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안희경의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독서는 일이어야 합니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를 취미로 하면 눈만 나빠집니다.
Q. 144쪽에서 최재천 교수는 독서를 일처럼 하라고 하는데, 여러분의 독서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요?
지난달 가졌던 독서 토론 모임의 책은 <최재천의 공부>였다. <최재천의 공부>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언론가 안희경이 서로 대담한 내용을 정리하여 2022년에 발간한 대담집이다.
나는 최재천이라는 사람을 유튜브를 통해 먼저 알았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인문사회와 관련된 책만을 읽어왔던 나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가 아니었다면 그의 존재를 아예 몰랐을 거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내 계정에 뿌려주었고 쌈빡한 제목에 끌려 클릭을 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최재천의 아마존'이 광고하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을 충실히 이행했고 매주 보내오는 알림에 따라 성실히 콘텐츠를 시청하는 구독자가 되었다.
나는 웬만하면 자기 계발서류의 책은 보지 않는다. 이 원칙은 아무리 최재천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독서 토론 모임의 참여자인 고감독이 이 책을 선정하기 전까지는.
나를 비롯한 참여자들은 책을 완독해 왔고 고감독은 발제문을 만들어 왔다. 그 발제문의 3번 문항은 공부도 교육도 아닌 독서에 대한 것이었다.
L: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 저의 유일한 숨 쉴 곳은 독서였어요. 양육을 도맡은 치열한 현실을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였죠. 현실은 시궁창이었거든요. 타인의 삶을 읽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요. 책, 특히 소설이라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었다면 시궁창 같은 현실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독서도 일처럼 빡세게 해야 한다? 그랬다면 저 같은 사람의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의견에는 쉬이 동의가 쉽지 않습니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취미는 '독서'라고 말할 정도인데요. 취미가 독서인 것은 쾌락 독서, 힐링 독서가 아닐까요?
H: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종의 '왕따'도 있고요. 생전 처음 듣는 용어와 생전 처음 보는 위계질서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업무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선배들의 갈굼이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킵니다. 솔직히 요새는 책을 읽는 것도 스트레스예요. 그저 긴장을 늦추고 아무 생각이 없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에요. 그런데 독서까지 일처럼 하라고 하면, 저는 독서 이만 멈추겠습니다.
K: 저도 두 분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는 웹소설과 웹툰, 만화책 그림책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들은 제 삶에 힐링이고 쾌락이며 친구입니다. 그동안 힐링 독서, 쾌락 독서를 해오며 삶의 해상도를 높여왔는데, 최재천의 빡센 독서론에 조금 당황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은 의견이라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왠지 쾌락 독서를 하는 저에게 미안해졌었거든요.
공부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면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힘"이라도 나와 있다.
배우고 익히다.
나는 배우고 익히다는 것을 떠올리면 항상 '학습'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이번에 공부의 뜻을 찾아보니 공부와 학습이 서로 다르지 않다.
공자의 말을 모아 놓은 책인 <논어>의 제1장 '학이(學而)'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이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우리가 흔히 쓰는 '학습'이라는 말은 바로 논어에 나온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이라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다.
25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 3년 전부터 역사와 관광과 강의를 매개로 한 두 번째의 직업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많은 것이 낯설다. 낯선 것이 몸에 배게 하려면 배워야 한다. 나는 열심히 배우려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배운 것들이 내 몸에 맞게 제작한 맞춤옷처럼 입에 착착 붙지 않았고 뇌리에 속속 박히지 않았다.
한번 본 책의 내용이 며칠만 지나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들은 내용도 치매 환자처럼 내 뇌리에서 까마득해지곤 했다. 전후 사정과 인과 관계가 헷갈리기도 하였다. 학창 시절 암기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자부심으로 나름 도도한 학생이었는데 내 자부심이 사라졌다. 덩달아 이해력까지 자부심과 함께 딸려 도망간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불현듯 대학원 교수님의 말이 생각났다. 숙제는 반드시 공책에 손으로 써오라고 했던 교수님이었다. 컴퓨터로 타이핑한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교수님은 꼭 손으로 또박또박 열 번씩 써오라고 하였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학부생도 아닌 대학원생에게 손으로 쓴 과제라니. 학생들은 어이가 없어하였다. 그때 교수님은 이렇게 강조하였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로 배우고 손으로 익히는 것이다."
당시에는 꼰대 교수의 치기로만 여겨졌던 이 말이 인생의 두 번째 직업을 맞이 한 지금 다시 떠오른 것이다.
책에서 배운 것들을 손으로 요약하여 옮겨 보았다. 손으로 옮겨 요약한 것을 데이터화하기 위해 다시 컴퓨터로 입력을 하였다. 이렇게 세 번 정도 '배우고 익히다 보니' 그제야 내가 배운 것들의 1/3 정도가 익힘으로 내게 돌아왔다. 1/3이 이제야 학습이 된 것이었다.
책을 읽고 손으로 요약하고 컴퓨터로 정리하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책의 내용이 온전히 학습되고 있지 않다. 여전히 잊고 잃고 방황한다. 하지만, 나는 오만하지 않고 계속 학습하려고 하는 자세를 견지하게 되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게 되려면, 독서는 빡세야 한다. 독서는 일처럼 해야 한다. 취미 독서 쾌락 독서는 감상은 남지만 익힘(習)은 남기 어려운 법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독서는 일처럼 빡세야 한다'는 최재천의 의견에 공감을 표하였다. 다른 참여자와는 달리.
L: 이 나이에 그렇게 빡세게 할 필요가 있나요? 일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요. 저는 취미 독서에 만족합니다. 모두가 다 빡센 독서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사는 방법이 다 다른데.
K: 맞습니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학업이 본분이 학생들에게는 빡센 독서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집에 가서 우리 아이의 독서법을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H: 섣부른 따라 하기가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어른들부터 빡센 독서를 직접 보여주고 효과를 설득하는 것도 좋지 싶네요. 물론, 저는 안할랍니다. 애들도 다 컸으니 지들 독서는 지들이 알아서 하겠죠!
<최재천의 공부>는 공부에 대한 6가지 관점에 대하여 최재천 자신의 경험을 풀어 가면서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자기 계발서이지만 유튜브 대담 보듯이 금방 책장이 넘어간다. 다독가라면 하루 만에 독파도 가능할지 모른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 약간의 짜증이 날 수는 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잘 잡지 못할 기회를 갖고, 보통의 사람들은 하나도 못하는 재주를 너 다섯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노력 끝엔 거의 대부분 우연한 행운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약간의 짜증과 함께 '당신이니까'하는 질투도 섞일지 모르겠다.
공부에 대한 유명한 최재천이라는 사람의 경험과 지혜를 빌고 싶으면 한 번쯤 읽어 볼 수도 있겠다. 물론, 그의 경험과 지혜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한 내용일 수도 있다는 점 알아둘 것이다. 뻔해서 이미 알고 있지만 자극과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찾아서 보는 것이 바로 자기 계발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