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일기에 주떼에게. 라고 쓰여진 첫 문장을 보았을 때 러브 레터라도 받은 것마냥 심장이 울렁거렸어. 사춘기인가?
언니 글을 읽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 요즘 들어 부쩍 인간관계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럼 도대체 어떤 관계가 좋은 관계일까 생각을 해봤어.
먼저 칭찬을 자주 주고 받는 관계가 좋다고 생각해. 난 예쁨 받는걸 좋아해서 그런지 칭찬받는 게 좋아.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 하는 것도 좋아해. 칭찬은 애정이나 관심이 없으면 나오지 않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칭찬하는 내 마음을 오해하더라. 내가 너무 자주 해서 빈 말 같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 진심이 전해질까? 다행히도 언니는 칭찬 받으면 쑥스러워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아서 좋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칭찬을 주고 받으면 좋겠어. 특히 회사에서. 못하는 것만 지적하지 말고 잘하는 거 많은데 좀 칭찬 좀 해줬으면. 비난보다 사기를 더 잘 올려줄 텐데.
또, 좋은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우리가 좋은 대화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지? 대화를 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어.
좋은 대화란, 잘 듣는 것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말 할 수 있는 편안함도 중요하지.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할거야. 다름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 같아.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어려운지 요즘 깨달았어. 얼마 전 우연히 읽게 된 어떤 심리학 관련 글에서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 오히려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과 나를 동일시 하게 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판단하기 쉽대. ‘이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나를 온전히 이해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욕망이 생긴대.
하지만 어떻게 타인이 나와 같을 수 있겠어. 당연히 다른 건데 그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서로의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다는 괴리감에 실망을 하고, 자신을 이해 받지 못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는다고 하더라. 은근히 선택을 강요하게 될 수도, 강요 받게 될 수도 있지. ‘이 사소한 것 하나 이해를 못해줘?’ 라며 싸우게 되고. 실망하고. 상처를 받으니 영영 보지 않게 되고.
친할수록 거리를 둘 줄 알아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역설. 약간 잔인한 것 같기도 해. 나만 해도 어린 시절 내 소울 메이트라고 부르던 친구들과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아예 하지 않게 된 그런 경험이 있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걸까? 오히려 다른 친구들이랑은 그런 갈등 없이 더 오래 친하게 지내는걸 보면 그 말이 맞나 봐.
그래서인지 난 언니랑 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다른 걸 알고 친해진 거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서 설득을 하려고 하거나 판단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왜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잖아.
그리고 또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내게 없는 부분을 배울 수도 있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쿨해지는 법. 언니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크게 연연하지 않지. 난 많이 연연해 하는 편이고. 언니를 보면서 남의 평가는 나를 깎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어. 난 이전엔 그렇게 느꼈거든. 누가 뭐라고 한 마디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어. 날 비난하는 것 같아서. 이제는 조금 더 쿨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 이런걸 배울 수 있는 게 좋은 관계 아닐까?
마지막으로 취향에 관해서도 이야기 해볼까? 같은 취향을 갖고 있었으면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편할 수도 있지. 그런데 다 같을 필요 뭐 있겠어. 운동 친구. 술 친구. 이렇게 취향 하나만 같아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걸. 우리는 글 친구인 거고. 글을 매개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무궁무진하고, 말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도 시간을 갖고 고쳐 쓰고 다듬어 쓸 수 있으니 좋아. 말은 한정적이고 내 의도가 온전히 전달 되기 어렵잖아. 글은 조금 더 정제할 수 있어서 좋아.
인간관계가 어렵다 보니 여러 부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가 다 나왔네. 그런데 어떤 관계가 좋은지 생각하다 보니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해. 숨쉬기 인식하면 갑자기 숨 쉬는 법 까먹는 것처럼. 다시 인식하지 않게 되면 곧 자연스러워 지겠지?
<<메이너의 마음으로부터>>
-오츠
주떼에게.
우선 이걸 괜히 해보고 싶다. 주떼에게. 넌 성실한 아이야. 주떼에게. 너는 열심히 니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주떼에게. 너는 다정함을 경계 없이 베풀 줄 아는 사람이야. 여기까지는 너만을 위한 문단이야!
다름에 대한 너의 이야기 잘 읽었어.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짝을 찾아 헤매는 걸 숙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기이하다. 어딘가 내 짝이 있을 거란 믿음이 사람들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단 생각도 들어.
짝처럼 잘 맞는 사람. 소울메이트. 이런 단어를 들으면 내 친구 한 명이 떠올라. 걘 자신만의 솔메가 있대. 모든 부분이 잘 통하고, 입맛이나 취미, 취향도 비슷하고. 심지어 만나서 놀다 슬슬 지친다 생각이 들 때쯤 솔메도 집에 가잔 이야기를 꺼낸대. 오롯이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진짜인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럽단 생각이 먼저 들었어. 마음이 잘 통하고, 뭐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니. 생각만 해도 좋을 것 같아. 내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을 달래줄 것 같달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서인지 나는 조금만 잘 맞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라? 나도 솔메라는 게 생기는 건가, 하고 은근슬쩍 바라곤 해. 최근에 만난 사람 중 가장 잘 맞았던 친구는 내가 추천해준 책, 음악, 영화가 다 좋았대. 이 나이 먹고 잘 맞는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잖아.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종종 놀림을 받기도 하거든. 그래서인지 그 친구와 나중에 안 맞는 부분이 일부 생기더라도 그래, 이 정도면 많이 맞는 편이지. 라고 납득하게 되더라. 운명의 소울메이트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교집합은 있는 셈이니까, 그 정도면 과분하지.
그렇게 보면 맞고 안 맞고의 이분법적인 분류보다 퍼센테이지로 어느 정도 일치함, 이라고 구분하는 게 인간이란 족속을 이해하는 데 더 쉬운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 네 소울메이트들과 관계가 소홀해진 건 내가 더 슬프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만큼 다른 사람들에겐 더 잘 할 수 있겠지. 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어.
그나저나 마이너한 취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나는 내 취향이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그런데 최근에 친구와 짧은 설전이 있었거든. A라는 노래에 대한 것이었고 나는 그 노래가 대중적인 노래라고 생각했어. 내 친구는 그 가수가 대중적인 거지, A는 대중적이지 않대. B정도는 되어야 대중적인 거라 할 수 있는 거래. 논리도 뒷받침할 근거도 없는 이 개인적 취향에 대한 설전은 굉장히 친한 친구와 소통하는 방식 중 하나여서 그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어. 그치만 내게 다소 충격적이긴 했지. 내가 그 가수의 노래 중 제일 좋아한 게 A였거든.
A가 마이너라고? 내가 마이너한 취향이라고? 물론 내가 천만 영화를 즐겨 보지 않기는 해. (난 원래 영화 자체를 그리 즐겨보지 않아.) 그리고 멜론 탑텐을 누가 듣냐며 내 메이저 친구의 취향을 깎아 내리기도 했지. (아니, 근데 멜론 탑텐을 듣는 사람이 ‘정말’ 있을 줄 몰랐어. 그건 가게에서나 트는 거 아니냐고. 취향 존중을 못해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마이너라니... 내 친구는 내 충격을 구경하며 시혜적인 태도로 대꾸했지. 아니다, 메이너 정도는 시켜줄게 라고. 메이너가 뭐냐고? 메이저와 마이너의 중간이래. 이 어정쩡함은 대체 뭐람?
주떼, 니가 말하는 내 특유의 쿨감은 실은 무심함과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몰라. 메이너라는 말 좀 보렴. 이 중도도 아닌, 어중간함도 아닌, 이 오묘하고 애매한 단어. 개인적인 취향 찾는 데에 손을 놔버리고 모든 것을 흡수해보고자 했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 판단 내려진 상태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단어이지. 이렇게 생각하면 내게 보이는 쿨함은 실은 대충 사는 인간의 장점이 극단적으로 가치화됐을 뿐이라는 결론도 생각하게 돼.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겉으로 보이기에는 누구나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더 좋아 보이잖아.
너의 섬세한 결이나 그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싶은 세심함이 내겐 없지. 나는 그게 좋아 보이지만 실은 나, 그런 걸 배우고 싶진 않아. 왜냐면 나는 무척 게으른 인간이거든. 게으르면 몸이 굉장히 편해. 마음은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게으르게 살 거면 아주 다 놓고 메이저 인간으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지만. 알잖아? 나 같은 비뚤어진 인간은 그렇게 살 수가 없단다.
내가 나를 비뚤어진 인간이라 지칭하는 것에 있어서 태클은 사양할게. 비뚤어지면 뭐 어때, 라고 말해줄 것도 같지만 그것도 사양이야. 나는 비뚤어진 인간이 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 비뚤어진 인간으로 살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