점에서 그녀와 책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 옛날 성하던 빙수집에서 여름 인절미와 메론 빙수를 먹었다.


우린 우리의 환경에 불안해했고 저마다의 아픔이 있었다. 그렇게 흘러 나는 가끔 그녀를 나비처럼 떠올리며 이른 저녁 하늘에 새끼손가락의 손톱처럼 뜬 은색의 달을 보며 시 몇 편을 머리에서 읊조렸고, 그녀는 내 생일이면 한밤에 축하한단 문자를 보내왔다.


그녀와 이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를 아직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왔던 때도 있었다. 놓아줘야 한다는 형체도 없는 인정은 가슴을 몇 번이나 후볐고, 나는 천변을 거닐며 다시 얘기를 걸어오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난 가끔 가질 수 없는 것을 아예 놓아버리기도 했고, 그 속에서 미쳐 살기도 했다. 서랍들을 다 불태워버리고 싶단 문장을 쓰기도 하며.


소녀여, 잘 지내는가. 당신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도 서른셋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른이네. 네가 너의 불안들 바깥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때의 메론 빙수는 여전히 맛있었고, 난 여전히 너를 놓아주는 척 살겠지. 모두 내 것들이 아니면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켜봐.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건 뭔지 참 모르겠어. 분명하지 않기에 우린 쥐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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