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무협지를 많이 읽었다. 내가 빌린 건 아니고 아버지가 무협지를 좋아하셔서 집에 늘 있었던 것. 아마 무협보다는 14세 남자 주인공이 자기보다 2-3살 많은 복수의 천하제일 미녀들에게 사랑받는 스토리가 좋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많이 읽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작품도 기억나지 않는데, 내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 하나 있다. 그 장면은 이러하다. 주인공이 무술을 배우기 위해 고수를 찾아간다. 고수는 주인공의 손을 보더니 주인공의 요청을 거절하는데 이유는 손에 굳은살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수는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장면이 중학생인 나에게 왜 그리 인상 깊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협 고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 난 내 손에도 굳은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고등학교 때는 펜이 닿는 손가락 부분에, 대학교 와서 기타 연습할 때는 손톱 밑에 굳은살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기고 거의 사라져 버렸다. 오늘 턱걸이를 하고 손바닥을 보니 굳은살이 제법 진하게 잡혀있다. 이 뿌듯함은 뭘까. 나는 우주에 가는 것 말고도 턱걸이를 해야 할 이유가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