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월 Oct 06. 2021

경상도 말 - 쨀쫌하다, 땐땐모치

두 번째 말모이

1)쨀쫌하다

시어머니는 수다가 많은 편이다. 사람의 모든 성격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시어머니가 수다가 많다는 것 역시도 나에게는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점을 말하자면, 한번 어떤 소재가 꺼내져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머니 혼자서 쉴새없이 끝없는 소재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에 내가 굳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엮기 위해서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끄집어 내어 영혼을 탈탈 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닌 내게는 너무도 다행인 시어머니의 좋은 점이다. 

하지만 안 좋은 점이라면 이야기가 끝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한번 말씀을 내놓으시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끊임없이 말씀을 이어가신다. 친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해도 귀에 피가 날 지경일 것인데 하물며 시어머니는 말해 무엇하리! 하지만 나는 '제발 고만!'을 외칠 수 없으니 시어머니의 수다는 나에게 수행을 동반하곤 한다. 


병원 진료차 경남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하루 온종일 내가 며느리된 도리를 하느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부터 일정을 마치고 버스터미널에 모셔다드리는 일까지 도맡아 하였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가 끝이 없으셨다. 어디서 저런 이야기샘이 계속 나오는 것일까?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교회 권사를 역임하신 어머니는 교회에 결혼안한 처녀 총각이 홀로 지내는 것을 못견뎌 하셨다. 교회의 왠만한 사람들과 특유의 수다와 친화력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어머니이시니 아느 사람을 어떻게든 기억을 해내서 미장가인 총각과 미혼의 처녀를 연결시켜주려고 하는 편이었다. 


"복녀 권사집 아들이 재작년에 이혼하고 혼자됐는데 아이고 갸가 그리 계속 혼자 있어가 복녀 권사가 속이 상한거라. 그래가 내보고 야야 보래이 이 권사야, 니 아는 처자 있으믄 중신해라 내 옷 한벌 좋은 거 사주께, 하는 거라. 그래가 내가 한참 누구 있나 생각에 생각을 해봤는기라. 그래 보이 요새는 교회 잘 안나오는데 김집사집 딸이 마흔이 한참 넘었는데 안즉 결혼안했다하는 거가 기억이 나가꼬 연락을 안해봤나? 그래 해보이 아, 마침 안즉 결혼을 안했다하는 거라. 그래 내가 봐라 봐라 우리 교회에 건실한 머스마가 하나 있는데 아가 참 괘안타. 이혼했고 아는 없다. 너거 딸래미 함 만나볼랑가, 하고 물어봤디라. 그래 그 집사가 누집 아들인데해서 내가 복녀 권사라꼬 이바구를 하이 이집사도 알데? 그면서 하는 말이 '아, 내 그집 아들 얼굴 안다. 키는 크드만 사람이 좀 히바리가 없어 보이던데 생긴것도 벨로고. 울 딸은 안할라 할그라' 이칸다 아이가? 내 참 기가 맥히서. 아니 복녀집 아들 괘안케 생깄거든. 머스마 쨀쫌하이 곱상하니 괘안타꼬. 근데 김집사는 언제 갸 얼굴을 보고 그카는지 남의 집 아들 인물보고 머시라 카는거라. 그래 내가 마 알겠다. 싫으머 할수음지, 하고 집어치았다 아이가. 지 짝이 아일라카믄 할수없지 머."


어머니는 쨀쫌하게 생긴 복녀 권사님 아들이랑 김집사님 따님을 연결못시킨 것이 속상하셨나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마침맞다고 생각했는데 까이고 보니 마치 본인이 거절당한 것으로 느끼셨나 보다. 위의 이야기도 두번 정도 축약해서 쓴 이야기이다. 운전하는 차 안에서 연방 쨀쫌한 아들과 마흔 넘은 김집사 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내가 마치 그 둘을 벌써 몇 번 만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쨀쫌하다: 곱상한 듯 길쭉하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네이버 사전에는 '짤록하다'의 경북 방언으로 나오는데 생활에서 사용되면서 변형이 되었을 수도, 그리고 경북과 내가 (시댁과) 사는 경남과는 또 다르게 사용되었을 수도 있겠다. 




2)땐땐모치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 볼이 시려왔다. 가을이라가보단 겨울인 것 같다. 계절이 나보다 더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호수를 한 바퀴만 돌고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좀 더 걸었다간 가을바람을 만만하게 보고 겨우 얇은 바람막이 하나만 걸치고 나온 내 몸이 시리다못해 얼어붙을 것 같았다. 


호수 공원 입구에는 풀빵과 술빵을 파는 1톤 포터가 한대가 항상 서있었다. 그날도 포터는 칼바람에도 아랑곳않고 꿋꿋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호수를 한 바퀴돌고 주차장으로 걸어나오는데 방앗간 앞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남편이 포터 앞에 섰다. 


"자기야, 풀빵 사줘" 9살 짜리 사내아이처럼 내 옷깃을 붙들고 졸라댔다. 

"니 돈으로 사 먹어라." 풀빵 앞만 지나가면 졸라대는 남편이 그날따라 미워보여 나는 밉살스레 대답했다.

"나, 지갑 안갖고 나왔다. 자기는 지갑 갖고 왔제? 좀 사도. 풀빵은 내 영혼의 음식이란 말이다."

풀빵이 영혼의 음식이라니, 그 소심함과 소박함에 마음이 잠깐 녹아내렸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앗다. 남편은 영혼의 음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싫어. 난 풀빵 안좋아해. 사 먹고 싶은 사람이 미리 준비했어야지."


"야, 이 땐땐모치야. 돈 벌어서 뭐하노? 풀빵도 하나 제대로 못 사먹고. 똑 사는 낙이 없다, 내가!"

삼천원만 있으면 영혼을 일깨울 수 있는 풀빵이 눈 앞에 있는데 그것 하나 못 사먹고 마눌님에게 조르다보니 설움이 폭발했나 보다. 남편이 풀빵 아저씨에게 내가 민망할 정도로 큰 소리로 성질을 냈다. 


풀빵을 못 사먹어서 인생 사는 낙이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또 내가 지는 수 밖에 없었다. 

삼천원을 남편을 위해 투자했다. 이런 나를 보고 땐때모찌라니! 나는 억울했다. 


*땐땐모찌:  구두쇠, 돈을 잘 안 쓰고 매사 계산기 두드려보고 돈을 쓰는 사람을 주로 일컫는 사투리.  '땐땐모찌'라고도 하고 '때때모찌'라고 할 때도 있는 듯 하다. '단단'의 센 발음 '땐땐'과 일본식 떡 모찌가 결합한 말이라고 포탈에서 찾아지는데 확실성은 글쎄...
작가의 이전글 잠 오는 아들과 새촙은 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