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첫째로 딸을 낳았고, 둘째도 딸을 낳았다. 그 둘째가 바로 나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하던 때였다.
산부인과에서는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었고, 낳고 나서야 성별 확인이 가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녀의 성별은 과학적으로 수정 시점에 이미 결정되는 것인데, 과학적 지식이 알려지지 않은 당시에 사람들은 아들 낳는 보약 같은 것도 사고 팔았다고 한다.
나도 그 보약을 먹고 자란 아이다.
나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며 엄마가 먹은 각종 탕과 보약을 흡수하면서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랐을 것이다. 마침내 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 아이로 나왔을 때 모두가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이 일을 어떡할꼬' 혹은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키워내야 했을 것이다.
엄마는 딸을 둘 낳고서도 만족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딸이든 아들이든 똑같이 귀한 줄 알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 때는 아직도 남존여비 사상이 활개칠 때였다. 당시에 엄마 스스로 딸만 낳은 걸 죄스럽게 느끼셨던 것 같다.
아들은 귀하고 집안의 대를 잇는 존재이니 집안에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댁 어르신들의 압박, 그리고 본인과 아빠의 바람으로 셋째를 또 가지기로 마음 먹게 된 것 같았다.
아들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딸만 있는 집안에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서너살 쯤 되었을까. 하루는 엄마가 우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왜 우시는지는 몰랐지만, 당시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옆 방에서 우시는 걸 느꼈다.
그런데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며 비관하는 대화를 누군가와 나누었으리라.
어느 책에서 본 바로는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아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아마도 나도 그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기 때부터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마음 한 구석이 어쩐지 외롭고,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귀찮아 하기도 했고, 어느 때는 매섭게 꾸중하기도 했다.
유치원 때는 다른 친구들 엄마는 모두 참석하는 행사에 나만 엄마가 오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갑자기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가져와 집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들이 있었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날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도 그냥 뛰어오라며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적도 있었다.
엄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또 그 당시 아무리 내게 자세한 설명과 설득을 했더라도 내가 느낀 외로움을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쌓아온 감정은 소외감, 부끄러움, 분노, 애처로움이었다.
자라며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에게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길 때가 많았고, 애써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내 주장을 하거나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그런 나의 모습에도 부모님은 잔소리로 훈계를 해댔다.
부모님의 입장에선 그냥 우는 모습이 보기 싫었거나 나약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은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내 주장이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왜 눈물이 나는지, 가슴이 아픈지 그 때는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아이가 무슨 말을 할 때 운다면 무엇이 그렇게 나를 슬프게 하는지 물어봐주고 들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났더라도, 마치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아이처럼 사랑을 듬뿍 주면서,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키워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내 속의 어린아이는 아직 상처입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어린 시절에 소외감, 부끄러움, 분노, 애처로움 같은 감정들을 느끼면서 자라야 했던 나를 이제는 연민의 눈길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