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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1. 2023

내가 묻힐 곳은, 영원한 이방인의 나라 ‘미국’이다

짐을 싸야 하는 미국으로의 출국 이틀 전쯤 나는 항상 마음이 내려앉는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눈물이 금방 주르르 흐를 거 같기도 하는 약간 우울증세를 동반하며 한없이 한자리에 앉아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떨군다.     


한국에 가는 설렘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일단 한국에 간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턱 하니 놓인다. 꼭 챙겨야 하는 것도 없고 꼭 생각하고 머릿속을 채울 일도 없고 한마디로 시집에 있다가 명절에 친정집에 가는 기분이랄까? 시댁에선 잘해도 뭐 그리 칭찬받을 일도 없고 못 하면 모든 게 내 탓이 될까 긴장하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다가 친정에 가는 마음이 설렘은 없지만 가기만 하면 적어도 방에 편히 대자로 누울 수 있다는 그런 편안함과 마음 놓임 딱 그 기분일 듯싶다. 굳이 챙겨갈 거는 없지만 그래도 서운해서 뭐라도 가지고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그런 한국에서 꼭 4주를 지내다 내일모레면 출국을 해야 한다. 벌써부터 마음 한구석이 시리고 서럽다. 사랑하는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웃 그리고 친구가 없다면 나는 절대 미국을 가지 않으리라. 미국은 그야말로 시댁을 가는 기분이다. 시댁 식구와 절대 섞일 수 없는 며느리처럼 영원한 이방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일상적인 운전을 하고 마트에 가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붙이는 행위도 일단은 부담감을 느낀다. 거기다 보험회사나 카운티에서 무슨 서류를 필요로 할 때 등 공공기관의 일을 봐야 할 때는 더욱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행위들이 완벽한 영어를 요해서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아니다. 일상적인 대화는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미숙한 콩글리쉬여도 살아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특히 이제는 한인사회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하루에 영어 한마디 쓰지 않고 한국말만 하고 사는 날들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시집에 머무르는 것처럼 답답하고 턱 하니 마음을 놓고 살 수 없는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한국 티브이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인기가 있고 정말 한국 사람이 된 듯 한국의 문화와 역사 심지어 농담이나 속담까지도 구사하는 걸 보면 신기해하며 보게 된다. 그들은 정말 완벽한 한국인이 된 거처럼 웃으며 얘기하지만, 과연 그들은 진정으로 자기네 나라처럼 자유로울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언어가 주는 동질감이나 같은 언어를 쓴다는 신기함을 넘어 이웃 같은 정겨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들도 나처럼 영원한 이방인의 느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언니와 밥을 먹으며 뜬금없이 사후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죽으면 어디에 묻힐 거냐는 물음에 나는 아이들이 있는 미국에 있어야지, 왜 언니 옆에 묻히라고? 대답하면서 크게 소리 내어 우리 둘은 웃었다. 웃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후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나이 오십인데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오래 뒤의 일일지 아무도 모를 일인데 내가 죽으면 난 한국에 있지도 못하는구나.      


아이들은 미국에서 자랐으니 한국에 올 일이 없고 나는 부모이니 아이들 옆에서 잠을 자야 아이들이 힘들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울고 싶거나 혹은 내가 보고 싶을 때나 흑...., 나를 만나러 기억하러 올 수 있겠구나 싶으니 속절없이 한없이 내 나라 한국이 더욱 간절해지고 미국까지 날아가 살게 된 나의 자책이 심하게 요동쳤음을 고백한다.     


미국에서는 검은 머리로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 되어 떠다니고, 한국에 가면 세월이 지날수록 한국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서 떠다니고, 이래저래 양국에서 국제 미아처럼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 말고 세계로 나와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나아가길 희망하면서도 그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방인의 외로운 고뇌를 극복해야 하는 숙제를 알려주지는 못했구나! 그 또한 자책한다.      


그래도 나는 이민 1세대의 모습으로 느끼는 이방인이 미국에서는 심해도 한국에서는 덜하지만, 우리 이민 2세대들의 세대 간, 나라 간 이방인의 고뇌는 더욱 심하다. 왜냐하면, 그네들은 얼굴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마음은 미국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어서 미국인이 보는  입장에서도 영원한 이방인이고 한국에서도 영어로 생활화하는 우리 아이들을 영원한 이방인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점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준 가장 큰 상처이자, 이 땅에서 힘든 경쟁을 피하고 자유로운 경험을 만들어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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