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왜 읽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나는 왜 그렇게 사생결단하고 읽었을까
한 번쯤은 나에게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설명하고 싶고요.
다른 사람에게도 나를 좀 이해해 달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되지 싶어서 왜 읽는지에 대해서 심오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최초로 내가 읽었던 책은 홍길동전이에요.
여덟 살이었고요. 그때 이미 어쩌면 자신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책이었어요(아버지는 서른여덟 늦가을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만성 신장염으로 세상을 뜨셨어요. 저는 아홉 살이었고요)
영민함으로 이름을 알리던 어린 동생들보다도 평범하고, 한글도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겨우 뗸 딸에게 아버지가 선물한 홍길동전을 저는 좋아했어요. 읽고 또 읽었어요. 첫 구절을 거의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길동은 홍판서의 서자였다였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은 다소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여서 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서재로 숨어들었어요. 아버지는 시골 고등학교 과학교사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대청마루 가득 찬 책장에 가득가득 책을 남기셨어요. 그 책들은 제가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이사 갈 때까지 대청마루에 가득 차 있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알 수도 없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읽게 되면요 상상력이 키워져요. 내가 아는 만큼 이해하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죽음보다 깊은 병이라는 제목을 기억해요. 나는 그때 그 책이 의학 서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한 없이 상상했어요.
그리고 독서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현실의 슬픔도 고독도 다 벗어날 수 있어요. 책 속에는 유쾌한 현실이 많아요. 학교 도서관에 있던 명랑 소설을 모두 읽고 얄개전도 모두 읽고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 이야기도 읽고요. 그래서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저는 이미 사랑에 매우 냉담한 소녀가 되었어요. 소설 속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해피엔딩은 그다지 많지 않았거든요.
또 책을 읽는 나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일단 책을 펴면 심부름도 면제되고, 동생들도 괴롭게 하지 않았죠.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는 미명하에 세상 사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었어요.
사춘기를 넘어가면서 쓸데없이 많은 독서가 가져다 준 정보는 나를 꽤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었요. 지적인 허영심이 세상의 허영심과 연결이 되었어요. 그런데 한번 그런 타이틀을 달고 나니 더 열심히 읽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선생님의 인정하는 지적이고 독서 많이 하는 아이와 엄마가 남들에게 약간은 으쓱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딸은 공부는 안 하는데 책을 많이 읽어. 어찌나 읽는지 눈이 나빠졌는데 담임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하고 앞으로는 잘 될 거라네.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런 위치를 지켜야 했어요.
어쩌다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국어교사가 된 뒤로는 의무감이 독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어요. 왠지 국어 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거 같아서요. 신문에 신간 목록이 나오면 읽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어요. 우리 국어선생님은 모르는 책이 없어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좋은 국어선생님이 된 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읽으면서 반 평생이 그냥 지나갔어요.
그런데요.
그런데 내가 머리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 그렇게 읽었던 책들의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머리를 짜 내면 줄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가르치려고 외우다시피 했던 개략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내 독서가 참 허망해 보여서 좀 슬퍼지네요.
그런데요. 이렇게 내가 책 읽었던 이유가 끝나면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겠죠.
그래요. 내가 전혀 다른 이유와 방향에서 책을 읽을 계기가 생겼어요.
나이 오십에 큰 병이 왔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방학까지 한 넉 달을 쉬게 되었어요.
가족도 모두 마음에서 내보내고 치료 겸 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러 요양 병원에를 가게 되었어요.
병원에 가려고 짐을 싸는데 책을 한권 가져 가고 싶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빌려가려고 마음먹고 갔어요. 많은 책들이 있었어요. 신간 소설, 시, 수필, 자기 개발서, 철학 인문 등등 그런데 그때 민음사에서 나온 고전 시리즈 앞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어요. 그동안 내가 기를 쓰고 읽어 댔던 명작들도 있고 이름도 생소한 고전들도 많고요. 그런데 그때 내가 관연 그 고전들을 제대로 읽은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이상하게 나는 고전들을 다시 읽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나는 이름도 생소한 토마스 만의 부덴부르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골랐어요.
병원에서 생각 같이 시간이 많지 않더라구요. 치료도 받고 운동도 하고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하루에 몇 장씩 읽었어요. 이때까지는 마치 전투하듯 책을 읽었거든요.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장씩.......
어떠한 외적, 내적 압력 없이 한 장도 읽고 두 장도 읽고 , 또다시 읽고 좋으면 또 읽고 말 그대로 음미하고 읽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같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주인공을 생각하고, 인물들을 생각하고, 내 마음도 생각하면서 읽는 거요.
저는 그 때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의사는 괜찮아질 거라고 초기라고 말했지만, 주변에서도 별 거 아니니 쉰다는 생각으로 치료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니까요. 나이도 있고 지속적으로 몸상태도 안 좋았는데 큰 병까지 생기고 나니 그 때까지 했던 일들이 다 의미가 없어졌어요. 사실 그래서 더 이상 읽지 말아야지 생각까지 했는데 책을 챙기는 나에게 한숨이 나오더라구요.
어느 밤 태풍 부는 병실에 혼자 있는데 빗소리에 잠도 못 자고 일어나서 빗물이 흘러내리는 창문을 보다가 문득 집에 두고 온 어린 딸의 창문에도 비가 오겠구나 싶으니 그 마음을 형언할 수 없다는 표현 밖에 할 수 없는 밤에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토만스 만의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평화로워졌어요. 마치 처음 소설을 읽는 아이처럼 한줄 한줄 읽다가 내가 얼마나 책에 위안을 받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나는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마음을 독서를 하면서 다스리고 있음을깨닫게 되었어요. 독서를 하면서 참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혹은 그냥 시간을 때우면서 읽는 독서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독서를 했어요. 책을 읽는 자체가 참 즐거워졌어요. 흔히 말하는 독서의 온전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요 그 뒤로 나는 정말 책을 읽으며 즐거워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책을 읽고 솔직한 내 생각을 쓰고 정리하면서 보다 나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나은 생각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만하면 내가 왜 읽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는다는 것은 기쁨이고, 삶과 세상에 대한 다양한 사고를 하게 하고, 내 사고에 대한 확신도 주고, 변화도주고, 결국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나는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