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산업에서는 이미 해당 기술을 활발히 개발 중에 있다.
본 콘텐츠는 노더의 류짬과 개방형 물류 네트워크인 디카르고가 공동 집필한 글입니다.
미국의 정보 기술 연구 및 자문 기업인 가트너(Gartner, Inc.)는 유망 기술의 성숙도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그래프인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을 개발한 바 있다. 하이프 사이클은 다음과 같이 크게 5단계로 구분된다.
기술 촉발: 잠재적 기술이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 초기 단계의 개념적 모델과 미디어의 관심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상용화된 제품은 없고 상업적 가치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 초기의 대중성이 일부의 성공적 사례와 다수의 실패 사례를 양산해 낸다.
환멸 단계: 실험 및 구현이 결과물을 내놓는 데 실패함에 따라 관심이 시들해진다. 제품화를 시도한 주체들은 포기하거나 실패한다. 살아남은 사업 주체들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만한 제품의 향상에 성공한 경우에만 투자가 지속된다.
계몽 단계: 기술의 수익 모델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들이 늘어나고 더 잘 이해되기 시작한다. 2-3세대 제품들이 출시된다. 더 많은 기업이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생산성 안정 단계: 기술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사업자의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명확해진다.
필자는 현재 블록체인 산업이 계몽 단계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 중인 환멸 단계에 있다고 판단한다. 업계 내 종사자의 다수 역시 이제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고, 이 기술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이로 인해 암호화폐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와는 무관하게 예전만큼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개인이라는 엔드 유저가 아닌 기업이라는 단체의 편의와 이익을 위한 블록체인 도입일 것이다.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과 가장 잘 맞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물류 산업에서는 이미 해당 기술을 활발히 개발 중에 있다. 물론 매스 어댑션 전까지 다양한 허들이 존재한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 기존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블록체인 외부에서 발생 가능한 오라클 문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해결 불가능한 사회적 문제가 아닌,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들이다.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즉 물류 공급망은 상품의 제작부터 배포까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상품이 최종 목적지로 전달되기까지는 수 많은 단계, 인력, 결제, 운송 수단 및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물류의 가장 큰 목적을 말하자면 상품을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안전하게 옮기는 것이다. 간단 명료한 이 목적 외 다른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망 관리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정보, 물질, 그리고 돈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상품이 최초 생산지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전달된다. 기업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혁신하고자 하는 요소 역시 결국 이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이 세 가지만 기억한다면 수많은 물류 및 IT 기업들이 물류 관련 블록체인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공급망의 의약품 가운데 위조품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10%가 위조 의약품이라는 추정치가 존재한다. 미국 식품의약국(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2019년에 IBM, 월마트, Merck, 그리고 KPMG와 함께 미국 의약품 공급망 보안법(Drug Supply Chain Security Act, DSCSA) 상호운용 프로그램을 통해 의약품 유통 정보를 공유 및 추적할 수 있는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선 바 있다. FDA는 블록체인상의 정보 공유를 통해 처방 약의 추적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 16주에서 단 2초로 단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생산 이후 유통의 전 과정이 여러 사업자를 거치며 제품 이력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통해 이력 관련 정보를 네트워크에 기록 및 공유함으로써 해당 정보에 대한 위변조 이슈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패킹 리스트, 인보이스, 그리고 선적 서류 등 물류에 필요한 다양한 통관 및 운송 정보들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기록함으로써 서류 작업으로 인한 지연을 감소시킬 수 있다.
택배 혹은 상품을 기다리는 이에게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은 해당 물품의 분실 혹은 파손과 같은 사고일 것이다. IBM이 주도하는 식품 이력 추적 시스템인 푸드 트러스트(Food Trust)는 식자재 재배부터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디지털 기록으로 투명하게 남긴다. 이를 통해 다양한 물류 사업자들이 배송 단계별로 참여한 내역을 확인하여 혹시 모를 파손 등의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실제로 소비자의 84%가 해당 식품의 원산지와 재배 방식 및 유통 과정이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조사 결과가 존재한다. 식품과 같이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품의 경우, 물류 과정 자체를 투명화하는 것은 곧 상품의 투명성 극대화로 이어져, 브랜드 충성도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기존에는 운송이 이뤄지는 모든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분실 및 파손 등이 발생할 경우 책임 또는 귀책의 주체가 불분명했다. 해외배송과 같이 운송 과정이 복잡한 경우, 기존에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사용하던 물류 사업자들이 하나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운송에 대한 투명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할 수 있다.
현재 물류 산업 구조상 서류에 대한 검증 및 인증 과정에 소모되는 비용은 매우 높다. 전 세계적으로 1년간 무역으로 거래되는 상품은 16조 5천억 개이며, 이 중 80%는 컨테이너를 활용한 해운 물류가 담당한다. 그리고 1개의 컨테이너가 운송되는데 평균적으로 최소 22개의 달하는 종이 서류가 필요하다. 물론 각 서류마다 요구되는 검증과 인증 과정은 서로 다르다.
세계 최대 해운 업체인 머스크(Maersk)와 IBM은 합작법인을 설립하여 트레이드렌즈(TradeLens)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국제 무역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트레이드렌즈는 글로벌 물류 공급망을 디지털화하여 모든 관계자가 실시간으로 선적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페이퍼리스 트레이드 시스템(Paperless Trade System) 구축하여 통관 및 화물 이동에 걸리는 시간/비용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물류 산업에서의 정산은 물류 사업자들이 직접 영수증 혹은 인보이스를 수동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관점에서 큰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스마트 컨트랙트 기술을 사용할 경우 자동으로 서비스 제공자 및 수령자 간에 비용이 정산되도록 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실제 법적 효력을 갖는 문서와 달리 문제가 발생했을 시 스마트 컨트랙트의 효력에 대해 논쟁의 소지가 있으나, 이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규제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또한, 기존 산업의 물류 사업자들은 모든 구간에서 경제 규모를 확보하려다 보니 밸류체인 전체적인 관점에서 배송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으로 인해 중복 투자를 할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자의 자원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최적화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배송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이다.
기존 산업에 위 세 가지 요소와 관련한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참여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신뢰가 부족한 지점에 신뢰를 기술적으로 불어넣기 위한 도구가 블록체인인 것이다. 물류 관련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프라이빗과 퍼블릭,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눠진다. 현재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는 대기업 위주의 물류 프로젝트인 경우 대부분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통해 구축되고 있다.
우선 블록체인이 갖는 공통적인 장점으로는 기존 밸류체인 상에서 존재했던 플레이어들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발생했던 신뢰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폐쇄적인 네트워크에 기반하기 때문에 확장성에 제약이 존재한다. 네트워크에 초기 합류한 기업이 진입장벽을 구축하여 후발 기업의 참여 유인 역시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비용적인 관점으로 볼 시, 플레이어 간의 정보가 단편적/제한적 공유에 머물기 때문에 전체 물류 비용 가운데 실질적인 배송 인프라 사용료에 해당하는 직접 비용이 아닌, 부수적인 관리 비용 등의 절감만 가능하다.
이러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한계점을 인식한 여러 팀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한 물류 산업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특히 국내 프로젝트 가운데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개방형 물류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디카르고(dKargo)는 퍼블릭 블록체인만이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물류 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규모의 경제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디카르고 플랫폼을 사용하는 배송사업자들은 자신들의 물류 인프라 효율성 정보를 부분적으로 공유함으로써 기존에 단독으로 물류 서비스를 제공했을 경우 발생했던 배송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퍼블릭 블록체인의 경우 개방형 네트워크에 기반하기 때문에 신규 후발주자들의 플랫폼 유입이 용이하다. 통관 서류, 생산 유통 이력 등의 평면적인 정보 공유를 넘어, 플레이어 별로 직접 보유한 배송 자원의 효율/활용도 관련 정보 등 보다 입체적인 데이터 공유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물류 간접 비용뿐만 아니라 직접 비용의 감소 효과 역시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퍼블릭 블록체인이라는 다소 리스크 있는 선택보다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구축하여 다양한 시도를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경과하면 플랫폼의 확장성 측면에서 태생적 한계를 노출할 소지가 다분하다. 처음부터 모든 잠재적 플레이어의 플랫폼 진출을 허용하고 각 플레이어의 자원 활용도가 공유되는 환경을 제공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이 점점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류 산업은 온라인 도박 산업과 함께 블록체인 도입에 따른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분야이다. 운송과 물류 산업은 이를 빠르게 인식하고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하이프 사이클의 계몽 단계로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본 콘텐츠는 블록체인 인사이트 미디어 '노더'에 기고된 글입니다.
https://noder.foundation/dkar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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