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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Jul 08. 2024

갓생에서 갓(God)되기

물이 되는 꿈

  오늘 아침에 구글 임원까지 하다가 ‘짤렸다’는 정김경숙 님이 나오는 휴먼 스토리를 보았다. 사실 ’구글 임원‘에서 ’구두닦이 견습생‘으로 변신했다는 자극적인 워딩은 과자의 질소 포장 같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기야 했지만, 16년 반이라는 기간을 다닌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응, 당신 오늘부터 나오지 마‘라는 말을 듣는 상황을 상상하니 이보다 더 자극적인 건 없겠다 싶었다. 아득한 황망함이 내게도 물밀듯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다른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무엇이 자기 자신에게 더 맞는지 알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으로 세상 만물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다. 인상적인 가르침이었다.


  그녀를 보면서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스스로의 ‘가능 영역’을 확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일이야 말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인생은 필연적으로 외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자각도 들었다. 그런 와중에 이왕이면 ‘휘둘리기보다는 휘두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속삭임이 일었다. ‘삶은 언제나 휘둘려. 계획대로 되지 않지.’ 그것은 자명한 진실이고 진리이다. 하지만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열망은 그런 사실 따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쳐든다.


  휘둘리지 않고 휘두르는 존재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글자는 둘도 셋도 아닌 단 하나였다. ‘.‘ 오직 신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휘둘림 없이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인간에게는 휘둘릴 일이 너무나 많다. 예상치 못한 질병의 창궐이나 경제 호황, 유전자의 발현, 어젯밤의 작은 말다툼, 심지어는 오늘의 비 내리는 날씨까지. 어떤 것은 굵직하고 어떤 것은 깃털처럼 사소할지라도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가늠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궂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도 신의 형상에 닮아갈 희망은 있었다. 신을 외부의 무엇에도 좌지우지하지 않는 존재로 본다면, 외부의 무엇에든 지나치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어진다면 인간 역시 신의 형상에 얼마쯤은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그 모양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또다시 둘도 셋도 아닌 오직 한 글자가 떠오른다. ‘.‘


  이따금 인간은 자신이 오래 머무른 형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나는 학생이라는 형상에 아주 익숙하다. 사회인이 된 것은 햇수로 따지면 5년인가 6년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의 형상으로 되돌아가라고 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 규칙적인 등하교, 언제나 생활의 기본 값으로 놓여 있는 학업이라는 모양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지금은 학생이 아니지만,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값이기에 학생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별 어려움이 없다. 오랜 세월을 어떤 모양으로 살다 보면 본래 무엇이었던가 하는 사실은 잊은 채, 어떤 모양의 무엇이라는 감각에 사로잡혀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자리한 컵이 깨지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며 말이다.


  그러나 설사 토대가 뒤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종류의 것으로 보일 지라도, 언제나 깨어지는 상황까지 펼쳐 두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토대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무슨 이유로 토대가 무너졌을 때, 내 형상을 너무나 공고하게 세워두는 것이야 말로 위험하다. 형상을 되찾으려 애쓰며 휘둘리게 될 테니까. 시시때때로 삶에서 주어지는 형상에 빠르게 익숙해지기도 해야 하지만, 형상이 사라지는 순간은 그저 흘러갈 줄도 알아야 한다. 꼭 ‘물’처럼. 둥근 컵에 담기면 둥그레지고, 각진 컵에 담기면 네모나지고, 컵이 깨지면 흘러 바다로 갈 줄도 아는. 나는 그저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는 물과 다름이 없다는 자각을 안을 때 비로소 삶의 주체성도 바로 서는 것 같다. 기이한 일이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설사 모양이 없다고 해도 괜찮다는 거대한 유연함이야 말로 삶을 이어가게 하는 공고함이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정김경숙 님은 회사를 나온 뒤, 실수로 친구에게 ‘I’m one of the layoffs (나는 해고 대상자 중 한 명이야)’라고 보내야 하는 것을 ‘I’m one of the playoffs (나는 플레이오프 진출자 중 한 명이야)‘라고 보냈다고 한다. 근데, 아무래도 오타가 아니지 싶다.


* 관련 영상은…

https://youtu.be/ODau6JvzM-M?si=meckhCynC-YVxo9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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