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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월 Nov 09. 2024

산세베리아 피고 지고,

햇볕의 소중함을 깨닫다.

발끝이 시렸다. 오늘의 낮 최고 기온은 19도. 햇살은 맑음. 아침에 미술관까지 걸어오는 데 걸린 시간 15분. 혹시 추울까 봐 스카프를 목에 칭칭 감고 걸어서 그런지 미술관에 도착했을 땐 등줄기에 온열이 올라 화끈거렸다.

-오늘은 따뜻하니 히터를 틀지 맙시다.


모두가 동의하고 자리에 앉은 지 정확히 한 시간이 흘렀을 때 먼저 말을 꺼낸 건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나였다.

-우리 히터 좀 틀어요. 동상 걸리겠어요.

웬걸. 이미 히터는 틀어져 있었다.

-방금 틀었어요. 추워서 안 되겠어요.


히터 바람은 머리 위에서 날아오게끔 명령을 내렸는데 높은 천장에 붙은 난방기 바람은 웬만큼 강한 바람이 아니고서야 내 머리에 닿지 않는다. 그렇다고 온도를 더 올리고 바람을 더 세게 하기엔 오늘의 날씨는 따뜻, 맑음이다.

창밖을 바라본다. 유리창을 경계로 천국과 지옥이 구분되었다. 어둑한 실내와 화창한 바깥.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데 눈이 부시다. 햇살 비치는 바깥은 바람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발끝이 시려서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따사롭다. 포근하다. 우주 밖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내가 서 있는 땅에 닿아 시린 발끝까지 온기를 전해준다. 아직은, 어중띤 히터의 열기가 우주 밖 태양의 온기를 이기지 못한다.

이런 날은 어둑한 실내보다 눈부신 밖이 더 그립다. 찬바람 부는 계절이 될수록 인색한 햇볕도 소중하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정남향집이다. 정남향집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는 건 이즈음부터 시작하여 겨울을 지나면서부터다. 봄가을 날씨 좋고 햇살 좋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강한 자외선 때문에 햇볕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햇살이 그립고 반갑다.


밤새 쳐져있던 커튼을 걷으면 아침 창을 통해 아직은 얇은 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온다. 아직은 형광등을 켜야 할 때이다. 아침을 먹고 모닝커피를 한잔하고 나면 햇살은 옷을 점점 더 껴입은 것처럼 두꺼워지고 아궁이에 나무를 더 집어넣은 것처럼 온기를 더해간다.

그즈음 햇볕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슬금슬금 다가와서 어느새 소파가 있는 곳까지 침범해오고 있다. 나는 덮고 있던 무릎 담요를 치우고 형광등 스위치도 OFF로 바꾼다. 커피를 들고 햇살 좋은 창가에 서면, 조경을 위해 심어진 나무들에 매달린 잎들이 바르르 떨고 있는 게 보인다.

창 안은 조용하고 따사롭고 평화로운데 밖에서는 나무라는 집에서 계속 있고 싶어 하는 잎사귀들이 바람과 사투를 하는 것 같다. 흔들거리던 푸른색에서 갈색으로 옷을 바꿔 입은 나뭇잎이 마침내 떨어지더니 바람이 나뭇잎을 데리고 사라졌다. 아직은 나무에 매달린 잎들이 머지않아 바람과 추위를 못 견뎌 무덤을 찾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슬퍼할 것은 없다. 이 모든 일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햇볕에 관해서라면, 나는 가슴 아픈 경험을 갖고있다. 이때 나는 햇볕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집안에서는 어떤 것도 키우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은 햇볕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고 산세베리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에 이사한 이사한 아파트는 한때(아마 지금도?) 굉장히 유행하였고 이쁘다는 평이 많았던 타워형 아파트였다. 타워형 아파트는 밖에서 보면 아파트 외관이 썩 아름답다. 흔히 성냥갑으로 대표되는 판상형 아파트는 생김이 감옥같기도 하고 학교같기도 한 그냥 네모난 입체형 사각형이다. 반면, 2010년 즈음부터(내 생각에) 짓기 시작된 타워형 아파트는 벌집 같기도 하고 얼핏 보면 호텔 같기도 해서 고급져 보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 무렵에는 우리나라도 도시의 미관을 생각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는데 성냥갑 같은 판상형 아파트는 도시를 삭막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타워형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보기에 예뻐 보이는 타워형 아파트에 열광을 하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타워형 아파트가 같은 평수에 더 많은 집을 넣을 수 있어서 건축비가 쌌기에 건설사들이 타워형에 집중하였고 건설회사 하나쯤 주주로 갖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사들은 건설사들의 욕심에 약간의 기름칠을 해준 것 같다. 왜냐하면 아파트에 미쳐있는(!) 우리나라는 언론에서 뭐라고 하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수많은 부동산 부나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부나방 중 하나가 바로 나였을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예쁘고 튼튼하다는 타워형 아파트에 입성하게 되었던 다. 판상형 아파트에서 타워형 아파트로 옮긴 이삿짐 중에는 커다란 산세베리아 화분이 있었다. 화분의 키가 내 무릎보다 좀 더 높았고 지름은 시골에서 보던 절구통 크기만 한 화분이었다. 그 안에 심긴 건 짙푸른 녹색의 산세베리아였는데 넓적한 잎들이 예닐곱 개가 있었다. 이 산세베리아는 내가 첫 번째 아파트를 분양받아 집들이를 할 때 회사 동료들이 단체로 사서 선물한 것이었다. 원래 살아있는 무언가를 키우기를 꺼려하는 나였지만 선물로 안겨주는 데야 어쩔 수 없어서 2005년부터 키우게 되었다. 아니, 키웠다기보다 그냥 방치해 두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산세베리아는 햇살이 아주 잘 드는 베란다에 두었고 가끔, 생각이 날 때만 물을 주곤 했는데도 아주 쑥쑥 자랐다. 처음 예닐곱 장뿐이었던 산세베리아 잎은 점점 새끼를 치더니 나중에는 너무 커버린 부모 잎을 솎아주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스스로 잘 큰 산세베리아는 4~5년 뒤부터는 꽃도 피기 시작했다. 산세베리아 꽃이 하얗고 향기가 33평 아파트 전체를 가득 채울 만하고 7월쯤 피어서 한 달 정도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덧 나는 산세베리아에 정을 들이게 되었고 때때로 챙겨서 물을 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시사철 햇살이 잘 드는 남향집 베란다에서 산세베리아는 주인의 사랑까지 덤으로 받아 아주 쑥쑥 잘 크는 아이가 되었다. 이렇게나 정이 들었기에 이사를 갈 때도 나는 이삿짐 아저씨에게 화분이 죽지 않게 잘 챙겨서 옮겨달라고 부탁말씀도 올리게 되었다.


이사를 간 타워형 아파트는 이전처럼 정남향이 아니라 동남향 아파트였다. 아침 일찍부터 햇살로 가득한 거실은 아침 10시쯤에 가장 따사로운 온도를 가지게 되었다. 점심때가 지나면 제일 안쪽부터 빛이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오후 2시가 되면 아주 해가 완전히 넘어간 것처럼 집안이 컴컴해졌다. 오후가 되어도 햇살이 남아있는 곳은 아이들 방뿐이었다.

타워형 아파트의 거실은 베란다가 따로 없었다. 창도 활짝 열 수 있는 창이 아니라 개미눈물만큼 살짝 열 수 있는 창이었다. 평수는 더 넓었는데 거실은 더 좁아져서 소파를 놓고 TV를 놓고 컴퓨터를 놓으니 산세베리아를 놓을 데가 마땅치 않았다. 나는 산세베리아를 현관문 앞에 두었다. 현관 쪽은 빛이 들지 않는 쪽이었지만 사막에서도 잘 크는 식물이라길래 그냥 거기 두었다. 현관에 파란 식물이 있으면 왠지 복도 들어올 것 같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나를 비롯한 식구들은 사느라 바빠서 산세베리아를 돌보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사이, 산세베리아는 암에 걸린 환자처럼 시름시름 앓아갔다. 어느 날 문득 집안으로 들어오다 내 눈에 띈 산세베리아는 그 널따란 잎이 쪼그랑망탱이가 되기 직전이었고 촉촉하던 화분의 흙도 바짝 말라 가뭄에 든 논같이 보였다. 그때부터 세심하게 보살피고 물도 제때 주었건만 산세베리아는 이사오기 전에 보여주었던 생생함을 되찾지 못했다.


물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햇살이 문제일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집안에 그나마 볕이 잘 드는 거실에서도 가장 창과 가까운 컴퓨터 옆으로 산세베리아를 옮겼다. 아침이면 부족하나마 산세베리아도 햇살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광합성을 할 수도 있을 거였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산세베리아의 회복을 빌었다.


그러나, 한번 치유할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 산세베리아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오전 잠깐 드는 햇살은 감질나기만 했을 것이고 비싸게 굴던 햇볕은 산세베리아의 애간장만 태웠다. 그 후로 2년 정도 더 키웠지만 산세베리아는 끝내 잎을 살리지 못했다. 향기롭던 산세베리아꽃은 이사 온 후 첫해만 꽃을 피웠고 이후로는 향기는커녕 꽃구경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산세베리아를 해체분해하였다. 잎은 쓰레기통에 잘 담았고 화분은 망치로 깨서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따로 담았다. 산세베리아의 꽃과 꽃향기는 우리들 마음과 뇌리 속에 잘 간직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타워형에서 다시 판상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산세베리아와 헤어지게 되었다.


판상형 아파트로 이사를 왔지만 내 손으로 산세베리아를 버리고 마음에 묻고 뇌리에 담는 경험을 하면서 다시 다른 식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뒤로 우리 집은 녹색 하나 없는 삭막한 집이 되었다.


미술관 마당에서 햇볕을 쬐이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미화를 하는 직원분이 화분을 하나 들고 지나간다. 웬 화분이냐고 물었다. 몇 개월 전부터 뒷마당에 버려져 있던 건데 아무도 챙겨가지 않아 자기가 키우려 한단다. 봄부터 버려져 쌀쌀한 가을까지 혼자 버텨낸 화분인데 아주 씩씩하게 잘 크고 있다면서 조금만 잘 키우면 아마 꽃도 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콧노래를 부르며 갔다.


이제는 햇볕이 잘 드는 정남향 우리 집에서도 또 다른 산세베리아를 한번 키워볼까. 산세베리아가 죽은 게 햇살 때문이라면 지금 나는 다시 꽃을 피우는 산세베리아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가을볕에게 그래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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