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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Jul 01. 2024

부럽습니다, 글 잘 쓰는 재능

처음 배우기 - 소설

"저는 제 이름으로 된 장편 소설을 한 편 써보는 게 꿈입니다. 서두를 생각은 없고요, 지금부터 천천히 배워서 10년 안에 한 권의 소설이라도 내고 싶습니다."


14명의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어떤 사람은 10년이라니 너무 여유를 두시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가능한 목표인 것 같아요. 꼭 이루실 것 같아요. 라며 부푼 희망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나는 지금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다짜고짜 소설 쓰기> 강의를 한 달반 째 수강하고 있다. 


내가 소설 창작 강의를 신청하게 된 것은 과연 내가 소설을 쓸 만한 재능이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먹으면 배출해야 하고, 입력이 있으면 출력을 해야 하듯이, 읽으면 쓰고 싶어지는 법이다. 이것저것을 많이 읽다 보니 나도 한번.이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저 꿈만 꾸고 있었다. 


꿈을 꾸면 꿈이 보고 싶어 진다. 나도 내 꿈을 보고 싶어졌다. 컴퓨터를 켜고 빈 화면을 쳐다보았다.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많은 작가들이 훈련받지 않고도 잘만 쓰는 것 같던데. 재능도 없는데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하는 건가. 생각이 많아졌다. 마치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는 재주도 없는데 고시 합격을 노리는 노량진 고시생이 된 것 같았다. 

소설을 쓸 수 있기나 한 건지, 재능이 손톱만큼이라도 있기나 한 건지 알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야 포기도 되고 미련이 남지 않는 법이다. 소설 강좌를 검색했다. 여러 개의 강좌 중에서 나는 오프라인 강좌를 하나 골라 수강 신청하였다. 첫 강의부터 지난주까지 12번 중 6번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처음과 두 번째 강의는 소설 쓰기 이론이었다. 세 번째부터는 각자 미니 단편을 격주로 한편씩 써오는 것이 이 강좌의 커리큘럼이었다. 격주로 써 온 미니 소설을 읽고 다 같이 합평을 하는 것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두 편의 미니단편을 제출하였다. 이번주에 세 번째 미니단편 합평이 있다. 모레까지 미니단편을 써서 다른 사람들이 미리 읽을 수 있게 올려야 한다. 


어제부터 단편소설을 쓰려고 머리와 손이 발악을 하고 있다. 머리는 소설을 구상하느라 요동을 치고 있고, 손을 구상도 안된 이야기를 어떻게든 밖으로 꺼내보려고 자판 위에서 열심히 떨고 있다. 

드디어 한 문단을 완성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니 뭐든 이제는 진행이 되겠지. 내가 쓴 문단을 을 보면 왠지 90년대나 2천 년대 초반의 느낌이 났는데 요즘 분위기의 소설은 이런 풍이 아니던데.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고민만 하기에는 이제 시간이 촉박하다. 일단 무조건 써야 한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강좌에서 개설한 카페에 들어가 본다. 벌써 두 사람이 완성된 소설을 올렸다. 클릭하지 말아야 하는데. 일단 내 거부터 써야 하는데. 머리가 생각한 것과 달리 내 손가락은 pdf파일을 클릭했고 파일은 다운로드되고 있었다. 한 편은 <피아노> 다른 한 편은 <당신과 김수진, 우리와 무카>라는 제목이었다. 

두 글을 읽어본다.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고 문체가 어느 문학상 수장집에서 본 듯하게 요즘 것이다. 내가 쓴 소재나 문체와 확실히 세대 차이가 난다. 약간 지루한 듯 하지만 인물의 심리 묘사가 정교하게 잘 되어있다. 줄거리보다는 심리와 상황 묘사가 설득력이 있다. 어느 문화평론가가 말한 것이 생각이 났다. 요즘 한국 문학은 미시적이고 섬세하고 심리 표현 중심이다라고. 정확히 내가 잘 못하는 것들뿐이다. 나는 연습을 한다고 해고 이런 방향으로는 잘 쓰지 못할 것 같다고 확신한다. 좌절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두 작품 중 한편은 지금 바로 공모전에 제출해도 될만하다. 고 생각했다. 


내 소설을 이어 쓸 마음이 사라졌다. 내 글은 소재도 식상하고 문체도 구식 같다. 소설이 내 나이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나이만큼 젊고 신선했다. 과연 내가 지금부터 소설 쓰기를 배운다고 해서 제대로 편을 수나 있을까. 쓴다고 해도 혼자만 간직하게 소설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욕 상실이 뒤따른다. 젊은 동료 예비 작가에 대한 부러움이 나를 압도한다. 절망적이다. 한숨으로 가슴이 가득 찬다. 위로를 받고 싶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월요일 한낮, 이런 고민으로 편하게 대화할 누군가를 찾지 못했다. 종일 컴퓨터 앞과 거실과 부엌을 서성였다. 풀어내지 않으면, 털어내지 않으면 계속 글을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브런치에 혼자 떠드는 수다를 풀어낸다. 독백 수다가 나에게 주는 위로가 되어 마지막 단편소설을 쓸 때까지 힘을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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