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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Feb 02. 2024

아직도 우울증입니다

브런치에 나의 마음 아픔과 우울증에 대해 글을 쓴지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돌아갔다는 것을 확인했다.
댓글과 하트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읽어내려가며 어쩌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원했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 우울증을 의심하는 사람들, 발견한 사람들, 앓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그저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닿을까 싶어 다시금 글을 적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약을 먹고, 일상에 적응하려 애썼고,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약을 먹었다. 그것도 14개월 동안이나.

그리고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다.

다행이라면 이제는 약을 조금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우울증 약은 초기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증량을 한다. 그리고 개인의 반응에 맞추어서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최적화가 되면 그 상태를 몇 달간 유지한다. 이후 우울함의 정도를 확인한 다음 정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이 되면 천천히 약을 감량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게 맞는 약의 종류와 용량을 찾기까지 몇번이고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내 예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의사는 맨 처음 보통 나같은 경우 언제까지 약을 먹게 되느냐고 물었을 때, 최소 3개월이라는 답을 했었다. 최소가 3개월이라면 최대 6개월 정도를 예상하고 약을 먹기 시작했었다. 우습게도 그 예상은 2주, 1달마다 병원을 갈 때마다 빗나가고 말았다.

어쩌면 '최소 3개월'이라는 말은 정신과 약을 먹는데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심적 부담을 완화하고자 해주는 일종의 립서비스였는지도 모르겠다.


14개월째 약을 먹으면서 의사 선생님께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만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약을 잘 챙겨먹는다.

그 동안 아침약, 그리고 저녁약을 처방 받아 먹었다. 저녁약은 잠에 잘 들고 숙면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약이고, 아침약은 우울감을 떨치고 활기를 주며 잠을 깨워주는, 저녁약의 효과를 상쇄하는 약이다.  
  

저녁약을 먹으면 5분 이내로 잠들 수 있고, 숙면을 취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침약을 먹으면 마음의 우울함을 조금 걷어내는 것 같아서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일상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밥 세끼 챙겨먹는 것, 운동하는 것, 약을 챙겨 먹는 것, 귀찮아 하지 않으면서 일상을 살아내기가 어려웠다.

쉬운 듯 하면서도 매우 어려웠다. 매일 매일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1년 가까이 글을 적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그림으로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걸 깊이 체감했다.

그림으로 소액의 돈을 벌어보았다. 비전공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해보는 나름대로의 도전이었다. 표면적 성과에 대해 얘기하면 누군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줄 착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번 금액을 이야기 했을 때, 누군가는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며 서슴없이 질타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고민 중에 있다.
조금이나마 성과가 나온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야 할지.

그 고민을 가지고 작년 연말에 상담소를 찾아 갔다.




상담


급한 마음에 근처의 사설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 선생님은 다행히 너무나 좋은 분이었다.

12회기를 기본으로 상담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하셨다.

그 동안 보건소의 무료 상담이나 경험해봤던 나로서는 어쩌면 12회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다.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세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관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다.

진로에 대한 상담을 2회차, 우울증과 가정사에 대한 상담을 3회차 받았다.
지난 수요일에는 앞으로의 목표를 잡는 상담을 했다. 총 6회차를 마쳤다.


우울증과 가정사에 대한 상담을 할 때는 상담을 마치고 1주일 동안 내내 조금 울적한 기분을 느꼈다.
상담을 마칠 때 분명 상담내용과 관련된 모든 기억과 아픈 마음은 금고에 넣고 돌아가는 심상 작업을 거쳤는데도 그랬다. 구체적인 기억들이 떠올라서라기 보다는 그냥 막연히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상담사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그럴 수 있다고 하셨다.

상담은 페트병에 흙이 가득 들어있는 물을 깨끗하게 만드려고 새로운 물을 부어주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과정에서 가라앉아있던 흙이 일어나 물 색이 변하는 것 같은 시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그 날은 상담 내용을 모두 정리하고 봉합하는 처리를 해주셨다. 덕분에 그 주는 우울하지 않고 괜찮았다. 심상 작업 대신에 주어진 몇 마디 말들이었는데, 그 전 주처럼 울적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앞으로 상담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 지금 나의 우울함의 수치가 10점 만점에 6이라면 이것을 2로 줄이기.

둘째, 앞으로 진로를 선택하는데 덜 불안해 하는 상태를 만들기.     

원래는 '우울증 완치, 진로 잘 선택하기'와 같은 완벽해보이지만 모호한 목표였는데,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목표가 보다 현실적이고 더 넓은 시선으로 보았을 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아직 상담이 종결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는 사설 상담소를 찾아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각 시, 구의 보건소에서 무료로 상담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보다 질 높은 상담을 원한다면 기꺼이 돈을 내고서 실력자를 찾아가길 권하고 싶다. 나의 시간이 어찌보면 돈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작년, 중증 우울증을 진단받고서 세운 목표는 '우울증 생존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터널을 걷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는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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