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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Nov 29. 2020

카페공화국의 변신을 꿈꾸며: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것인가 숨고싶은 도시를 만들것인가?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 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에 살고 있다. 동네 오락실의 두더지 잡기를 보는 듯한 ‘서울 집값 잡기’를 바라보며, 어느새 우리 사회에선 집이라는 단어보다 부동산이라는 단어가 언론과 매체를 통해 더 익숙해졌다. 주거의 의미를 가진 집보다 자산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부동산이 더욱 친숙해진 우리에게 "어디서 사세요?"라는 질문은 실례가 된다. 또한 "어디서 살고 싶은가?"라는 간단한 자문에도 우린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의식주 중에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음식을 먹을지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고민하지만,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2020년 한국사람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사고싶은 부동산을 떠올리는 것이 살고 싶은 집을 그리는 것보다 간단하게 느껴진다.


자본주의라는 세속적 리얼리티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저자는 의도치 않게 도발적인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주체적으로 구상해보지 못한 자본주의자에게 주거공간은 사는(live) 공간이 아닌, 사는(buy) 공간으로만 비춰진다. 그런 자본주의자에게 살기 좋은 공간에 대한 담론은 신도시 아파트 분양 홍보문구로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선택한 책의 제목은 우리에게 충분히 도발적이지만, 나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라고 해야할까? 뚜껑을 열고나면 그리 파격적으로 다가오진 않을테니, 책을 읽을 예정인 분들은 안심하셔도 좋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값이든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소유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몇 평'으로 계산되는 공간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91쪽)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시간과 공간은 돈으로 환산된다. 노동에 시간을 쏟은 대가로 시급을 받고, 공간을 사용한 대가로 월세를 내는 우리는 삶을 통해 이 사실을 체득하기에 시공간이 돈을 매개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매커니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인류가 시장과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체제를 선택한 이상, 이는 불공평한 세상이라며 원망할 일도 완벽한 적자생존의 구조라며 예찬할 일도 아니다. 그저 현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도시 속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공적인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공간조차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자들을 중심으로 향유된다. 뉴욕 브로드웨이 800m 거리에 놓인 170여개의 벤치와 달리, 같은 길이의 신사동 가로수길에 놓인 고작 3개의 벤치는 보행자들을 카페와 상점으로만 내몬다.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가 들어선 '카페 공화국'이라는 별명은 카페가 아니고선 머무를 곳이 없는 도시의 어두운 단면을 비춘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한 이유는 결국 우리 국민들에게 앉아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더 행복해지려면 도시 전체를 내 집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보행자 중심의 네트워크가 완성되고 촘촘하게 분포된 매력적인 '공짜' 공간이 많아지는 것이 건축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
(96쪽)


아이러니하게도 통계라는 잣대로 바라본 우리의 도시, 서울은 그리 갑갑한 도시가 아니다. 세계 30개의 도시 중 공원녹지면적은 4위를 차지하고 있고 뉴욕, 파리보다 넓은 1인당 공원면적을 지니고 있다. (출처 : 서울 연구 데이터 베이스, http://data.si.re.kr/) 그러나, 통계 이면에 숨은 현실을 들여다보면 공원과 녹지로 대표되는 공적 공간은 그 순위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서울 시내 공원과 공원간의 평균 거리는 4.02km에 달하고 도보를 통한 평균 이동 시간은 1시간 1분 가량 소요된다. 서울 시민이 자신의 집에서 평균 30분정도는 걸어야 공원에 도착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일상 속에서 마음 놓고 걸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으로 큰맘 먹고 가야하는 곳이 우리의 공원인 것이다. 녹지와 공원이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되는 이들에게만 가깝게 여겨지는 도시에서 '공품아', '숲세권'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의 경험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지평은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것인가 숨고싶은 도시를 만들것인가? 다시 묻자. 걷고 싶은 경험을 만들 것인가 숨고 싶은 경험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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