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나무 May 30. 2023

'듣기'가 중요하다.

사춘기 딸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웬만하면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말은 하지 않고 동그랗게 눈으로만 '왜'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영어 듣기 성적이 생각보다 나쁘다며, 읽기 쓰기, 심지어 말하기도 그럭저럭 하는데 듣기는 쉽지 않단다.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니 듣기가 안되면 공부는 쉽지 않겠구나 싶어 잠깐 잔소리 모드로 바꾼다.(사실 나는 잔소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귀찮아서... 그런데도 딸아이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잔소리로 듣는다.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잔소리이다)


-... 그러니까 듣기는... -

-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

- 잔소리? 너 엄마가 딱 두 문장 말했거든 이렇게 듣기를 싫어하는데 어떻게 영어가 잘 들리냐?-

-.......-


딸아이가 나를 쳐다보는 순간 절묘하게 세탁기 마침 소리가 울린다.

나는 속으로  '이겼다'라는 쾌재를 부르며 딸아이가 입을 떼기 전에 경보 선수라도 된 듯 재빠르게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거실을 빠져나와 뒷 베란다 세탁실로 들어간다. 승리감도 잠시  빨래를 꺼내며 '에휴' 소리가 절로 난다. 그리고 무당 푸닥거리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 듣지를 않아요 듣지를... 도대체.... -

하다 보니 내 말을 듣지 않는 인간들이 떠오른다. 남편... 그리고 예전에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참 어지간히도 말 안 듣던 아이들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남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나 싶기도 해 '하긴 나도 뭐...' 혼잣말을 하면서 수건만 있는 힘을 다해서 탁탁 털어서 건조대에 걸고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거실을 슬렁슬렁 걸어 다니며 슬금슬금 닫힌 딸아이 방을 쳐다본다.


애 말을 좀 더 들어줬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다소 성격이 급해서인지 차분히 아이 말을 다 들어주기보다는 성급한 판단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나중에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도 그 순간에는 끝까지 다 들어주기가 어렵다. 솔직히 꼭 상황 종료 후에야 더 들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혼자서 뼈 아픈 반성을 한다. 듣기 연습은 내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온다.


요즘 들어 인간관계 의사소통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듣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관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 부모 자식, 친구사이, 직장 상사, 부하직원, 모두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오십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때 어머니가 몇 번을 말씀하셨다.


-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면 언제나 어머니는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셨다.


-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나도 엄마가 돼서 아이에게 말했다.

어린이집 갈 때부터 선생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더니 선생님 말은 잘 듣는다. 

근데 엄마말은 잘 안 들으려고 한다.  누가 엄마 말을 잘 들으라고 교육 좀 해주면 좋겠다.... 에휴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단순히 듣기를 넘어 의미를 이해한다는 의미도 있다. '총명'의 '총'이 귀 밝을 총이다. 잘 들어야 이해를 잘하고 결국 똑똑해진다는 말이다. 또한 듣는다는 말은 순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선생님 말 잘 들으라는 말은 선생님의 말을 물리적으로 잘 듣고 잘 이해하고 잘 따르라는 말인 것이다.


언젠가부터 남의 말을 듣는다는 의미에 왠지 주체성이 부족하고 좀 자신감이 없다는 인식이 포함되는 거 같다.  요즘 엄마들은 예전처럼 선생님 말 잘 들으라는 말은 잘하지 않는 것 같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도 이 말을 매일 하는 엄마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대신 자신의 말을 잘 드러내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듣기보다는 말하기가 더 우세인 것이다.


나는 좀 옛날 사람인지라 그 변화를 학생들에게서도 많이 느꼈다.

내가 처음 교사를 하던 시기에는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 말에 집중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성향이 강해졌다.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만 골라보고 원하는 것만 보고 들을 수 있는 분위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어떤 학생이 나에게 불만을 이야기했다. 내가 자기 보고 쓰레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내 그다지 인성이 뛰어난 교사는 아니지만 학생에게 쓰레기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말하자 학생은 그 날짜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 학생에게 야단을 쳤다는 생각은 떠올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결국 기억력이 탁월하며 중립적 태도를 지닌 반장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내가 그날 뭐라 했는지 기억하느냐고.... 역시 열여덟 총기 밝은 반장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기억을 되살리며 물었다.


- 그날 내가 수업을 하는데 00 이가 엎드려 있어서 내가 깨웠지?-

-네 선생님이 일어나라고 했는데 안 일어났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래 내가 다가갔지. 맨 뒷자리였고. 아 근데 그때 책상 주변에 휴지랑 먹은 빵 껍질 음료수 병이 이 널려 있고... 그래서 아... 내가 비닐에 미끄러질 뻔해서. 쓰레기 치우라고 했지?-

-네 선생님이 주변이 쓰레기통 같으니 쓰레기 좀 치우라고 하셨어요.-


아 그래 그제야 모든 것이 생각이 났다. 나는 00이 주위에 온통 코 푼 휴지에 과자 비닐봉지, 덜 먹고 둔 음료수 병까지 있어서 주변이 다 쓰레기통 같으니 좀 치우라고 했지... 그래 알았다. 고맙다.-


반장을 돌려보내고 00 이를 다시 불러서 선생님이 그날 니 주위 상황이 쓰레기통 같으니 좀 치우라고 했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00 이는 내가 쓰레기통이란 말을 했으니 자기에게 쓰레기라 한 거라며 불만을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자다가 일어났는데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말만 계속했다.


결국 네가 오해를 했으면 오해하게 한 것은 선생님의 실수이지만 나는 너에게 한 게 아니다.라고 말을 하고 돌려보냈다. 그날의 충격을 아주 오래갔다. 그리고 깨달음이 왔다. 아, 이제 애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구나.

그 뒤로는 자다 깬 학생에게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깬 뒤 불러서 말을 했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사회...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아이 때부터 잘 듣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렵다. 참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K 장녀에 대한 고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