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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Feb 27. 2023

늦둥이 엄마 아이 친구 만들어 주기 4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접근(?)하여 포섭하기로 결심을 했다.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이것이 절대적인 일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게 생겼다.


내가 자라던 기억도 희미한 그 옛날에는 골목에 아이들이 넘쳐났다.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놀이(작금의 부동산 열풍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공기놀이를 하는 여자 아이들과, 딱지치기, 엿치기, 구슬치기( 투기에 강한 이유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생각) 하는 남자아이들이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온 골목을 가득 채웠다. 몸 쓰기를 싫어하고 그저 아랫목에 배 깔고 동화책을 보다가, 망상에 빠지기를 좋아했던 나는 밖에 나가라는 엄마의 성화에 쭈빗거리며 대문을 나서면 어느덧 친구들 사이에 끼여 구경만 해도 해가 뉘엿거렸다.


내가 노처녀이던 1990년 대만 해도 주거 환경이 바뀌어 아파트가 골목을 밀어내는 시기였지만, 어쩌다 결혼한 친구의 아파트를 찾아가면 아파트 놀이터, 아파트 단지 빈 공간마다 가득 아이들이 놀고 웃고 우는 소리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안일하게 아이를 낳고, 별생각 없이 외국을 떠돌다 돌아온 오십을 바라보는 나는 알았다. 이제 골목에도 아파트 놀이터에도 자유롭게 하루종일 뛰노는 아이들은 없다는 것을...


요즘은 거의가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 정도가 대부분이다.  또한 세상은 뉴스를 보기에 민망할 절도의 놀라운 사고 사건이 많으며, 요즘 세상에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날마다 늘어만 간다. 그래서 엄마의 케어가 필수적인 세상이 되었다. 저학년일수록 혼자 놀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나서주지 않으면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


 아이들끼리 약속을 해도 아이만 돌아다니지 않는 세상이므로 엄마가 데려다주어야 하고, 엄마가 알아야 같이 만나서 놀 수도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은 엄마의 사교성과 아이의 친구 관계가 맞먹는다는 말이 있다. 뭐 이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옆 집 아이는 아이가 반듯하고 똑똑해서 모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래서 엄마가 바빠서 못 챙겨도 항상 친구가 꼬인다고 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러냐 어쩌랴. 세상 모든 아이가 같을 수는 없고 , 우리 아이는 그냥 보통의 아이인 것을...


내가 아이 친구엄마들에게 접근할 야심만만한 계획을 그저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했을 때, 육아에 있어서 나의 선배이자, 타고난 사회성으로 동네 아이 친구엄마들과의 탄탄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어  선망의 대상인 여동생은 화들짝 놀랐다.


-언니야! 언니야! 조심해야 돼. 함부로 막 친구엄마들한테 접근하면 큰일 나! 괜히 친구도 못 사귀고 이상한  사람 취급받아. -

-왜?-

-내가 좀 친절하게 대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같이 애 키우는데 친하게 지내고 정보도 얻고..... 또...-



아이 친구 엄마들을 사귀겠다는 창대한 계획을 그냥 주저리주저리 옹알이 하듯  말하는 나를 여동생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


-언니야 세상에는 많은 관계가 있어 근데 요즘 들어 가장 치열하고 무서울 정도로 깐깐한 관계가  아마도 아이 학교 친구엄마들의 관계일걸. 언니는 학교 선생님이면서 엄마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구는지 몰라?-


- 뭐 그거야 입시를 앞둔 중고생 엄마들이나 그러겠지 초등학교 일 학년인데 뭐....-


-요즘 분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밀리면 안 된다는 분위기야. 그래서 어려서부터 친구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 그래서 비슷한 환경의 즉 비슷한 메이커의 아파트, 비슷한 평수 비슷한 학벌 비슷한 직업을 가진 엄마들이 유치원 때부터 일종의 카르텔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철저하고 손해보지 않으면서 서로 도움을 주면 주는 것만큼 받아야 유지되는....-


-무슨 카르텔씩이나... 뭐 텔레비전에 나오는 대단한 엄마들이나 그러지 다 그러려고.-


내 말에 동생은 요즘 젊은 엄마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당히 듣기에 불편할 정도의 이야기들이었는데 나에게 치명적인 이야기가 참 많이 슬펐다. 나이 든 워킹맘과는 친구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아이가 탁월하거나 엄마의 사회적 지위나 재력 혹은 정보력 인맥이 탁월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내 아이도 탁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지극히 평범 혹은 그 이하일 수도 있다는 슬픈 현타가 밀려들었다. 그러서 마지막 카드를 내보였다.

-내가 돈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커피도 사고 밥도 사고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음... 그건 호구야 호구... 친구가 아니고. 걱정된다.-

-호구나 친구나 뭐...-


그런데 이상도 하지. 호구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희망이 솟구쳤다.

그래 나는 호구다.

호구가 뭐 어때서... 솔직히 고백하면 눈치 없고, 맘 약하고, 어수룩한 데다  k 장녀의 기질까지 은근슬쩍 장착한 나는 평생 호구과였다.  심지어 앞에서 훈수를 두는 동생을 보며 맘 속으로 한마디 했다.

-동생아 너두 날 호구로 알잖어-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호구를 좀 우습게 알지만 그래도 대놓고 왕따시키거나 까진 않는다. 호구니까. 호구라도 끼워주면 어디냐....  그렇다고 내가 항상 호구는 아니다. 나도 다 얄샵한데가 있다구..... 이런 마음이었지만 나는   아이 친구 엄마 사이에서  특별히   호구가 되지는 않았다. 그 관계에도 도덕적이고 암묵적인 룰은 있었다.



나는 태어난 지 오십 년 만에 아주 공손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학교에서 다른 엄마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친절을 동원했다. 길거리에서도 딸아이 또래의 아이와 같이 엄마가 가면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엄마에게 인사를 당겼다. 심지어 우리 집에 놀러 오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많이 주접스러웠다고 생각되지만 자주 마주치다 보면  결국은 안면을 트게 됐다.


한 번은 여동생이 놀러 왔다가 지하철 역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데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이렇게 사교적인 사람인 줄 몰랐다고... 나도 답했다. 응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주접스러운 인간인 줄은...


다소 소심하고 낯 가리는 성격으로 폭 좁은 인간관계로 살던 나는 갑자기 다양한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었다. 아이 엄마들과 만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십 일세기의 엄마라는 역할은 그냥 그 사람으로 아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까다로웠다. 아이들의 친구를 사귀는 일에도 기준이 있었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아이보다 못한 아이와 친구가 되면 도움이 안 된다 생각했고, 좀 나은 아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못해 보일까 두려워했다. 나는 안다. 그들이 다 좋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그러나 아이 엄마일 때는 누구보다도 까다로워지며 저 사막의 하이에나 같은 눈빛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러할 때가 많았으므로...


낮에  같이 커피를 마신 엄마가 나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공부 잘하는 다른 아이들과 과외를 꾸렸다거나, 우리 딸과 늘 키즈 카페에서 놀다가도 오후에 과학모임에는 끼워주지 않는 엄마들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강한 멘털을 키워 가며 나는 아이 친구엄마들의 언니로 불리게 되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울 딸은 그저 평범하고 무탈했다. 그래서 그럭저럭 친구엄마들과도 잘 지냈고(물론 백퍼 내 생각) 세월이 그냥저냥 갔다. 나는 말만 그랬지 직장 다니느라 그들과 그다지 유대가 깊지는 못했고, 어느 여름 오후 늘어진  시간처럼 더디 가던 시간들도 제 속도를 지켜서 지나가고,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학교에서 돌아오면 처음 보는 아이들이 집에 와 있었다. 드뎌 엄마 없이 지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또 그 다음이 있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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