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그리고 내가 아는 'chị ơi', 'em ơi'이야기
10월 20일, 베트남에서 1년 중 가장 큰 세일을 하는 날이 끝났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3,4일 전부터 세일을 시작해, 10월 20일에 세일을 마쳤다) 난데없는 '폐유 투기 사건'으로 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걱정 투성이지만, 며칠 전부턴 지하 쇼핑몰의 상점들엔 '통 큰' 세일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설레게 했다.
몇몇 가게가 아니었다. 아마 하노이 (다른 지역은 모르겠다) 대부분의 상점들이 세일 포스터를 내걸었다. 할인율도, 적은 곳이 15% 정도이고 많은 곳은 50%, 그 이상을 하는 곳도 많았다. 온 나라가 축하하는 날, 10월 20일은 바로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베트남엔 1년에 여성의 날이 두 번 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과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이다.
이날,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꽃을 주는 이벤트를 하는 옷가게나 식당들도 많다) 거의 모든 상점들은 대대적으로 큰 세일을 벌인다. 물론 '상술'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많은 나라인만큼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엄마, 아내, 딸을 응원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안 그렇겠냐. 베트남에서 여자들이 하는 일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가정에서는 아이를 돌보고, 결혼 후에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여자가 없을 정도다. (나의 첫 베트남어 선생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님이 평일엔 하노이에 와서 손주를 돌봐주시고, 주말엔 농사를 지으러 다시 시골에 가시는 일을 반복하며 육아를 도와주신다 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여성 참여비율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경제활동 또한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일반 회사는 물론이고, 식당, 마사지 샵(발마사지나 미용 마사지) 네일 샵, 미용실 같은 서비스직엔 여자 직원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 중,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봐주는 '메이드'란 직업은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다.
서비스직이건, 사무직이건, 힘쓰는 일이건... 여자들의 비율이 높은데 반해 남자들 중엔 일을 하지 않은 남자도 많은 것 같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한창 일할 시간임에도, 삼삼오오 길거리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이들이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열의 아홉은 남자다. 이렇다 보니 여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여성에 대한 존중도 높은 편이다.
베트남에서는 영웅들의 이름을 거리 이름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여성 영웅들은 13곳의 거리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 인용)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라 한다.
우선, 베트남의 자연환경이 여성의 역할에 적합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 사계절 내내 자연채취가 가능하고 초목 문화로 수렵보다 채집이나 채취가 발달되어 여성들의 신체구조와 생산노동의 활동에 적합하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소규모 농업이기 때문에 생산도구가 가벼워 부녀자들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들까지 농업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베트남 사회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촌락의 토지가 개인의 소유가 아닌 촌락의 공동소유에 있는데 이 촌락 공동체가 여성에게 토지를 할당해 왔으며, 베트남 법률은 여성이 재산과 토지를 상속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합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등 촌락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배 경하에서 베트남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지역 공동체 안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 인용)
여기에 자신들의 나라가 숱한 전쟁을 거치는 동안 여자들은 전장에 나가 있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에서 아이들과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고, 후방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원사격을 했고, 많은 여성들이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전쟁의 지휘관이나 병사로 참여하며 적과 싸우기도 했단다. 자연히 베트남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이 아닌 남성과 함께 비교적 민주적이고 평등한 위상을 갖게 되었으며, 가정에서도 단지 내조자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사회의 대외적인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만 중요한 일은 한 건 아닐것이다. 그들의 역사는 모두 함께 이뤄낸 승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비록 지금 이렇게 많은 남성들이 '마냥 쉬는 것 같아' 보이는데도 이유가 있단다. 내가 아는 한 베트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전쟁이 많은 나라였던 만큼, 그들의 마음속엔 언제 또 전쟁이 터져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남자들은 지금 당장 일을 하는 것보단 '나라를 위해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은 과거일뿐. 뼈아픈 역사를 직접 몸으로 겪은 나이 많은 여성들은 남편 대신 가정과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며 지금까지 참고 살아 왔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르다. '전쟁에 대비해 대기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이젠 '씨알도 안 먹히는 핑계' 일 뿐이라는 것. 나의 첫 베트남 선생님도 이런 말을 했다.
"젊은 여자들은 안 참아요. 옛날 남자들처럼 돈도 안 벌고 애기도 안 봐주면 바로 이혼이에요~!"
생활력 강하고 자기주장 강한 베트남 여성들. 내가 아는 한 언니 (찌 어이, 'chị ơi')와 동생(엠 어이, 'em ơi')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한다.
- '찌어이'(chị ơi', 내 기준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로, 나에게 베트남 요리를 가르쳐 준 사람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 둘을 키우고 있는데, 둘 다 공부를 잘한다. (딸들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 현재 큰 딸은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데, 집에 돈이 많아 자신은 일을 안 해도 되지만, 큰 딸에게 용돈이라도 부쳐주고 싶어, 요리도 하고, '메이드 일'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던 중, 화가 나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자기가 청소하러 가는 곳 중에 '마담' (여기에선 여자 집주인을 마담이라고 부른다)은 한국에 없고 베트남에선 남편 혼자 사는 집이 있는데 그곳에 청소를 하러 갔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할 뻔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놀란 그녀가 "나 남편 돈 많아, 나 사장님 집 일 안 할 거야!" 라며 도망쳐 나왔다며, 흥분하는 목소리로 한참을 얘기하는데 (물론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나쁜 사람들이 있지만) 그 사람이 한국 남자였기에 같은 한국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메이드 일을 하고 있다. 꽤 큰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일이 그녀가 메이드 일을 그만두게 하는 이유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 또 다른 여자, '엠어이'는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던 학생이다. 그 친구는 25살 정도 되었는데 4,5살 정도 아이가 있었다. (베트남은 아직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는 일이 흔한 일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그 학원에선 가끔 베트남 학생들과 함께 한국음식도 가르쳐 주고 같이 먹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녀 주변에 있던 베트남 친구들이 그 학생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을 했다.
친구 -> "선생님, 좋은 사람 있으면 이 친구한테 소개 좀 시켜주세요~"
나 -> "어? 0 씨, 결혼하지 않았어요? "
당사자 -> "결혼했는데 지금 남편이랑 같이 안 살아요. 곧 이혼할 거예요. 한국 남자도 괜찮아요"
나 -> "그럼 결혼하면 한국 가서 살 수도 있어요?"
당사자 -> "네. 애기는 엄마가 봐주신다고 했어요"
'어떻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베트남 여자들 모성애가 강하다고 했는데 저 친구가 이상한 걸까?'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더 놀랐다. 하지만 얼마 전 베트남에 관련한 한 책을 읽다가 이런 나의 생각 또한 문화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엄마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것을 보고 자란 그녀들은 일찌감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립되었고, 그런 맥락에서 그들의 생각하는 '모성애'라는것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있지만, 돈을 많이 벌어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사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부모의 교육열은 상당하다. 그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영어를 포함한 사교육을 시키고, 호안끼엠 같은 관광지에서 영어권에서 온 외국인들만 보이면 부모들이나 학원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등을 떠밀며 외국인과 말을 걸어보도록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모성애'란 것은 문화에 따라, 혹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니까.
여기 와서 살면서 예전에 했던 한 프로그램 많이 생각난다. 한 15년 전 이었을까. 우리나라에 다문화라는 말이 막 생겨나고 있을 때, 나는 방송가에 처음으로 생긴 다문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었다.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배우고 이해하고 인정하며 소통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내가 굉장히 즐겁게 작업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처음으로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눴는데, 결혼을 해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결혼이주 여성들 중에서 큰 고충을 겪고 있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이었다.
그들과 가족이 된 남편과 그들의 부모들은 베트남 여성들을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이라 크게 괴리감이 없으며, '순종적이고 집에서 조용히 아이를 키우며 시부모를 보필하며 살 것'( 그들의 기준에서)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결혼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덕에 무슨 일이라도 해서 (그녀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건 큰 상관이 없었다) 작든 크든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 했고, 자신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냈다. 지금이야 여러 프로그램에서 이런 얘기들을 다뤄, 이런 것들이 문화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라는 것이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국제결혼을 한 가족들 중엔 의견충돌이 발생하면, '우리 며느리가 문제야!', '우리 아내 이상해!' 라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꽤 심각한 갈등을 겪는 가족들이 많았다.
알면 알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베트남 여성들은 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베트남에서 만난 여성들의 생활력은 더 강하다. 무슨 일이든 못할 것도 없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녀들에겐 자신들이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싸우는 용기도 있다. 그런 그녀들은 보면서 나는 자극도 많이 받고, 그들의 문화를 더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오늘도 이곳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오며가며 만나는 많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여성의 날'을 맞아 나도 마음으로나마 응원의 꽃 한송이를 건네본다.
"베트남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여성들도 응원합니다!!"
+ 여성의 날을 맞아, 좋은 마음으로 쓴 건데... 혹시나 누군가는 불편해 하실 만한 내용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100% 팩트도 아니며, 제 주변의 베트남 여성들에게 들은 내용과 제 경험을 바탕을 쓴 글임을 밝히는 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