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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영 Mar 29. 2024

72 내가 만난 100인

분명 나도 당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무엇이 다를까?


가을에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 전, 두 달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겨 캐나다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인 캐나다를, 그것도 서부 끝 밴쿠버에서부터 동부 끝인 프린세스 아일랜드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돌아볼 작정이었다.

빅토리아섬을 거쳐 밴쿠버에서 일주일 머문 뒤 캐네디언 로키를 지나 중부 캐나다 인 리자이나로 접어들었다. 대개 배낭족들은 중부캐나다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어 건너뛰기 마련인데 나는 넓은 밀밭 끝에 걸린 노을에 매료되어 하루, 이틀 더 머물며 체력을 비축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토론토까지는 버스로 약 16시간이 소요되며 모든 배낭족들이 그러하듯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야간버스를 선택했다.


"가자! 나이아가라로!!"

"아름다운 퀘벡으로!"

"멋진 토론토대학으로!"


하지만 버스는 비행기와 달라서 16시간을 쉬지 않고 가는 건 아니었다. 5시간쯤 가다 휴게소에 들러 다른 버스를 갈아타고 또 6시간쯤 달려 또 다른 휴게소에서 다른 버스를 갈아타는 일이 반복되었다.


두 번째 버스를 갈아탔을 때도 마찬가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 한국의 청국장 냄새 같은 게 났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아주 구수한 꿈이라 입맛까지 다셨지만 무의식 안에 뭔가가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는 캐나다야!. 여기서 청국장 냄새가 날 리가 없잖아?'


무심코 잠에서 깬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다. 돈이 많은 캐나다인들이 야간버스를 탈리가 없다. 주변에는 두 명의 노숙자들이 타고 있었다. 청국장 냄새의 원인은 그들이 펼친 침낭과 베개였다. 다음 버스로 갈아탈 때는 무조건 그들과 멀리 떨어져 앉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드디어 세 번째 버스를 탈 때였다. 재빠른 한국인의 근성으로 앞쪽 중간쯤에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두 명의 노숙자 증 한 명은 보기 좋게 따돌린 듯했지만 나머지 한 명이 하필이면 나의 대각선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버스 안은 거의 만석이었고 내가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문제는 또 버스기사가 검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표가 하나 모자다 라며 분명 한 명이 무임승차를 했다는 것이다. 그 무임승차자를 찾을 때까지 절대 출발시킬 의지가 없어 보였다.


새벽 4시. 졸음을 겨우 참고 무작정 계속 기다려야만 했다.


"오! 이상하다! 표가 한 장이 계속 비는군요. 표 검사를 다시 한번 더 하겠습니다."


두 번째 검수가 다시 시작되었다. 기사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표 한 장이 모자라요!"


그때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모두들 짧고 간단한 시선이 건너 건너갔지만  유독 한 명에게 길고 반복되는 시선이 이어졌다. 그건 바로 버스의 유일한 동양인이 나였다. 버스기사 바로 뒤에 앉은 남자가 나를 힐끗 보면서 기사에게 뭐라고 말했다. 기사의 한 문장에 그가 곧바로 수긍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사람에게 혼잣말인 것처럼 말했고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애써 입가에 힘을 잔뜩 주어 입꼬리를 위로 쭉 끌어당겼다. 그때였다.

내 대각선에 앉은 청국장 침낭의 그녀가 큰 소리 내게 물었다.


"당신 티켓 있어? 있으면 좀 보여줄래?"

무례시선, 무지한 말투 거기에 맞서 응수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들이  모두 나에게 몰려든 탓에 나도 모르게 대답과 동시에 바닥에 있던 가방을 들어 올렸다.

"아~! 네!"

나는 가방 구석에 손을 집어넣어 한 장의 카드를 꺼냈다.

"여기! 나는 45일짜리 투어카드를 가지고 있어!"

그녀가 고개를 비쭉 내밀어 내리깔고 있던 시선으로 내 카드를 자세히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어~! 미안!"


우리 자리에서 떨어져 있어 도무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래?"

"쟤가 들고 있는 카드는 뭐야?"

"표가 있다는 말이야?"


"쟤는 45일짜리 투어티켓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50만 원이 넘는 표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나는 퍽 오랫동안 그들을 미워했다. 온화한 미소뒤에 다름을 낮게 보는 그런 시선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 역시도 어쩌면 한국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를테면 버스 안에 우리보다 부유하지 못하고 피부색이 짙은 사람이 타고 있다면 그들과 다르게 행동했을까?


잠시 미안함을 가진 자

오랫동안 미움을 가진 자

우리는 모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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