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수 Oct 14. 2023

니혼고 와카리마셍

목을 다치면서 원래 하던 풋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시간이 좀 생겼는데,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일본어 학원을 등록했다. 단순히 시간을 잘 활용하자는 차원은 아니고, 일본 여행 갈 때마다 일본어 할 줄 알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런 마음이 쉽게 휘발되는 것을 알기에, 지난 교토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수강 신청을 했다. 하루에 무려 4시간씩 수업하는 주말반으로. 지금 생각하면 역시 무식해야 용감하다. 


지난주에 첫 수업을 들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헤드뱅잉 하면서 졸았다. 근래에 이렇게 피곤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힘들어서 계속 학원 다닐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2주 차인 오늘은 학원 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침대를 탈출해야 했다. 나갈 준비를 하며 내가 무엇을 위해 이 피로를 안고 일본어 학원에 가는 것인지 생각했다. 별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도 일단 나갔다. 오늘 수업 들어보고 여차하면 환불해야겠다 생각하면서. 


그런데 뭐, 운동이랑 비슷하게 수업도 듣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다르다. 오늘은 수업 듣고 돌아오는 마음이 무척 즐거웠다. 워낙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이다 보니 4시간 수업 듣고 나면 알게 되는 게 정말 많다. 돌아와서 일본 드라마 한 편 보다 보면, 그날 배운 단어들이 쏟아진다. 초급 단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랄까. 아는 게 들릴 때마다 다음 주 수업에 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언어 관련 오랜 아쉬움이 하나 있는데, 중국어에 쏟은 시간과 돈을 일본어에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풀어놓는 넋두리이기도 하다. 중국 문화에는 큰 관심이 없고 일본어로 된 콘텐츠는 상당히 많이 즐기고 있었던 까닭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게 된다. 지난주에 일본어를 잘하는 N과 점심을 먹으며 중국어 그렇게 열심히 배워놨는데 쓸 데가 없다고 했더니 자기도 일본어 쓸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우리의 결론은 역시 영어가 최고다로 흘러갔다. 


꾸준히 공부를 한다면 결국 난 일본어를 꽤 하게 되겠지만 막상 쓸 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거의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데, 아주 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어에 내 인생의 수백 시간을 다시 투입하려는 이유는 그냥 오기, 좋게 말하면 승부욕 정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기든 지든 이번 생에 승부를 내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40대가 된 후에도 일본에 여행 가서 '니혼고 와카리마셍' 하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다시 한번 말해달라'거나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2023 교토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