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밥도 겨우 챙겨 먹었고, 하루종일 슬퍼하면서 밀려오는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잠도 잘 자지 못했고, 자면서도 엄마 꿈을 꾸고는 슬퍼했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 너무나 생소한 첫 경험이었다.
엄마를 잃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생각보다 내 주변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나이는 엄마를 여의기엔 아직 어린 나이 같았다.
그래도 전 직장동료 한 분과 한동안 연락하지 않아 약간 소원해진 대학 시절 친구가 기억이 났다.
전 직장동료 언니는 너무나 오랜 방황을 했었다고 했다.
자기 엄마의 죽음 이후에 몇 년 동안이나 힘들어했고, 엄마의 추억이 묻어있는 집에서 살지 못하겠기에 한국을 떠났었다고 했다. 그런 힘든 이야기를 해외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털어놓아도 엄마를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를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나도 그런 심정이었다. 현실을 살아가기엔 너무 고통이 크게 느껴졌고, 할 수만 있다면 이 땅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사는게 나을 것 같았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는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지. 죽지 않으려고 밥을 매끼 챙겨 먹을 때마다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위해 더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시절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나보다 더 어린 시절에 엄마를 잃고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느냐고.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는 말이 돌아왔다.
오히려 자신은 엄마와 보낸 시간이 적어서 더 슬프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후 편찮으신 아버지와 남동생을 데리고 장녀로 지금껏 살아온 그 친구의 삶의 무게를 나는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친구의 말이 그렇다고 하니까.. 나는 그것을 기억해두기로 했다.
엄마를 잃고 한 두 달 지났을 때였을까.
하루는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와서 내게 펑펑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자기도 너무 슬프다고.
그 때 마지막으로 장모님을 뵈러 갔을 때 더 있다 올걸,
돌아가시던 날에도 언니집에서 장모님의 부고를 기다리며 그저 쉬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후회된다고.
더 열심히 기도라도 하고 끝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남기를 바랐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던 것이 한이 된다고.
나도 줄곧 같은 마음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결과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가 더 살기를, 회복되기를 더 열심히 바랐다면 하늘이 주는 기적같은 기회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지난 날을 아프게 곱씹었다.
삶과 죽음은 1과 0이었다.
죽음의 문 앞에 있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축복임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0의 허무함을 나는 온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