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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책방 여행자 Dec 09. 2021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심리학과생의 사람 사는 이야기

내 세상의 전부였던 아빠


어린 시절 친한 친구와 '아빠'가지고 싸움이 났다.

"울 아빠는 유단자야!!!"

"울 아빠는 특공대 출신이야!!!"

어쩔 때는 '아빠가 로보트 장난감도 아니고 그런 걸로 싸웠냐' 하고 웃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아빠는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존재이다. 아빠가 보고 느끼는 세상을 아이들은 보고 자란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엄마와의 관계는 모든 대인관계의 시초'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를 응용하여 아빠는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의 첫 모습'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빠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세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로 아이는 아버지의 사회적인 모습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달라진다. 아버님의 월소득이나 특정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빠가 사회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타인과 나, 세상과 나 사이에서 포지셔닝을 조금씩 모방하게 된다.

 두 번째는 엄마 말고 아이가 밀첩 관찰할 수 있는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아이는 엄마 아니면 아빠랑 논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엄마 그리고 아빠뿐인 셈이다. 엄마가 나한테 무한적인 신뢰를 주는 인물로 신뢰 및 불신을 배워가는 찰나에 아이는 그 신뢰를 실험해 볼 대상이 '아빠'인 셈이다.

 물론 요즘은 아빠와 엄마에 대한 역할경계가 많이 옅어졌기 때문에 요즘 세상에 저 생각은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창이 엄마 또는 아빠인 것은 변함없다. (스마트폰으로도 세상을 보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본다'의 개념이지 상호작용을 통해서 체험하고 '내 세상'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

그래서 엄마의 역할만큼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도 정말 정말 중요하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이야기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며 가족단위 캠프로 참여하는 아버님들께 가장 많이 듣는 이 있다.

"야~ 우리 애가 이걸 좋아하는 줄 몰랐네요?"

"집에 돌아가면 더 좋은 아빠가 되어주려고요"

자식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것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미 훌륭하십니다."라는 말씀을 드린다. 가정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 얼굴이 환하다. "집에서 티비만 보는 아빤데!" 하고 까부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만큼 즐겁다는 소리로 들린다. 아빠랑 같이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봤을 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아빠를 자본의 기준으로 나눈 듯한 그 책 제목은 금서처럼 느껴졌다. 물론,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정말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자산관리' 관련하여 인사이트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첫 번째로 선택하여 빌려 읽는 훌륭한 책이지만, 처음 제목을 접한 당시 불쾌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청소년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은 아빠의 소득 수준과는 무관했다.


진짜 경제적으로 부유한 친구들과 2박 3일로 가족캠프를 같이한 경험이 있다. 당시 나는 지도자로 참가하였고, 안전지도와 간단한 프로그램 진행 등을 맡았었다. 가족캠프 입소식 날 주차장에는 처음 보는 외재 차로 가득했다. 그리고 캠핑도구 가득한 차 안에서 태블릿 PC에 눈을 떼지 못하는 친구들이 내렸다. 처음에는 그 친구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힘들었다. 태블릿 PC보다 더 재밌어야 아이들은 움직였고, 옆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들은 아이들이 뛰어놀면 한발 뒤에 점잖게 서계시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밤이 오면 아이들은 각자 텐트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 재밌는 건 둘째 날부터다. 첫째 날에 친구들과 친해졌으니 둘째 날부터는 태블릿 PC 대신 친구들과 논다. 그렇게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도 부족했는지 밤이 되면 자기들이 가지고 온 태블릿 PC 가지고 별자리를 보거나 게임 YOUTUBE영상을 같이 보고는 한다.


  평범한 가정 또는 지자체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가족캠프에도 참여하였다.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각자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똑같고,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아빠들은 점잖게 뒤에 팔짱 끼고 있는 것도 똑같다. 첫날밤은 각자 텐트에서 머무는 것도 똑같고, 둘째 날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도 똑같다. 진짜 다를게 하나도 없다. 이 외에도 장애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족캠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 재밌다. 사람 사는 모습은 절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님의 소득 격차와 상관없이 부모님의 행동에 따라서 아이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게 포인트다.

소득과 상관없이 대인관계 능력이 좋으신 분과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신 분들이 있다고 했을 때 아이들도 그러한 경우가 정말 많다. '어차피 2박 3일..'이라면서 일거리를 가지고 오시는 부모님들도 봤다.(어떤 캠프든 이런 분들이 꼭 계시다.) 보통 해당 부모님의 자녀들도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근데 관심 없던 친구들도 신기하게 부모님과 확 달라질 때가 있다. 계획된 프로그램이 아닌 자기들끼리 놀이를 할 때다. 스포츠 경기일 수도 있고, 간단한 탐험 프로그램이나, 고전 동네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등)를 할 때 보면 부모님의 모습이 아닌 각자의 개성이 있는 모습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자신의 본래 모습과 부모의 모습 그 어딘가에서 아이들은 자기 모습으로 성장하는 듯싶다. 그리고 나는 그걸 도와주는 일을 했었다.




아직도 아빠를 통해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운다


나도 부자였다면 착했을 거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뼈아프게 와닿았던 대사다. 그리고 공감한다. 내 입에 풀칠 못하는데 동냥 밥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이와 같이 성장함에 있어서 '좋은아빠 되기' 노력을 안 해도 되는 면제권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육점에서 일하면서 진짜 존경하는 형을 만났다. 아이 둘의 아빠다.

정육점서 진짜 일이 많으면 하루 14시간을 근무하고도 부족할 때가 있다. 게다가 장사하는 일을 하다 보면 손님들의 무례한 태도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한테 대놓고 천한일 한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서비스 파채 가지고 한 실랑이, 고깃값 가지고 두 실랑이하고 집에 오면 그냥 누구랑 말하기가 싫어진다. 그럴 때면 난 그냥 조용히 책을 집는다. 그런데 아빠인 형은 달랐다.


자식들과 브루마블을 한다고 했다. 열쇠카드에 '종부세'가 없다며 형이 직접 카드도 만들었다. 열심히 번 돈으로 아이들 명의 주식 계좌에 1,000만 원에 돈을 넣어주고 아이들과 경제뉴스를 본다고 했다. 아이들과 책을 읽으려고 하였지만 본인이 문학책을 즐겨읽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과 세상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한다고 했다. 내가 청소년 학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고, 심리학 전공이란 것을 안 이후로 자식들 이야기가 잦아졌고, 하루는 나한테 와서 "애들 컴퓨터로 뭐가 좋냐?"라면서 웃던 형이 생각난다. 진심으로 조카들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아빠와 어떤 것으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성인이 된 지금도 큰 자산이다. 물론, 앞에 5마디를 참아야 한다. 걱정에서 나온 소리가 잔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Sorry 아빠^^) 하지만 그 뒤에는 아빠 인생을 들으며 내 인생을 바라본다. 아빠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미래를 선택하기도 한다. 아빠가 경험했던 어려움으로부터 나의 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물론, 늘 정답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조금씩 '진짜 소중한 관계'에서 '더 긴밀하게 친해지는 법'을 나는 지금도 배워간다.


아이들은 많이 서투르다. '내가 더 서투를걸?'이라고 생각해도 아이가 더 서투르다. 그래서 아이가 다가오기 이전에 밥 몇그릇 더 먹은 내가 다가가는게 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아이에게 가서 "짜식아! 아빠가 말이야!!", "엄마는 네가!!!" 하고 이야기하면 어어어어엄청 싫어할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괜찮은 타이밍에 (날x 시간x) 그냥 넌지시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하기를 바란다. "아빠가 옛날에 다섯 번째 사랑을 엄청 좋아했다?" "엄만 맨날 외할아버지한테 혼났어"등 말이다. 처음에는 들어줄 생각 하시지 말고 정말 정말 많이 이야기하셔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엄마 아빠한테 오픈할 정보와 오픈하지 않을 정보를 결정하게 되고, 많은 정보가 오갈수록 오픈할 수 있는 정보들이 더 많이 쌓여나갈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어떻게 소중한 관계를 더욱 깊게 사귈 수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성인이 된 지 꽤 된 듯 하지만, 난 아직도 아빠를 통해서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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