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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나무 Mar 31. 2023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시가 너무 멀어진 세상에 살면서,  아니 오히려 시가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그 쓸모를 잘 못 찾는 세상에 살면서,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시가 정말 필요한 세상에 살면서 나는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참 부끄럽다. 


나는 시에서 너무 멀리 있다.

해외를 떠돌기 시작하면서 버리기 시작한 수 백 권의 책들이 다 사라지고, 아이의 책장에 겨우 비집은 책장 한 칸에 차마  버리지 못한 시집들이 몇 년째 색이 바래고 있지만, 무심한 세월에도 켜켜이 앉은 먼지를 떨어내지도 못한 채 그냥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도 나는 시를 읽은 지가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를 않는다.


가끔 소설은 읽어도, 뭐 좀 쓰려고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도 시는 읽지 않고 있다.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수십 권의 시집이 아직도 목마르게 나를 바라보고 있음도 깨닫지 않고 있었다.



아이 스쿨버스를 보려고 내민 창 밖으로 목련이 봉우리를 틔우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물이 올라 생기도는 나무들과 흰 꽃몽우리가 몽숭거리는 나무들을 보다가 내가 아는 시 한 편이 생각 났다. 그러자 갑자기 목련 봉우리를 스쳐가는 봄바람처럼 가슴에 시들이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내가 한 때 시를 참 사랑하는 인간이었음이,  언젠가 찾아온 그 옛날의 학생이 이십 대의 젊은 국어선생이었던 내가 창가에 서서 시를 읽어주곤 했었다고 했던 말이......


나는 시를 쓴 적은 없다.

사춘기 시절 과제로 낸 시를 읽은 국어 선생님의 팩트 평가 이후로 나는 절필을 했었고, 그럭저럭 잡글들을 쓰며 살지만 시에는 접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를 사랑했다. 서정주를, 백석을, 기형도를, 정호승의 시를 사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시를 잊기 작한 것은..... 

아마도 국어 시간에 시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시를 분석한답시고 회 치듯 나누어서 생각하고 가르쳤다. 같은 내용을 몇 번씩 몇 년씩 가르치면서 나는 두려워했다. 내가 혹시라도 시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어서 아이들이 시험을 잘못 보게 될까 봐 주제와 심상과 상징과 은유를 꼭꼭 되씹으며 가르치느라 내가 사랑했던 이유 없고 쓸모없는 시어들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그건 그저 게으른 나의 변명이다.


내 마음이 거칠어지고 굵어져서  시의 섬세한 슬픔이 무뎌졌을 수도 있고,  바쁜 삶 속에서 시를 읽는 여유를 잃었을 수도 있고, 차마 시의 아름다움에 빠지기가 두려웠을 수도 있다.


갑자기 시를 읽고 싶어졌다.

날마다 잊지 않고 시를 읽으면 다시 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칠고 메마른 세상에서도 여리고 섬세한 시어들을 다시 마음에 담아 내 영혼도 조금은 순수해지고 맑아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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