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도 인생을 배운다.
"언니, 안녕하세요?"
수영장에 처음 온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살피터니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소곤 거린다.
"언니라니? 저 어르신 적어도 칠순은 넘어 보이는데... 언니라니?"
"쉿! 여기서는 다 이렇게 불러. 할머니라고 부르면 큰 일어난다. 명심해."
여기, 목욕탕 부항아주머니들을 넘어서는 기센 무리가 있다.
바로 수영장, 여자 탈의실이 그러하다.
크게 나쁜 사람 없지만 센 사람은 있는 곳,
운동을 하기 위해 왔지만 그 외 사회성이 더 중요한 곳,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수영레벨이 높을수록 서열이 높이 측정되는 곳,
연령불문 여자들만 있는 곳이다.
쭈욱 늘어선 샤워부스 앞에 서너 명의 언니들이 얼음 마사지를 하고 있다. 하나같이 아이스바처럼 생긴 기다란 막대기에 얼음이 꽂혀있다. 전날 컵 안에 물을 붓고 나무젓가락을 넣어 얼린 뒤 컵만 제거하고 가져온 듯하다. 그렇게 완성된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얼굴에 문지른다. 피부의 처짐을 막아주면서 탄력을 유지 지켜 준다는 게 그녀들의 지론이다. 이렇게 얼음바가 유행처럼 번진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다른 수영장에서 오신 70세 언니 한분이 오셨는데 나이답지 않은 탱탱한 피부를 유지한 비결이 바로 이 얼음바에 있다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얼음바 마사지는 샤워장 일렬부스를 다 차지하게 되었다.
70세가 되어도 여자는 여자이며, 예뻐지는 건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언니, 머리 하셨네요?"
"언니는 얼굴이 하얘서 뭘 해도 잘 받는다."
"언니는 파마도 잘 나오네."
그렇게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가운데 맨 안쪽에서 얌전히 샤워하시던 한 분이 하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나는 그 전의 머리가 더 나은 것 같다."
순식간의 싸해진 이 분위기를 수습할 용기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퍼져 있던 레고 블록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샤워에 집중했다. 속으로는 다들 차라리 안 했으면 훨씬 나을 뻔했을 말이었다며 그분을 원망하는 듯했다.
당사자는 샤워하는 내내 새초롬허니 그분 쪽으로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눈치는 기필코 챙겨야 하는 것이다.
공직생활을 은퇴하시고 운동을 시작하는 분들도 꽤 많다. 그들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데 사용한다. 또 뭐든 열심히 하는 게 몸에 배어있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재빠르지는 않지만 그들에게 있어 꾸준함이다. 그런 꾸준함이 또 다른 삶을 만들어간다. 어느덧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수영의 영법이 게으른 젊은이들을 앞서기 시작한다. 팀에 민폐가 될까 처음에는 맨 끝에 계시던 분들이 점점 앞으로 당겨진다. 지금은 상위그룹까지 올라와 수영장 입수도 다이빙으로 시작하신다.
삶의 진정한 배움은 꾸준함에서 온다.
운동은 하지 않고 삼삼오오 수영장 풀 안에서 수다를 떠는 분들이 있다. 좀처럼 그 수다는 멈출 줄 모르고 아예 레인 하나를 다 선렵해버린다. 어느 하나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그 레인에서 뛰어들어 과감하게 수영을 하는 사람이 없다. 처음 한, 두 명이서 자유형, 배영을 하며 그들 옆을 지나치다 부딪치곤 한다. 그때부터는 아예 그 무리를 피하기 위해 중간쯤에서 유턴을 해가면서 운동을 이어갔다. 지켜보던 내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 무리에게 다가갔다.
"언니들, 여기 좀 복잡해서 그러는데 다른 곳에서 담소를 나누시면 안 될까요?"
"?"
"언니들이 여기에 계시니까 다른 사람들이 운동하는데 방해가 되잖아요."
"지금 운동하는 사람이 없는데요? 그리고 오면 우리가 당연히 비켜주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언니들이 레인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도 못 오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부터 이 세계에서 욕먹을 각오를 하고 꺼낸 말이었다. 아닌 건 아니었기에 최대한 정중히 말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분은 상하게 한 건 사실이다.
말이 끝나자 한, 두 분들이 서로서로 눈치를 주며 물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위기는 일단락되고 나는 몇 바퀴를 더 돈 다음에 샤워실로 향했다. 아뿔싸 그 무리들이 아직도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우나를 거쳐 얼음팩해야 하고 계셨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다 나는 멀치감치 떨어진 빈 부스를 찾아갔다. 그때였다. 막 샤워를 하려는데 한 분이 오셔서 나보다 더 정중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괜히 운동하는데 우리가 방해를 돼서..."
진정한 어른의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
사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듣는 얘기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렇게 반박했다.
"제가 언니 나이가 되면 이렇게 열심히 안 살 거예요."
그녀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지금의 나의 나이 때 그녀들에겐 여유라는 게 없었다. 그저 자식 뒷바라지하고 먹고 사느라 바빴다. 잘 키운자식들은 하나, 둘 성공해 서울과 미국등에 살고 있다. 그저 열심히만 살아온 그녀들 앞에 놓인 건 자신의 품을 떠나 너무나도 잘 살고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멀리 있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떠안으며 요즘 같은 세상에 대놓고 자랑도 하지 못한다.
자식은 그녀들이 키워낸 위대한 작품이다. 그녀들의 희생적인 사랑과 눈물 그리고 인내 등으로 만들어 낸 자신의 전부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녀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프면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병원을 다니고 거기에 체력이 더해져 손주까지도 돌보며 여전히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매일 하는 운동도 절대 허투루 하지 않는다.
삶에 있어 끝까지 허투루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