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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19. 2024

시니어의 품격, 패션에서 시작된다

미국에서 패션 강의는 처음이라,

사람은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일도 참으로 드라마틱한 일이었고 신문사 칼럼을 쓰게 된 일도 운수 좋은 일이었고 책을 내고 그리고 신문사에 등단한 일도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꿈같은 일이었는데...

패션에 관한 초청 강사로 마이크를 잡게 될 줄이야, 자다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높은 사건이 일어났다. 적어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는 말이다.


신문사 국장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건 올해 봄이다. 이미 내 이름 석자로 고정 칼럼을 쓰고는 있지만, 패션샾을 운영하는 관계로 신문사에서 재미있는 기획을 제안해 주셨다. 격주로 '중년을 위한 패션센스'라는 제목으로 전면에 실릴만한 분량을 준비해 달라는 지령을 내리셨던 것이다. 처음엔 정말 재미로 그리고 나중에는 격주로 나가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글과 사진을 올렸다. 이제는 페이퍼로 찍어내는 신문 자체를 젊은 사람들은 보지 않고 그저 중년이나 시니어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 중년의 패션에 관한 기사는 중년 이후의 삶에 어떤 큰 변화를 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 건 패션 칼럼이 몇 번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을 때 시작되었다. 한인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 교회에서 교장님이라는 타이틀로 나를 한번 만나기를 요청하셨다.


운영하고 있는 샾까지 걸음을 하신 분은 당신도 시니어시지만 은퇴 후 품격 있는 시니어를 위한 패션 강의를 제안하셨다. 처음엔 시니어학교 클래스에서 한 학기 강의를 말하셨지만 자신이 없었다. 글쓰기라든지 글에 관한 강의라면 어느 정도 써 본 가락으로 시니어를 위한 강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패션으로 강의를 한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라 어떠한 커리큘럼으로 강의를 이끌어 가야 할지 그저 막막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으니 당장의 승낙은 피할 수 있었지만, 두 달 후 6월 둘째 주 주일날임을 못을 박고 떠나셨는데 나를 꽉 옥죄이는 숫자임을 그날은 알지 못했다. 나의 건성건성인 태도와 닥치면 누구나 한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한국일정 한 달 내내는 한 번도 강의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신나게 한 달을 마치고 돌아오고부터 고민은 시작되었다. 1차 2차 사전미팅을 접하고 정확히 말하면 1차 때만 해도 그저 어르신들과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되려니 하는 나만의 대충이즘이 발동했었던 때였다. 그러한 내 마음을 그분은 알아차리셨는지 2차 미팅을 실전장소로 잡으셨다.


어머나!


이렇게 큰 교회를 난생처음 가보았고 그렇게 큰 강의실을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가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국에 도착하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교회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다면 아마도 거짓부렁이라고 일축하시는 많은 한인이 있을 수 있으나 미국교회에서 무료로 영어수업을 하는 곳을 가본 적을 빼고 한 번도 한국 교회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큰 교회가 있다니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니 상상해보지 못했다. 솔직히 한국 교회가 이민 사회에 가져다 준 영향이 실로 짐작하고도 남을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일단 무대가 있고 양쪽으로 커다란 스크린이 압도했고 웅장한 십자모양의 등 디자인이며 얼추 200명 정도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규모였다. 마이크를 잡아 보지도 못한 완전 초자가 과연 이런 커다란 강의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곳을 다녀오고부터 내 마음은 요동을 쳤다.



영상을 만드는 일이 급선무인듯했다. 강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해본 적도 없지만 당연히 만들어본 적도 없는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파워포인트? 난 컴퓨터 세대가 아니고 그저 가르쳐주는 것만 익숙하게 숙달하는 것이지 전반적인 컴에 대한 지식은 없다. 그래서 SOS를 친 건 역시 우리 막내아들이다.


"엄마가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파워포인트 만들 줄 아니?"

"파워포인트요? 그게 뭐지?"

"그런 것도 모른다고?"

(알지 못하는 막내를 되려 핀잔하려는 찰나)

"엄마 그런 건 모르겠고 우리는 구글 프리젠테이션으로 만들고 발표해요"

"그게 뭔데??"


구글로 들어가 프레젠테이션을 그냥 누른다. 헐 누르기만 했는데 양식이 있다.

내가 원하는 첫 번째 페이지를 누르고 다음 페이지를 누르고....

글자 크기도 그저 마우스 한 번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컴퓨터에 있는 사진을 옮겨놓으니 그것도 내 맘대로

아니,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어? 그 뒤로 한 1시간가량 7페이지 정도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맨 위쪽 상단에 있는 슬라이드를 툭 누르고 엔터키만 누르니 한 페이지씩 넘어가는 게 아닌가?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넌 언제부터 이런 걸 할 수 있었어?"

"초등학교 2학년? 아주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어요. 모든 학생들이 아마 눈을 감고도 할걸요?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에요...."


이럴 수가 없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면 적어도 10년 전에 알았다는건데.. 글을 쓰기 시작한 50세부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쉬운 프레젠테이션이 있는줄도 모르고 준비하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라는 걸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채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남편과 아이들은 처음하는 엄마 강의가 신경이 쓰였는지 각자의 의견을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편은 첫 코멘트로 당신의 이력을 말해야 한다는 둥 재미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둥 시니어들을 재미나게 이끌어 가야 한다는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불안감을 없애려 노력해 주었다. 아이들은 강의하는 동안 옷을 직접 시연해야 시니어분들은 좋아하실 거라며 힘을 보탰고 막내는 내 노트북과 강의실 스크린이 어떻게 연동이 될지 궁금해하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드디어 강의날이다.


패션 강의이니만큼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했다.연한 아이보리색 쟈켓에 연브라운계열 바지를 입고 편하게 운동화를 신었다. 강의실에 도착해 내 노트북과 메인 컴퓨터에 긴 케이블로 연결해 놓고 커다란 스크린으로 프리젠테이션 첫 페이지를 띄워놓고 마이크를 찾아 손에 꼭 쥐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한두 분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처음 잡아보는 마이크의 묵직한 감촉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는듯했다. 순간 초등학교 피아노 연주회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열심히 외웠던 악보가 갑자기 하얗게 지워지면 어쩌나 손가락이 갑자기 휘어져서 한음도 못 치면 어쩌나 모든 아이들이 고개 숙이고 숨죽이고 있다가 내 순서가 되어 무대에 오르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웬걸 막상 깜깜한 무대에 홀로 의자에 앉아 건반을 바라보니 갑자기 머리가 선명해졌다.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첫음을 누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을 정도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음이 번듯 생각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 김지나 많이 컸네. 이런 강의를 다 하고. 그래. 오늘 어르신들과 신나게 놀아보자. 그동안 고객들에게 말했던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시니어 어른들과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 거야. 해보지 뭐.'


교장선생님이 나를 호명하시며 나에 대한 이력을 말하기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박수를 보내주시면서 나는 무대에 올랐다. 누가 그랬다.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하려면 빠르게 인사하지 말고 2초 정도 시선을 집중시킨 뒤 인사를 하면 집중이 되면서 안정직인 보이스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마이크를 쥐고 잠시 어르신들을 응시하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무현 대표 김지나입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대로 인사를 하고 그 뒤로 1시간가량 나도 모르는 내가 되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 아랫글은 미주한국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벧엘교회 시니어 선교회에서 50여 명의 시니어들을 모시고 패션 스타일 리스트 김지나 강사의 특강이 있었다. 은퇴 후의 삶을 살며 시니어의 품격을 지키면서 건강한 외모를 가꾸기 위한 중심에는 패션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벧엘교회 백영주 집사님은 한국일보에 실린 김지나의 패션칼럼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번 특강은 건강한 외모가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큰 맥락에서 출발해 시니어의 첫인상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100세 시대를 넘어 100세 알파 시대를 사는 시니어의 입장에서 어떻게 패션을 이해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자신의 피부톤을 알아야 옷의 색상을 잘 고를 수 있고 메이크업이나 헤어 톤까지 맞출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햇볕에 탔을 때 빨갛게 되면 하얀 피부고, 검게 그을리면 노란 피부여서 하얀 피부는 흰색이나 블루 계열을 입으면 더욱 화사해 보일 수 있고, 노란 피부는 아이보리나 브라운 같은 부드러운 색상을 입으면 얼굴이 귀티 나 보인다. 그리고 가방이나 구두를 포함 3가지 색상을 넘지 않도록 입으면 일단 멋쟁이 시니어가 될 수 있다고 김지나 강사는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점은 모든 걸 갖춘다고 해도 자신감 있는 태도가 없다면 건강하고 품격 있는 시니어가 될 수 없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실전에 이용할 수 있게 강사가 준비한 옷으로 코디를 시연하는 시간에는 시니어들과 함께 3가지 색상이 가방이나 스카프를 어떻게 했을 때 가장 멋지게 연출되는지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패션 스타일 리스트 김지나 강사는 한국일보 ‘김지나의 살며 생각하며’의 칼럼 리스트로 활동 중이고 출간한 책 ‘킴스 패밀리 인 아메리카’를 어르신들에게 선물로 증정하는 것으로 특강을 마쳤다. 벧엘교회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패션에 관한 특강은 시니어에게 활력을 심어주고 품격 있는 노후의 삶에 방향을 제시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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