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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니? 살아 있어?

by 멜랜Jina

아빠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이들이다.


오죽하면 둘째가 한국에서 친구들과 한강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된 된 남편은 기어이 한강을 다 뒤져 아이를 찾아냈다.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놀고 있던 아이는 한국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한다. 딸이고 미국이 아닌 곳에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만을 굴뚝 같이 아는 고지식한 아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은 나와 남편이 연애했던 시절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를 피우던 1990년대로 거슬러 가면 젊은 남자는 자기의 여자가 행여 어찌어찌 될까 싶어 자기가 사는 공항에서 여자가 사는 잠실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데려다주면서 그것도 모자라 여자가 집에 들어가 방에 있는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어야만 안심하고 귀가를 했던 강인하고 지나친 보호 본능을 가진 싸나이었더랬다.


그랬던 사람이니 자기의 아이들에게는 오죽하랴.


첫째 아이가 대학교 때 온두라스로 의료봉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산길로 이동하는 도중 버스가 굴러 떨어진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는 직접 통화는 하지 못했고 긴급 뉴스로만 보게 되었다. 아이가 그 버스에 탔는지 타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는 우리는 그저 애만 타고 있었다. 남편은 마침 온두라스에 있는 한 회사와 거래를 하고 있었고 그 거래처를 통해 그곳에 있는 병원을 뒤져 아이를 찾아냈다.


천만 다행히 우리 아이는 그 버스를 타지 않았고 친구들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있다가 스피커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어 너무도 깜짝 놀랐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대단한 부모를 둔 자식이 되는 것처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했다. 남편의 모토는 자식이 어디에 있든지 부모가 반드시 옆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 몸소 몸으로 실천하는 아빠였다.


사건은 며칠 전에 일어났다.


이런 아빠의 성격을 잘 아는 둘째가 한국에 갔다. 한국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시차 적응 중이라 생각하던 차에 홍대 앞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도중에 아빠와 통화를 했더랬다. 곧 집에 가서 다시 연락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다 1시간쯤 아직도 연락이 없다며 다급하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평소대로 아무렇지 않게 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있거나 술을 먹었으면 그냥 잘 거라며, 제발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에 나는 별생각 없이 전화했다. 어느 날처럼 내 전화는 받아야 말이 되었다. 이상하게 남편은 되지 않던 전화도 엄마인 내가 하면 반드시 연결이 되곤 했던 경험이 많았던 터였다. 그러나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 신호는 가는데 배터리가 나간 것도 아니고 꺼놓은 것도 아니고 단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비상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폰으로 문자를 남기기 시작했고 다급하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1시간이 더 흘렀다. 택시 안에서 전화 통화를 했고 집으로 들어가 전화를 다시 하기로 한 아이가 2시간째 전화를 모두 받지 않는다? 아빠의 성격을 아는 아이라 꼭 마침표를 찍어야함을 알텐데 샤워를 했어도 백번은 하고 남을 시간이고 혹시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 해도 한국폰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집인데 왜 배터리가 없지?


그럼 택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


그렇다면 어떡하지? 미국도 아니고 한국인데 한국말도 서툴러 어리버리 해서 잘 모르는데 어디로 간 걸까? 설마 거짓말을 하고 딴 곳으로 간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굳이 거짓말을 하며 다른 곳을 갈 이유가 없는데? 한국에 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갈 곳이 많지도 않은데? 정말 머리가 빙~돌만큼 굴려보아도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골든 타임이라는 게 있어서 한두 시간 안에 찾아야 하는 건데 어떡하지?


근처에 사는 나의 언니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해도 보지 않았다. 조카에게 연락해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라 모두 자는 시간이다. 마지막에 만나고 헤어졌다는 친구의 연락처를 찾았지만, 그 친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더 확대했다. 아시는 분에게 막무가내로 문자를 했다. 누구라도 근처에 사는 사람 사돈에 팔촌이라도 아이가 묵고 있는 집으로 가봐야 한다. 제발….. 한 명이 연결되었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부탁했다. 당장 가보겠다고 말하며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데… 더구나 강남 한복판에 있는데 절대 그럴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마 술을 먹고 자고 있을 거라고… 그 나이 한국 여자라면 정말 걱정 없겠지만 미국에서 온 여자이니 부탁하니까 가보는 거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거의 웃음까진 아니지만, 미국에서 참 지나친 부모도 다 있네라는 마음이 미국까지 느껴졌다.


그러기를, 그렇게 생각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술을 먹고 쓰러졌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건 전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 괘씸하지만 다 용서할 수 있으니 집에만 있기를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도했다.


1층에서부터 막혔다. 집호수와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데 열리지 않았다. 전화로 아무리 서로가 설명해도 열리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새벽이라 드나드는 사람도 없는데 참으로 답답해하던 참에 누군가가 나타났고 그 길에 함께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다. 그래 그 행운으로 쭉 가는 거야..


전화기를 끄지 않은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10층을 누르는 소리, 나지막한 숨소리, 고속으로 올라가는 한국 엘리베이터가 그날따라 왜 그리 더디게 올라가는지 심장은 쿵쿵 뛰었다. 드디어 10층 엘베 문이 열리고 현관문 앞에 섰다. 똑똑 두드리며 아이 이름을 부르는데 소리가 없다. 또 똑똑 두드렸다. 소리가 없다. 현관문 비번을 누른다. 삑 하고 다시 누른다. 삑삑삑… 나는 다시 또박또박 숫자를 불러주었다. 틱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있어요?’ 내가 물었다.

‘신발은 있는데 불이 안 켜져 있네’

‘있어요?’ 또 묻는다

'잠깐 방으로 들어가 볼게'

‘있어요?’ 또또 묻는다

‘어? 왜 애가 없지?’

‘네? 없어요?????????? 으악~~~ 진짜 없다고요?’


난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아이가 방에 없단다. 진짜 아이가 없다고? 샤워하다 너무 졸려서 자고 있어야 할 아이가 없다고? 진짜 없다고? 택시에서 다 왔으니 집에 올라가서 전화한다는 아이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안 들어왔다고? 거기에 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전화가 두 대가 있는데?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 말도 되지 않고 절대 있어서도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 정말 일어나 버렸다.


그다음에 어떡해야 해요? 내 목소리는 이미 심하게 갈라져 쇳소리가 났고 소파에 쓰러진 채 말을 이어갔다. 그럼 경찰서로 가셔야 해요. 경찰서가 근처에 있나요? 어떡해야 하죠? 전 모르겠어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하셨던 거 같은데… 남편에게 다시 전화했고 정말 딸이 없다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울었고 남편은 하이웨이에서 운전 중인 것도 서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거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남편은 남편대로 강릉에 가셨다는 형에게 소리치며 경찰서로 가보라 다그쳤다.


집에 있었던 아들은 미국 대사관에 전화해서 누나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 SOS를 쳐달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대사관에서는 성인이고 3, 4시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일이지만 한국으로 연락은 취하겠다고 전했다. 큰아이 또한 병원에서 긴급하게 동생의 친구들과 연락하며 6시간 전까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전송해서 경찰에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그분은 경찰서에 가서 실종 신고를 했다.


최근에 찍은 제대로 잘 보이는 사진과 6시간 전에 친구와 스냅으로 찍은 사진 여권과 미국 ID, 미국폰과 한국폰 번호등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건네주었다. 그러다 생각이 번쩍 난 건 내 폰과 아이의 폰이 연결이 되어서 서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것. 내가 한국에 가야 해. 오늘 저녁 비행기 예약해야 해. 남편은 그 즉시로 집 근처에 있는 곳에서는 다음날 출발하는 비행기밖에 없으니 뉴욕에서 당일 저녁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과연 비행기를 탈 수나 있을까 싶었다. 발이 떨어질까? 맨 정신으로 14시간을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할 일이었다. 당장 숨이 멎을 만큼 죽을 거 같은 마음인데 내일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누군가 아이를 끌고 갔다면 어떡하지? 그럼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벼라별 상상을 하다 하다 지금 당장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핸드폰만 어디에다 버리고 끌고 갔을 수도 있는 거네?


당장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세월호 때 죽은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살았지?


이태원 참사로 죽은 아이들의 부모는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지? 지금 3, 4시간이 흘렀는데 죽을 거 같은데 만약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가족은 무사할까? 아니 일단 나와 남편이 죽을 것이고 남은 아이들은 죽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죽는 것이 당연하고 산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떡하지? 상상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가 정신이 나면 경찰서에서 찾지 못하면 경찰청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경찰청에 있는 사람과 친하다는 생각이 나 카톡을 만지다가 찾지 못하다가 또 상상하며 울다가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숨을 천천히 죄였다 놨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손과 가슴은 계속해서 벌벌 떨리고 남편은 도저히 운전하지 못하고 거리에 서 있고 큰 아이는 진료를 하지 못하겠다고 손을 놓고 있고 아들은 얼굴이 벌게져서 누나의 핸드폰 추적을 위해 비밀번호를 알아내느라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그러기를 또 한 시간쯤이 흘렀다. 경찰서에서 위치추적으로 한국폰의 반경이 나왔다. 강남에 있단다. 강남에 있다는 말이 더 이상했다. 4시간이 더 되었는데 핸드폰은 아직도 강남에 있고 핸드폰이 꺼져 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신호는 가고 있는 걸 보아 누군가 틀림없이 택시 안에서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으니 나쁜 택시 기사가 우리 아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다 위험하니 핸드폰은 모두 버리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니 난 더욱 미쳐갔다.


한국의 경찰은 반경까지만 알려주고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법적으로 핸드폰의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부모라 하더라도 성인이 된 딸과 어떠한 관계인지 알 수 없기에 일단 자신들이 먼저 핸드폰을 찾아 확인 후 말해 주겠다고 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지만 그때 그 상황으로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아무튼, 핸드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같이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이 또 흘렀다. 핸드폰만 있으면 어떡하지? 누구랑 있든 살아만 있으면 되는데 무조건 내 아이는 살아 있어야 하는데… 심장이 뛰다 멈추어 버린 인형이 된 채 또 시간이 흘렀다.


잠시 후…


나와 아이가 예쁘게 웃고 있는 아이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누가 전화를 하는 거지? 누가 주웠나?

‘엄마…’ 우리 아이의 목소리였다

‘살았니? 살아 있어?’

‘엄마 나 괜찮아요. 친구랑 있어요’

‘뭐??? 야!!!!!!!!!!!!!’

‘엄마 무슨 일이에요? 왜 경찰이 왔어요?’

‘너 죽은 줄 알았잖니…’


결론은 내 아이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울며 당장 미국으로 오라고 난리치고 남편은 찾았다는 한마디에 차를 세우고 몇 시간 동안 숨 막혔던 숨통이 트였는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렇게 울지 않았는데 부모보다는 자식이 먼저라는 말이 딱 맞았다. 큰아이도 소리 내어 안도의 울음을 울었고 동생은 그제서야 묵묵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가족은 이제 살았다.


다음날 내가 전화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새벽녘에 일어난 해프닝을 설명하자니 시간이 지나면 모든게 별게 아닌게 되어버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 당신의 자녀가 복잡한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갔는데 길도 잘 모르고 영어도 어눌한 상태에서 택시를 타고 당신과 통화하고 가다 집 앞에서 끊겼다. 그 뒤로 5시간 정도 연락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라. 새벽 시간이고 같이 있다 헤어진 친구도 연락이 되지 않고 전화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고 더군다나 전화가 두 대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집에 가보았는데 아이가 정말 집에 들어온 흔적이 없다면 당신도 아마 다리가 후들거리고 한국에서 미국까지 찾을 방법이 없어 가슴이 타들어 갈 것이다.


몸에 있는 100만 개 세포는 죽었을 거라며 우리 가족은 안도했지만 정말 어떠한 이유든 아이를 잃게 된 부모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걸어간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진리인 것이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자란 성인으로 실종된 단 몇시간만의 해프닝이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주 다행인 일이었지만 정말 아이를 허무하게 아무런 준비없이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찾는 동안 계속해서 든 생각은 세월호와 이태원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을 것이다. 세월호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300여 명의 어린아이들과 승객들이 아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몇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고 끝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어린아이들이었다.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멍에와 슬픔을 그 누구와 나눌 것인가? 11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들의 가슴은 그날 그 순간으로 시계의 톱니가 멈추어 버려 아마도 20년 30년 아니 죽을 때까지 그 죽음의 시계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태원에 놀러 간 아이들의 부모 또한 내가 겪었던 마음과 똑같았으리라. 이태원에 놀러 간 아이, 그 근처라도 간 아이, 혹여 내 아이가 그 안에 있는 건 아닐까?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살아만 있어 다오. 제발! 보고도 만지고도 믿어지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내 자식을 살려내지 못했고 왜 내 자식이 그 고통 안에 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대신 죽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 간절함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다. 내 고통이 있기 전까지, 죽음의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걸 그때는 나 또한 알지 못했다.


그 후로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난다. "세월호 노란 리본 이제 그만 달면 안 되나요?"


어떠한 말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위로할까? 일 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 잊힐까? 지금도 며칠 전의 일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난 결국 자식을 잃지도 않았는데 정말 자식을 허망하게 잃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 세상의 모든 부모의 마음은 똑같으리라 생각되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는 절대 이 세상을 바로 살 수가 없다. 숨만 붙어 있을 뿐이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 죽을 때까지 가슴에 불덩이 하나를 얹고 자식의 이름을 부르지도 못한 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 세월호 리본을 달지 말라는 말을 어찌 감히 그들의 부모에게 말할 수 있을까? 정말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처님도 알라신도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들에게 똑같은 아픔을 주어 그런 아픔을 대신하는 천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이다. 노란리본 노란천막 노란깃발 노란우산 노란가방 노란 노란.... 세월호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의 한맺힌 노란 절규는 이 나라가,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도 풀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자식 여러분,


자식은 스무 살, 사십 살이 되어도 부모에게는 그저 어린 자식이란 말이 있지요.

내가 이제 오십 중반을 살아보니 그 말이 백번 천 번 맞는 말이지 싶어요.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은 죽을 때까지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하고 그런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서는 안돼요. 아침에 우산을 가져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우산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하늘만 보다 하루가 지나고, 컨디션만 조금 나빠 보이는 날이면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플까? 배가 아플까? 하는 생각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답니다.


큰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자식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바람뿐이지요.

세상이 흉흉해서 부모도 다 같은 부모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전부라 아주 소수인 나쁜 부모들이 입에 오르는 겁니다. 나쁜 자식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 말 또한 맞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100% 진실은 항상 100%인 거.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어디에 있든 안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작은 일이라도 공유하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전해지면 그게 다입니다.

사는 거 별거 없지 않나요?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정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한국 사람도 아닌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불구라고 성심껏 빠르게 제 아이를 찾아주신 역삼2동 경찰관 네분께 머리숙여 감사를 드리고 그 새벽에 아이의 집까지 뛰어가 주시고 경찰서에 가셔서 미국아이를 찾게끔 도움을 요청해 주시고 끝까지 지켜주신 그 분에게는 제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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