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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s Dec 16. 2022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상실의 아픔은

보스턴에서 잡역을 하며 살아오던 리 챈들러에게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 한 통이 오면서 영화는 시작 된다.

평소 심장 질환을 앓아 몇 번이고 쓰러졌던 형의 죽음이라 그는 어느 정도 준비는 한 상태였지만 병원에 가 그상황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더 예민해진다. 

그리고 남겨진 형의 아들 패트릭을 돌봐야 하는 리 챈들러.

그가 그렇게 맨체스터로 돌아왔다.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 주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 맨체스터.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과 보는 중반까지도 당연히 맨체스터가 영국에 있는 맨체스터인 줄 알았다. 철저한 배우들의 미국식 발음과 보스턴까지 2시간 걸린다는 게 여러모로 납득이 되지 않아 나중에 찾아보니 미국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였다.



영화는 중간중간 틈틈이 맨체스터 곳곳의 풍경을 비춰준다. 특히 리 챈들러의 시선에 따라 장소를 비춰준다. 그러면서 영화는 갑작스럽게 지난날 그곳에서의 리 챈들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섬광


이 영화의 연출 방식 중 독특한 것은 과거 회상 장면이 갑작스레 들어온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어린 시절 조카 패트릭과 형과 배에서 재밌게 노닥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스턴에서 생활하는 현재의 리 챈들러에게 돌아가 현재의 이야기를 또 한동안 풀어주다 문득문득 어떠한 장소, 혹은 사람을 보면 과거의 회상이 이어진다. 마치 섬광처럼.

실제 영화에서도 자주 쓰는 기법인 플래시 백이라지만, 더 갑작스레 사용한다.

이는 감독이 기억에 대한 정의를 그렇게 내린 것 같다.

매일 같이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닌, 여러 번 복사해 두었다 꺼내보고 싶을 때 꺼내보는 것들이 아닌 잊은 줄 알고 지내다 그 장소, 사람 등 연계된 무언가를 보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다 여물고 닫힌 줄 알았던 틈 사이로 기억들이 삐져나오듯. 그렇게 영화는 내내 리 챈들러의 틈 사이로 번쩍 거리며 지난날의 기억들을 보여준다.



리 챈들러


보스턴에서 내내 무표정에, 여자가 작업을 걸어도 관심도 없다 술에 취하니 괜히 시비를 걸고 사람을 때리던 무언가 굉장히 일반적이지 않은 리 챈들러. 그런 그가 맨체스터로 왔다.

그는 맨체스터에 오면서부터 떠날 생각을 한다.

형의 장례식과 남겨진 패트릭을 데리고 다니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이름을 듣고 ‘저 사람이 리 챈들러 야?’ ‘그 리 챈들러? 워우’ 등의 표현을 한다. 그러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다 쫓아간 그의 기억 속에는 행복했던 그의 맨체스터 생활과 이어 커다란 사고를 비춰준다.



자신의 실수로 두 딸을 불태워 죽인 그 아픔을 감히 누가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장면 역시 형의 유언을 듣기 위해 찾아간 변호사의 창가에 비친 자신의 옛 집이 있던 터를 보고 그는 이 기억들을 떠올린다. 기억하기 싫은 것들이 틈 사이로 빠져나와 섬광처럼 내 머리 전체를 뒤덮어 버리는 체험에 그는 괴로워한다.

중반쯤 나온 이 장면 이후,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모든 생각과 상상에 ‘감히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이 이어 붙여졌다. 그러면서 맨체스터를 떠나고 싶어 하는 그의 모든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한 편으론 떠나길 바랐다.



기억


떨어진 후 마주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이별 이후 자주 갔던 카페를 가지 않는다느니 자주 듣던 노래를 듣지 않는다느니.

장소와 물건, 노래, 영화 등의 특정 소재들. 이것들은 마주하는 즉시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불러온다.

잊고 지낸 줄 알았다. 딱히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접하는 순간. 번뜩이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루를 못살게 군다.

특히 더 좋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이상하게 상황이 바뀐 뒤, 그렇게 더 못살게 군다. 장면의 끄트머리에 가시들을 발라놓듯, 콕콕 쑤시며 가끔은 깊게 파고든다.

리 챈들러는 계속해서 맨체스터를 떠나기 싫어하는 패트릭을 두고 보스턴으로 가거나 그가 이곳에 다른 이웃에게 입양을 보내는 것 등을 제시한다. 패트릭은 왜 자꾸 자기를 포기하냐고 그에게 서운함을 표하지만 리 챈들러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한다.

그는 이 마주 하기 힘든 장소에서의 자신을 그리고 홀로 남겨진 패트릭 모두가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에게 있어 맨체스터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 곳이고 그것들은 모두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파고드는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형용할 수 없는 무게감과 도처에 깔린 가시 같은 순간들이 그를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만들고 함부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볼 수도 없다. 리 챈들러는 그저 견디고 있다.



방식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크고 작은 실연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남겨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 삶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서로의 아픔의 크기만큼, 개인의 성향만큼 그 외 여러 이유들로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애도하며 이겨내고 살아간다.



극 중, 변호사가 그에게 ‘당신이 겪은 고통은 아무도 이해 못 한다.’라는 대목이 이 영화의 인물들의 전반적인 기조이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서로의 아픔을 재단하거나 하찮게 여기거나 함부로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들 해주었다.

실연을 겪은 대상자들도 때론 무너지기도, 때론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이들은 끝내 살아가려 한다. 살아가기 위한 자신들의 방식을 찾으려 한다.

다른 어느 영화들처럼 능동적이거나 극적으로의 변화를 꾀하기보다, 영화 내에서도 이야기가 극적으로 극복이 되거나 변화되진 않지만, 모두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살아가야 하기에. 남겨진 이들은 남겨진 저들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계속해서 견디고 방식을 찾으며 살아간다.



랜디


가장 인상 깊던 장면을 두 장면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리 챈들러가 길에서 그의 전 부인 랜디를 만났던 장면이다.

리 챈들러가 겪은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같이 경험한 랜디다. 그런 그녀는 그 일 이후,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지내고 있었다. 우연히 길에서 리 챈들러를 만난 랜디는 그를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 마치 짜고 하는 영화 속의 한 씬처럼 이 아닌 그들의 대화는 계속해서 엇갈린다. 서로 말이 물리기도 하고 침묵이 이어지기도 하고, 랜디 역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는 연기파 배우답게 그 상황을 미칠 듯 한 감정들로 풀어간다.

리 챈들러에게 사과를 한다. 자신이 쏟아 뱉었던 모든 말들을 사과하고 당신은 죽으면 안 된다고 말을

한다.

그녀 또한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

그녀는 과거의 사건에서도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간다. 잠시 그녀의 시간들을 상상한다.

처음에는 리를 비난하고 그에게 갖은 욕을 퍼붓는 것으로 하루하루 버텼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가시 돋친 순간들 때문에 리 와의 이혼을 결심했을 것이고 미칠 듯하고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 하루하루 견디다 다른 사람을 만나 위로를 받고 새 시작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너무 힘들어하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자 많은 것들이 조금

은 멀리서 보였을 것이다. 그제야, 리가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마음속에 리에 대한 커다란 죄책감과 같이 견뎌내지 않기로 한 결정들을 후회했을 수도 있다.

둘이 만난 장면에서 랜디는 평소 준비하고 상상해 왔듯 이야기를 꺼내간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라는 리의 대답에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랜디다.


랜디는 리의 상실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의 모든 대답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내면이 붕괴돼 썩어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괜찮은 척하는 리의 마음을 처음 그녀가 재단해준다.

울먹이며 말을 쏟아내는 랜디와 그저 도망가는 리. 이 장면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게 깔리며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던 괴로움들이 폭발했다.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러 간다.



 I can't beat it.

 

또 한 장면은 리 챈들러가 패트릭과 마지막 결정을 한 사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조 아저씨에게 입양을 보내고 21살이 되면 그에게 모든 재산과 결정권을 넘겨주겠다 한다. 이에 패트릭이 왜 자꾸 자신을 버리냐 하자 리 챈들러는 꾹 눌러왔던 한 마디를 던진다.


‘I can't beat it.'


못 견디겠다 는 말을 처음 관객과 패트릭에게 내뱉는다. 특히 이 부분에서의 케이시 에플렉의 연기는 너무 인상적이다. 힘을 쭉 빼고, 눌러왔던 자신의 마음을 처음 내뱉는다. 조용한 둘의 대화 속에 작은 이 한 마디에 잠시의 정적이 흐른다. 마음이 아리다.

못 견디겠다는 그의 말에 패트릭도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리는 패트릭을 그저 꼭 안아준다.



위로


아픔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사건 혹은 사람을 만나고, 극적으로 극복해 행복을 찾는 수많은 기성 작품들의 이야기 방식과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놓치지 않는다. 한 명의 악한 사람들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서로를 위해주고 위로를 건넨다.

유언을 들으러 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패트릭에게 음료를 권하는 비서부터 영화 곳곳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모든 이들의 방식이 사랑스럽다.




각자의 슬픔을 어떻게 우리가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져 줄 수 있을까?

각자의 슬픔은 각자만의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 혹은 덜어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옆에 있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저 안아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그것이면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그렇게 우리, 같이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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